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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줌마    
글쓴이 : 윤소민    24-07-18 14:28    조회 : 5,386

나의 아줌마

 

무역센터반 윤 소 민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인생 드라마라고 극찬하면서 어두운 회색에서 점차 밝은 빛을 찾아가는 21세 청년 아이유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이선균이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 감동적인 드라마다.

무시와 천대에 익숙해져서 그림자처럼 살았다. 그러나 이제 잘 해보고 싶어졌다.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회사에서의 3개월이 21년 내 인생에 가장 따뜻한 시간이었다.”

이지안은 박동훈이라는 어른이 준 선물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울고, 또 보면서 울 정도로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힘겨운 배경에서 태어나 자신을 당연한 듯 학대하고 인생의 시작부터 절망적인 젊은이를 만난다면 박동훈처럼 진짜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마음과 수고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작게나마 희망을 주고, 그래서 인생을 살아볼 만하다는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찼다.

 

20237월 어느 날, 나에게도 이지안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가 지안이라 생각을 못 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K 대학에 객원 상담사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내담자로 지안이를 만났다.

지안이는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서 엄마가 떠나고 할머니네에서 아빠, 언니와 함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 이후 아빠의 경제적 압박을 피해 엄마에게 와서 언니와 함께 살았다. 지안이는 교우관계의 문제와 엄마와의 갈등이 혼재된 상태로 불안하고 우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정말 힘들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엄마와의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친구 문제가 학교생활을 거의 불가능하도록 위협했기 때문에 시급한 문제를 먼저 접근하기로 했다.

지안이는 학사 일정으로 불가피한 날을 제외하고는 미루거나, 빠지거나, 늦는 일 없이 착실하게 상담받으러 왔다. 상황과 마음이 힘든데도 이렇게 성실할 수 있는 지안이가 정말 귀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K 대학까지 가는 나의 걸음을 한 번도 헛되게 하지 않아 고마웠다.

반팔 입고 처음 만났던 우리가 패딩을 입기 시작할 무렵, 친구 문제는 스스로 만족할 만큼 좋아졌고 학교생활도 안정되었다. 한 세트의 상담을 종결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대학에서도 지안이가 곧 졸업하기 때문에 상담을 종결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내가 종결을 예고하자 지안이는 미해결된 엄마와의 문제를 꺼내며 상담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고민이 되었다. 지안이가 졸업도 하지만 나도 봉사 기간이 끝나서 K 대학에서 상담을 계속하지 않는다. 결국 한다면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마무리해야 하는 연구 과제도 있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고, 지안이와 나는 거의 한 시간 반 거리에 살고 있다. ‘가성비를 생각했을 때 지안이는 내가 아닌 상담자를 찾는 것이 옳다.

이제 좀 믿을 만해서 마음을 연 지안이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상담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그래서 우선 한 달을 지내보고 이후에도 의사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때는 대학과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상담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 연락이 안 오면 다른 상담자를 찾은 것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정리했다.

그런데 지안이는 정확히 한 달 뒤에 연락을 했다. 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 진짜 잘 해야 되겠구나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다.

상담 장소는 지안이네와 우리 집 중간쯤 되는 지하철역 조용한 스터디 카페로 하고 주 1, 한 시간씩 상담을 했다. 내 상담 실력이 부족해서 지안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상담 전략을 고심하며 정성을 다했고, 지안이를 위해 수시로 기도했다. 지안이는 전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상담 받았지만, 엄마와의 문제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은 지안이를 더 나은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하나 생각했다. 그때 문득 나의 아저씨가 떠올랐다. 부모답지 못한 부모 때문에 아픈 경험이 대부분인 지안이에게 어쩌면 나는 처음 만난 괜찮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떠나겠다고 하면 어떤 이유를 갖다 댄들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의뢰는 접고 다짐했다. 지안이에게 나의 아줌마가 되어주기로. 나의 아저씨도 상담자는 아니었고, 어른으로서 지켜주고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주었다. 나도 그건 할 수 있다.

 

꽃눈이 여기저기 날리는 봄이 왔다. 좋은 날씨든 궂은 날씨든 시큰둥했던 지안이는 날씨가 참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봄처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안이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상담을 종결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지안이는 동의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연신 감사하다는 지안이에게 나는 그저 나의 아저씨 같은 마음으로 상담했다고 했다. 지안이는 나보고 좋은 어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에 감격이 넘쳤다.

지안이가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기를, 그토록 원하는 대로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서 혼자 조용히 책 읽을 수 있기를 마음 다해 바란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 마지막 장면처럼 어느 날 우연히 만났는데 너무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는, 드디어 평안에 이르른 지안이를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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