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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 안내려고 했는데...    
글쓴이 : 윤소민    24-08-14 14:33    조회 : 3,562

티 안내려고 했는데...


아이고 진홍이 엄마, 미안해서 우짜노...괜찮긋나 모르긋네...우째 잘 부탁하이시더.”

 

친정엄마는 이 말을 하며 삶은 옥수수와 함께 옆집 진홍이 엄마에게 나를 맡겼다.

엄마는 초파일이면 절에서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포항 바다에 가서 방생을 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초등학생 시절, 나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평소에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놀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여름방학만 되면 놀거리도 없고 너무 심심하니까 엄마를 조르고 졸라 해마다 성경학교만 갔다. 성경학교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과는 전혀 달랐다. 친절하게 말하고, 화도 안 내고, 맛있는 것도 많이 주셨다. 나는 날씨가 더워진다 싶으면 성경학교를 떠올렸고 진홍이에게 들러붙었다.

결혼 후, 나는 당연한 듯이 교회를 다녔다. 소속된 교회에서 섬김을 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교회학교 아동부 교사였다. 직업 교사의 옷을 벗고 어린 시절 만났던 그분들처럼 그저 미소로 사랑을 흘려보내는 교사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이건 좀 말해야 하나? 질서를 좀 잡아야 하나?’ 하는 상황에서도 눈 딱 감고 참으며 다른 선생님들처럼만 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숨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 온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떠나는 성경학교! 5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남양주의 한 펜션으로 갔다. 신나게 물놀이를 마치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교사들이 더운 날 땀을 물처럼 흘리며 만든 삼계탕이 아이들 앞에 놓여졌다. 아이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맛있게 먹었지만 테이블과 강당 바닥은 흘린 닭 살점과 국물로 금방 엉망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면 바로 이곳에서 저녁 예배를 드려야 하고, 예배가 끝나면 여섯 명의 교사가 이 자리에서 잠을 자야 한다. 처음에는 잘 먹는 것만으로 흐뭇해하던 교사들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모두 저걸 어떻게 치우지?’ 하는 걱정이 태산인 눈빛이었다.

안 되겠다. 이건 안 나설 수가 없다. 교사 티 내고 싶지 않지만, 오늘 저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친구들~우리 식사 마치면 여기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안 되겠죠? 물티슈 두 장씩 줄 테니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바닥을 깨끗이 닦습니다. 물티슈가 까맣게 되었을 때 선생님에게 검사받고 여기 종량 봉투에 넣습니다."

6학년들은 이걸 해야 하는 거야?’ 하는 표정이었지만 잘하고 있는 아이 몇 명을 칭찬하자 슬슬 움직였다. 저학년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닥의 묶은 때를 벗겨내듯 힘을 주어 닦았다. 그러고는 합격이냐며 물티슈를 들고 와서 내밀었다. 덜 더러워진 물티슈를 내미는 아이 2~3명에게만 ...좀 더 해야겠는 걸?” 하면 한 번에 합격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아이들까지 더 열심히 한다. 보고 있으니 너무 귀엽고 누구 하나 반항하는 아이가 없어 고맙다.

마침내 청소가 끝났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친구들~ 이제 예배를 드리려면 줄을 맞춰야겠죠? 1팀부터 왼쪽에서 한 줄씩 줄 맞춰 앉습니다. 얼마나 빨리 앉나 세어 볼게요. 5! 4! 3!"

어우~ 가장 어린 동생이 3까지 세었는데 벌써 다 맞추었네요. 이제 2팀 볼까요? 5! 4!”

2팀도 4까지 세었을 때 줄이 다 맞춰졌다. 나머지 팀들은 그 사이에 알아서 다 맞추어 앉아서 앞을 딱 보고 있다. 더 이상 카운트할 필요가 없다. 기가 막히게 우수한 아이들이다. 전도사님은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조용히 앉아 있어서 부담스럽다신다.

 

학교 아이들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화 낼 일도 없겠다.’

 

예배를 마치고 다시 테이블을 펼치고 수박, 컵라면 순으로 간식을 대령(?)했다. 간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 떠드니 한번 조용히 시켜 달라고, 이번에는 교사들이 요청하셨다. 티 안 내려고 했는데 다 알게 되었구나...마이크를 잡았다.

"얘들아, 조용히 하는 테이블부터 수박이 나갈 거야. 너무 떠들면 맨 마지막에 먹는다고 봐야지. 시간이 없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겠지?"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그중 눈치 없이 얘기하는 옆 친구에게 검지를 입에 대고 ''하라고 신호를 주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귀엽다. 컵라면도 마찬가지다. 수박을 잘 먹고 버리는 아이들 테이블부터 배달해준다. 다 먹고 물티슈 청소도 척척! 덕분에 비교적 쾌적하게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교사들이 만든 수제 짜장을 얹은 짜장밥이다. 식사를 마칠 무렵, 나는 다시 물티슈를 들고 마이크를 잡았다. 이젠 설명도 필요 없다. 바로 물티슈 들고 가서 닦고 나에게 보인다. 나는 이 말만 하면 된다.

"! 잘 했어. 대단하다."

심지어 고학년들은 테이블도 척척 접는다. 그럼 또 마이크로

"~ 형아들 보세요. 테이블도 치워주고~ 아주 훌륭하다."

아이들의 일사불란함에 교사들이 놀라며 행복해하신다.

 

...살 만하다. 학교도 이러면 좋겠다.’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도 들어주고, ‘왜 해야 하냐, 저 애는 안 하는데 왜 가만두냐, 내가 안 하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하며 싸우지 않는 교실! 기본적인 질서 잡는데 시간 적게 쓰고 본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교실...

내년에 이런 학생들 만나서 내 어린 시절 교회학교 선생님처럼 미소 짓는 시간이 더 많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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