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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    
글쓴이 : 박영희    25-09-09 15:09    조회 : 2,084

인연

박영희

 

문득 배우자를 선택한 과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3년 차 교사였을 때, 담임 외의 업 무부서로 학교 내의 환경부에 배치되어 선배 교사를 서포트 하며 2~3시간 연장 근무 도 자주 하곤 하였다. 선배 교사는 기혼이었는데, 동창이며 친목 모임의 일원인 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보기를 권유하였다. 나는 가정 형편상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거절하였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약사나 객관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상대와 의 혼담도 거절해 오던 터였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여동생과 남동생을 공부시켜야 하 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선배 교사가 청주의 친구 결혼식에 가서 축가를 불러 달라고 하였다. 교장 선생님의 회갑 축하식에서 축가를 불렀던 것을 보고 부탁한 것 같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청주까지 가서 축가를 부르게 되었고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서울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같은 학교에 근무했 던 선배 교사의 권유로 일간지 신문사 광고국에 근무한다고 하였다. 이후에 생각해보 니 선배 교사가 축가를 핑계로 친구를 만나보도록 기회를 만든 것 같았다. 남편 친구의 결혼식에서 자연스럽게 만난 이후, 언변이 뛰어나고 호감을 주는 인상이어서 몇 번 더 만나보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남편이 갑작스럽게 빨리 결혼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미안해하면서 부탁하였다. 아버님에게는 큰아들은 큰댁으로 양자를 보내고, 남편이 둘째 아들이지만 호적상으로는 장남이었다.

박 선생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립니다.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가 내가 결혼하는 것을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보고 꼭 보고 싶어서 맞선을 20번이나 주선하셨으나 끝내 혼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무척 한이 됩니다.”

친정집에서는 집안 형편상 몇 년은 더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를 해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남편의 간곡한 부탁에 설득당하여 결혼을 강행하였고 결국 결혼식을 하고 9일 후에 시어머님은 돌아가셨다. 결혼 이후에도 동생들 학비를 보내 주고 친정 부모님을 3년 모시고 살기도 하였다. 이렇게 무리하게 결혼을 하게 된 이유는 각자 가정형편이 어려워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이끌림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여중 여고를 함께 다닌 절친은 자기 남편의 사업이 계속 힘드니까 결혼 전에 혼담이 있을 때 키가 작다고 거절한 사람과 결혼하였더라면 이렇게 빚에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결혼 전에 맞선을 보았던 사람까지 들먹이며 후회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는 친정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걸레 한 번 잡아보지 않고 자랐기 때문이다.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시동생도 있고, 나이가 10년 위인, 가끔 사고를 치는 시아주버님도 계셔서 사고를 수습하려면 힘들었으나 남편에 대해 신뢰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의 인연을 후회해 본 적은 별로 없다. 나는 과로로 인해 고관절염을 앓아서 1년 내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누워서 생활한 적이 있다. 46년 전 유치원을 지으면서 연탄보일러로 난방을 한 탓에 하루에 연탄 11장 이상을 갈아야 했다.

편이 폐암을 앓고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자서 연탄을 다 갈았던 것이 마음 아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을 칠 일이다.

40여 년 전에도 폐지를 줍는 아저씨들이 유치원에 와서 입고 있는 잠바를 벗어 달 라고 하면 어린이들을 지도하다 말고 3층에 있는 사택으로 올라가서 잠바며 바지를 벗어주었다. 수업 끝나고 오후에 오라고 할 만했는데도 힘든 분들을 우선 배려하였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연세가 좀 드신 분이 계셨는데 힘들다고 빨랫감을 꺼내서 치우기도 하였다. 나보다 사랑이 많은 남편은 옆에 있으면 힘든 일도 척척 풀어내는 해결 사 같았다.

 

비록 22년을 살고 사별했지만, 늘 함께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대화를 많이 하였으므 로 대화한 시간으로는 22년의 두 배인 44년이지 않을까? 이에 한 문우가 "남편은 지 금도 당신의 마음 안에 살아 있고, 대화한 시간으로는 44년을 함께 산 부부와 비슷한 편이므로 이를 '사랑 총량의 법칙'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기도를 해주시던 치유 은사를 받으신 어르신께서 그 양반은 짧게 살아서 아쉽지 자기 볼일을 다 보고 간 사람이다.” 고 하였다. 가족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 놓고 하느님께로 돌아갔지만 남편의 보조자에서 책임자로 살아가기엔 너무 벅차고 힘겨운 일이었다. 혼자서 30여년을 잘 버텨 온 것에 감사한다. 아들과 유아교육을 전공한 며느리가 뒷받침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가치관과 가성비를 뛰어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세 자녀 모 두 아빠에 대해 존경심을 품고 있고, 무엇보다도 서로 늘 옆에 있기를 바랐기에... 그 리고 여전히 내 마음 안에 살아 있기에... 


이영옥   25-09-09 17:23
    
아름다운 글, 잘 읽었습니다. 평생의 파트너를 만나게 해 준 선생님의 노래 솜씨가 궁금합니다. <사랑 총량의 법칙>을 숙지하고 갑니다.
박영희   25-09-09 17:31
    
'사랑 총량의 법칙' 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지요? 처음 합평받을 때, 사석에서 이 말씀을 해주셔서 많은 위로가 되었었지요... 감사드립니다. 죄송하게도 지금은 세월이 흘러 노래는 들려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노정애   25-09-12 16:26
    
박영희님
따뜻함이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남편분과의 만남. 인연이 깊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며 최선을 다해 사신 그 삶이 보여집니다.
'사랑 총량의 법칙' 도 신선합니다.
박영희   25-09-12 22:34
    
노정애님,
  고맙습니다!
  제 자신이 위로받고 싶어서  '사랑 총량의 법칙 ' 을 생각해
  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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