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믿는다는 것 (2)
박영희
유치원을 짓게 된 과정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다. 엉성한 단칸방에서 힘겹
게 살아갈 때, 막내딸은 갓 돌이 지난 아기였다. 8월경에 이사 온 해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추위가 절정인 1월경, 온 가족이 곤하게 자고 있을 때 막내인 아기가 외마디 비명을 질러서 깨어보니 연탄가스로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렸다. 정전으로 가스 배출기가 멈추었나 싶어서 30분 정도 환기를 시키고 다시 잠들었다. 새벽녘쯤 되자 또다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막내딸의 울음소리에 모두 잠이 깨었는데 이때는 이미 가스에 중독되어 어린 아들도 울고 나도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연탄가스에 취약한 아기가 비명을 질러서 온 가족을 살린 것이다.
남편이 옥상에 가서 연통이 90도 각도로 꺾인 곳을 살펴보니 얼음으로 꽉 막혀 있었다고 했다. 날씨가 극심하게 추워서 연탄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얼어붙은 것이었다. 그해 겨울 신문에도 우리가 겪은 것과 같은 현상으로 온 가족이 사망한 기사들이 몇 건 보도되기도 하였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에 오빠와 6살 아래로 막내딸을 낳게 된 계기는 장위동 성당에 다닐 때 골롬바노회 소속으로 아일랜드에서 오신 신부님의 영향이 컸다. 둘째인 아들 다음에 또 임신한 것 같아서 지금은 반포의 가톨릭 성모병원으로 이전된, 명동성당 입구에 있던 가톨릭 성모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다. 검진결과 빈혈과 허약체질로 산모가 좀 위험하니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수술을 받았다. 가톨릭 성모병원 의사가 해준 수술이라 죄가 되지 않는 줄 알고 한 수술이었지만 마음이 께름칙하여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았더니 “그 의사가 누구냐?”고 하시는 바람에 “아! 내가 잘못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은 뒤라 그 후에 막내딸을 임신하였을 때 낳게 된 것이었다. 한목숨에 대한 순종을 주님께서는 다섯 목숨을 살려주시는 것으로 갚아주신 것이었다.
시동생에 대한 후일담으로 변두리에 있던 본인의 집을 시누이가 인수해 주어서 어느 정도 수습을 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당시에 시누이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부지에 작은 집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가 있었다. 조카들이 외삼촌을 도와주자고 하여 우애가 깊은 시누이 덕분에 우리도 삶의 전부가 무너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삶의 터전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남편은 배포가 크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 시아버님이 물려주신 자기 소유의 집을 다 팔아서 큰댁으로 양자를 간 형님의 빚을 두 차례에 걸쳐 다 갚아주고 빈털터리인 상태에서 부엌도 없는 전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내가 남편이 존경스러웠던 것은 형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점이었다. 형님이 돌아가시면서 “네가 나를 용서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고 한다. 전답과 부모님이 모셔져 있는 묘지가 있는 산까지 전 재산을 도박으로 다 없앤 것을, 동생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나 같았으면 여러 번 형을 원망하고 불평할 것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유치원을 짓고 난 뒤에는 “시골에 있는 전답을 하느님께서 그대로 유치원으로 옮겨 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40여 년 만에 유치원을 정리하고, 삼 남매와 며느리에게 증여하면서 땅값이 많이 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많아지고 전통시장이 활성화되어 다른 곳에 비해 상승 폭이 큰 것 같았다.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나하고 남편의 동문으로 국전에도 입선한 화가인 분이 역시 미술학원을 하기 위해 장소를 찾다가 현재 우리 유치원 옆 건물인 단칸방이 있는 장소를 찾았고, 우리는 상도동에 학원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입시 미술을 하기에는 노량진의 입시학원이 인접한 상도동이 적합하고, 유아와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을 하기에는 그 동문이 물색한 지금의 장소가 안성맞춤이라 서로 장소를 교환하게 되었다.
미술학원을 시작할 즈음의 유치원 주변 여건은 낮은 산이나 영세한 주택이 많은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유치원을 지을 무렵부터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요한 21, 6) 배 오른쪽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고자 할 때 주님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더 좋게 이끌어 주심을 뼛속 깊이 느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