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도우려다
박영희
2004년도에 아이파크 아파트에 당첨되어 이사를 온 베로니카 자매는 이사를 와서 그리 여유가 없던 시절에도 분당 등 서울 외곽지역으로 성물판매를 하는 자매를 도와 무보수로 운전기사로 봉사하였다. 기름값도 물론 받지 않고. ‘꽃보다 할배’로 유명해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의 메주고리예서 성모님 상을 사와 우리나라에서 여러 개를 찍어서 개인적으로 판매하는 바울라 자매님을 도와주는 봉사였다.
메주고리예는 공식적으로 승인은 아직 되지 않았지만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이다. 나도 99년 여름방학 휴가 중에 이태리, 프랑스, 독일 성지순례를 다녀올 때 로마의 남단 아드리해를 페리호로 밤새 건너 메주고리예를 다녀왔다.
메주고리예를 가면 기적을 한 가지씩 체험한다는 안내를 받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 간 나도 메주고리예에 도착하여 한약같이 검은 빛이 나는 액체를 심하게 토하였다. 그리고 40대 중반인데 이미 중단되었던 생리가 성지 순례중에 다시 시작되었다. 15박 16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성당에 나가자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고 바울라 자매님이 연신 신기해하더니 자신도 메주고리예를 6번 이상 다녀 왔다.
매일 미사 후에 남아서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하던 안나 형님이 늘 십이지장 궤양으로 거북한 소리를 내던 내가 성지순례 후에 그 소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검은 빛의 액체를 토하고 십이지장 궤양이 치유된 것이다. 이 십이지장 궤양은 20대 초 빚쟁이들에게 시달려서 발병한 것으로 늘 과로하다 보니 지병이 되어 있었다.
바울라 자매님은 메주고리예를 다녀오면 묵주를 많이 사다가 우리 성당 교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바울라 자매님이 보험 권유를 하여 나는 은행 대출 관계로 벅차서 아들에게 들어주라고 하였더니 자세한 설명 없이 약정서를 후에 쓰면서 아들이 원하는 조건이 아니라 해약을 하게 되면서 손해를 보게 되어 내가 아들에게 손실액의 50%를 변상해 주었다.
베로니카 자매님은 손위 동서가 보험 권유를 하기에 동서에게 보험을 들어주기도 벅찬 입장이었다. 나 같으면 동서에게 보험을 들어주어서 어렵다고 거절할 만도 한데
베로니카 자매님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었다. 바울라 자매님이 유방암으로 타계한 후 권유한 보험이 만기가 되어 모두 수령하니 1억원이 되어 정기예금을 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험을 들어달라고 하니까 도와주려고 들었던 보험이 보험을 수령 한 시점에서 평가해보니, 지금은 그렇게 좋은 조건의 보험은 없다고 했다. 보험을 들을 당시에는 이렇게 좋은 조건이 될 줄은 모르고 단지 권유하니까 바을라 자매님을 돕기 위해 들었던 보험이 효자가 된 셈이다.
유방암 말기가 되어오자 바울라 자매님은 팔이 부어서 어깨에 끈을 걸어 퉁퉁 부은 팔을 부축하고 다녔다. 베로니카 자매님은 고통스러운 바울라 자매님께 자주 10만 원씩 용돈을 주며 겪려 하였다. 선종하기 20일 전쯤에도 새벽 미사에 참례하였다가 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울라 자매님에게 용돈 10만 원을 주었다. 노자 돈이 된 것이다. 그 뒤에 바울라 자매님이 바로 선종하여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치러진 입관예절에 베로니카 자매님과 함께 참석을 하였다. 바울라 자매님의 표정이 평소에 보지 못했던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우리는 감탄하였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병고로 보속을 다하고 천국에 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취미로 하고 있는 유화반에서 자매님 두 분이 작년, 올해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자연히 분가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아들네 가족과 같이 사는 저에게 “얼른 분가하세요. 왜 며느리와 아들을 힘들게 해요?”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대 차이만은 아닌데...” 그 뒤에 한 분께 베로니카 자매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혼자되신 시어머님을 삼 형제 중에서 누가 모실까? 가족회의를 할 때, 막내 며느리인 베로니카가 손을 들고 ‘제가 모실게요.’ 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는데 방 2개의 셋방을 살고 있을 때였고 아이들도 아직 없을 때였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서인지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성장하고 있다.
제사도 막내아들인 자기네 집에서 지내고 있다. 제사뿐 아니라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연미사를 한 달도 거르지 않고 3 년째 봉헌하고 있다. 둘째 형님의 아들인 조카가 결혼을 하여 작은 아파트에 입주 할 때도 아파트 수리비용 2,000 만원을 부담해 주었다고 한다.
베로니카의 남을 배려하는 장점은 친정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시골에서 부농이기도 하였지만 친정 아버지께서 명절 때는 동네 사람들에게 고기 한 근 씩 다 돌리고 떡을 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친정 아버님은 성당에는 다니지 않으셨지만 매일 성경의 집회서를 읽으셨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이타적인 성격은 타고나기도 하였지만, 훌륭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기에 자연스럽게 이웃을 위한 배려와 선행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생활하면서 베로니카 자매님이 남편과 함께 사업에 매달리게 되자 자녀들을 돌봐주시게 되었다. 시어머니를 모시면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데 적격일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았다. 베로니카 자매님은 강원도에 세컨 하우스가 있어서 일주일에 2번은 새벽에 왔다 갔다 하며 농사를 짓고 있으면서도 몸이 불편한 분을 성당에 모셔오고 모셔다 드린다.
“왜 힘들게 며느리와 함께 사세요?...” 아들네 가족끼리 살게 독립 하라는 의견을 내주신 분들께 “며느리가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집에서 자라서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공로를 인정하여 딸들이 며느리도 자기들과 똑같이 폐원하는 유치원 토지를 증여받도록 먼저 제안하였다고.”“며느리는 유치원에서도 18 년간 헌신적으로 근무하며 유치원 운영을 도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