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김김연
장식장 속의 수석들에게 말을 건다. 돌들이 대답 할리 없지만 수석들 위로 살며시 떠 오르는남편의 얼굴이 반갑다. 남편이 그리울때면 늘 장식장 속의 수석들을 들여다 보는게 요즘 내 버릇이다.
장식장에는 스무개의 수석들이 있다. 수석마다 처음 만날때의 인연과 우리집에 와서 나랑 같이 살게 된 사연을 다 간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거북 형상의 돌은 예술적 아우라를 품고 있기도 하지만 이 돌은 들여다 볼 때마다 남편을 떠 올리게 해서 더 정겹다.
젊은시절, 남편 직장 상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문갑 위에 매끈하면서도 하얀 꽃이 그려진 돌 한 점과 호랑이 형상을 한 돌 두 점이 놓여 있었다. 이리 좋은 돌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상사의 아내가 대답하기를 자기 남편이 구해 주었다고 했다. 나는 웬일인지 속에서 까닭모를 열불이 올라왔다. 그래서 그 집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남편 상사집을 방문하고 온 날 이후로 내게는 전에 없던 특별한 취미가 생겼다.
냇가 강가 바닷가에 갈때 눈에 띄는 돌이 있으면 무작정 가방에 넣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경상도 거제도 학동 해변에서 여러 형상의 돌을 주워 담은 일을 영영 잊지 못한다. 같이 간 친구들은 둥글고 매끄러운 돌이 장독에 넣기 좋다고 했지만 나는 까칠까칠하고 각진 돌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돌들을 욕심껏 무겁게 담아오느라 가방 끈이 끊어져 두손으로 안고 왔다. 힘에 상당히 부치는 일이라 그때 어깨 인대가 늘어지고 찢어져 40년이 지난 지금도 어깨 힘을 잘 못 쓰고 있다. 자연의 바람과 햇살과 눈비를 온몸으로 견디며 마침내는 자연의 온갖 풍경을 자신의 몸안에 새긴 수석 내 몸에 까지 수석의 풍경이 새겨진 거라 여기며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불편해도 잊지 못하면서,
수석을 만들기 위해 주워온 돌들을 솥에 넣어 “삶고 말린” 다음 콜드크림을 바르고 문질렀다. 무늬가 선명하게 나올 때 까지 반복하여 문질렀다. 굳이 돌을 삶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돌을 삶지 않고 물에 넣어 며칠 간 흙먼지를 털어야 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모양이 희귀하고 빛깔이 좋은 것들은 따로 좌대를 만들어 거실에 진열해 놓았다 내 손을 거친 수석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다.
결혼하고 스무 해 만에 자동차를 샀다 자동차를 산 기념으로 남편과 나는 십리 쯤 떨어진 청량산으로 약수를 뜨러갔다. 가다가 지인의 집에 들렀는데 뜻밖에 수석을 둘이나 얻었다.
울퉁불퉁한 형상의 오석이었다. 돌덩이를 싣고 약수터로 올라가다 차바퀴가 논두렁과 길 사이에 끼어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다. 돌의 무게 때문이었다. 보험회사에 구조를 요청해 차를 들어 올리는 동안 내내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남편은 성이 나서 가던 길을 되돌아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수석들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마루 한 구석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날 우리집에 들른 친정어머니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돌들을 보고 정신 사납다고 치우라고 성화를 하셨다.
그런 난리를 치르고도 돌에 대한 나의 집착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해 봄길을 가는데 공사장 옆에 돌더미가 쌓여있어 살펴보자 색깔이 검고 큰 구멍이 나 있는 돌들이 보였다.
전체가 작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돌 두 개를 골랐다. 하나는 토끼 귀처럼 생긴 것이고, 다른 것은 제주도 용바위가 누워 있는 형상이었다. 볼수록 특이했다. 이 돌은 아주 먼 옛날 제주도 화산이 폭발했을 때 생긴 화산석이었다. 돌의 무늬와 모양은 용암 속에서 아픔을 견디며 몸부림치면서 생긴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처음엔 나의 수석 취미를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수석에 빠져 지극 정성을 기울이는 내게 감동을 했는지 남편은 지인을 통해 수석을 얻어오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대한민국지도를 닮은 것도 있고, 책 모양을 닮은 수석이며 여러 동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돌도 있었다. 수석의 생김새만큼이나 어느새 아내 사랑도 다채로운 형상과 색채를 띠고 있었다.
남편은 ‘당신은 백년을 돌아다녀도 이런 돌들 못 주워 올 걸?’ 하며 은근히 약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놀림이 싫지 않았다. 이미 수석을 통해 우린 부창부수가 되어버렸기에
그런 남편이 이태 전 나를 떠나 저 세상으로 갔다. 남편이 그리울 때면 버릇처럼 수석들을 바라본다. 그러면 수석들 위로 조용히 웃는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내도 없고 수석도 없는 저 세상에 한번 가더니 소식 한 자 없는 남편 그러니 오늘도 수석을 들여다 보며 남편의 소식을 물을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