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놈의 자식
김김연
밤 11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자다 깬 남편이 들입다 소리를 질렀다“ 누고? 어느 개 놈의 자식이 늦은 밤에 전화질 질이야” 전화를 받으니 군에 간 아들이다.
“아들아, 밤 늦게 전화 하지마라,”
“지금 업무가 끝나서 어머니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요
“아 그래“ 그런데 앞으로는 좀 일찍 하도록 해라.”
십분 쯤 지났을까 또 벨이 울렸다. 받으니 시누이였다 급한 볼일이 있는지 오빠를 바꾸란다.
“여보 전화 받아요”
“누고” “어느 개년이요.”
이 일이 있은 후 아들이 늦게 전화해도 투덜대거나 화내지 않는다. 욕 한 마디가 그의 생각을 바꾸게 했나보다.
아들은 대학에 들어 간 후 민주화운동 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너희들 서울공부 시킨다고 지방에서 애쓰는데. 네가 이래도 되느냐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아들 책상에는 언제나 서랍 하나가 잠겨 있었다. 하루는 잠긴 서랍에 열쇠가 걸려있어 열어보니 일기장이 있었다. 어제 저녁에 쓴 일기에는 오늘 자기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했으니 동생에게 자기가 없어도 부모님 잘 모시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며 데모 열기가 뜨거웠다.
아들을 찾으니 어느 학생이 아들을 데리고 왔다.
“어머니 웬일이셔요?”
영등포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는데 네가 너의 학교에서 요주의 인물이라고 나를 경찰서에 오라고 하더라 그랬더니 얼굴색이 달라지면서 알았다고 했다.
어디서 이런 거짓말이 나왔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술술 풀려 나왔다. 하나님께서 내 처지를 알아 미리 준비된 말을 주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아들은 늦게 집에 들어오고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X X 대학생들이 중앙정보부 대공분실을 습격하여 화염병을 던지고 기물을 훼손한 사건으로 학생 모두를 체포했다는 기사가 대서 특필로 실렸다.
우선 거짓말로 급한 불은 껐지만 장차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아이의 수첩에서 몰래 학생증을 꺼내 구청에 자원입대 신청을 했다. 보름만에 영장이 나오고 봉투 속에는 입대 차비도 들어있었다. 아들에게 영장이 나왔다고 하니. 내가 언제 군대 간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가세요 길길이 날뛰며 나에게 성질을 부렸다. 입대 날 설득하고 달래어 증평 훈련소에 같이 가서 입소 시켰다. 아들이 제대 할 때쯤이면 이 나라도 데모 없이 조용해지겠지,
훈련이 끝나고 춘천 부대에 배치 된 지 두 달쯤 지났을까? 안경이 깨졌다고 전화가 왔다.
안경이 없으면 안 되는 아이다. 춘천 부대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면회 왔다는 전갈을 받고 아들이 이층 계단을 뛰어내려와 내 앞에 서더니 “충성”하며 경례를 하는데 그 소리가 면회실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온몸에 기합이 들어있는 모습이 과연 군인다웠다. 불쌍하고 애처로운 생각에 가슴이 아렸다. 하루 외박을 얻어 부대 밖으로 나오자 그제서야 엄마 부르면서 나를 안는데 둘이 부등켜안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길에서 울었다. 스무 살 저 어린 것이 시대를잘못 만나 고생 하는구나 싶었다.
그 후 백담사에 배치되어 전두환 대통령 신변 보호를 위해 데모 대원을 막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데모 하다가 군에 갔는데 데모 대원이 던진 화염병에 옷을 태우기도 하고 운동화에 불이 붙어 화상을 입어 고생도 많았다. 그때는 전투경찰에 입대 하는 사람이 적어 육군에서 차출하여 전경 임무를 수행 하게 했다 .세월이 지나 본대에 귀속되어 무슨 업무를 맡았는지 밤 열한 시가 넘어서야 끝났다며 전화를 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개놈의 자식 소리도 듣게 되었다. 제대 할 때는 다달이 모은 용돈으로 엄마의 금반지를 사왔다. 남편은 군에가 용돈으로 엄마 금반지 사 온 놈 있으면 나와 보라며 기뻐했다. 제대 후 복학해서는 민주화 운동이나 데모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지금도 아들은 영등포 경찰서에서 어미를 불렀다는 거짓말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저더러 개놈의 자식이라 욕한 것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