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
이 경 숙
저녁은 별이 더 아름답다. 오래간만에 하늘을 보며 별을 감상한다. 평소에 무뚝뚝한 남편이 “이런 것이 행복이야” 한다. 아들내외가 회를 좋아하는 우리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는 더 큰 것을 주었건만 이 작은 것에도 행복해 하니 우리 내외가 늙고 약해졌나? 아니지, 관심과 정성으로 마련하는 그 따듯한 마음이 전해오기 때문이겠지..
사랑하는 분도야, 오늘 저녘엔 너와 함께한 지난 시간이 어제같이 생각되는구나. 너를 낳고 나니 할머니께서 32년 만에 얻은 막내아들 손주라고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그러나 너는 감기로, 나는 애기 낳는 것 보다 더 아픈 젖몸살로 매일 병원과 입원을 반복했다.
가짜 젖꼭지를 물었던 너는 그 젖꼭지가 찢어져 밤새 울어 나와 아빠가 밤새도록 안고 지내니, 할머니가 “너희들 내일 출근해야지”하시며 할머니께서 안고 달래 보셨지만 울음은 그치질 않았단다. 세 사람이 모두 밤을 꼬박 새웠고, 젖꼭지를 꿰매 보았지만 까칠까칠하여 빨지를 않고 밤새 울어 우리를 쩔쩔매게 했단다. 그 가짜 젖꼭지는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나 가야 구할 수 있었기에 별 수 없이 너의 불만을 밤샘으로 대답했었단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를 잘해 우리를 기쁘게 했지. 책읽기를 좋아하는 너는 일학년부터 안경을 써서 우리를 안쓰럽게 했단다. 집에서 나갈때는 내가 있으니 쓰고 나가, 저만치 가서는 벗어 책가방에 넣곤 하였단다. 훌륭한 사람은 다 안경을 썼다고 너를 위안을 시켰건만, 그때만 해도 안경 쓴 사람이 너희 반에 너와 선생님 뿐이였으니 부끄럽기도 했을 거야.
너희 일기장엔 엄마가 회사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썼지. 어느 주말엔 대문에 팔을 벌리고 서서 “우리 엄마 집에 있다” 고 묻지도 않는 말을 친구들에게 할 때, 엄마가 집에 없어 허전하고 힘이 없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단다. 퇴근해 와 보면 씽크대에 책을 쌓아 발 돋음을 해놓고 설거지하던 너희 남매를 기억하며 마음이 젖어온다. 유난히 아픈 사춘기를 격으며 우리는 많이 힘들었지? 그러나 열심히 미사시간에 복사를 서며, 다진 신앙이 밑거름이 되어 오늘이 있고, 엄마는 매주 목요일이면 철야를 하며 밤을 하얗게 새고 금요일에 출근하면서 너를 위한 희생의 보속으로 삼았지. 그때는 그 힘이 어디서 왔는지?
분도야! 인생은 연습이 없다는 구나? 엄마의 시행착오도 많았겠지! 네가 대학에 들어가 우리의 사랑스러운 세실리아를 만난 것은 하느님의 안배라고 생각한다. 엄마 친구들은 딸을 수녀원에 보내니 딸 같은 며느리가 왔다고 말한다. 아빠가 세실리아를 처음 보던 날,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집 앞 제과점에서 너희들 나오기를 기다리셨다지. 우리는 얼마나 흥분되고 궁금했는지 몰라.
딸이 시집 잘못 가면 자기 평생 고생 하지만 며느리가 잘못 들어오면 삼대가 망한다고 한단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잘못하고, 형제들 의리 다 끊고 자식에게 바른 교육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너는 기억하니? 내가 너희들 결혼 이야기가 나올때 세실리아에게 말했지, “우리 집은, 돈 많은 집도 아니고, 출세한 집안도 아니지만, 사람 아껴주는 집”이라고. 욕심 많은 엄마가 너에 대한 부족함을 재색(才色)이 겸비한 세실리아가 부족한 부분을 온전히 채워주며 남매 잘 키우며 예쁘게 사는 모습이 대견하고 흐믓하다. 너희들이 결혼한지가 거의 15년이 가까이 되지만, 퇴근 후 집에 와서 세실리아를 도와주는 너를 볼 때 옛날에 너에 아빠를 보는 것같다. 보통 엄마들이 “어떻게 기른 아들인데 집에서 일하는 것 싫어 한다”고 하니 너는 그랬지, “며느리는 자기 집에서 귀하게 기른 딸이 아니냐”고 엄마도 동감이다. 너의 그 정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가정은 부부가 가꾸어 가는 작은 화단이다. 부부가 협심해서 물주고 잘 가꾸어야 희망 하는대로 잘 자라고 꽃이 피겠지.
분도야! 노랫말처럼, 인생이 별거더냐! 서로 양보하고, 사랑하며 상대를 이해할 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겠지. 말로 주고 되로 받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하니, 이것이 부모 자식이고 가족인가보다. 거창하고 큰 것만이 다가 아니고 작은 배려에도 이렇게 잔잔한 행복감이 젖여오는 오늘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