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행복
이 경숙
L과 C는 에쿠아도르와 아르헨티나에서 살다가 각각 미국으로 다시 이민 와서 한 교회에서 만났다. 그 교회에서 시작한 성경 공부가 마지막이던 날 한 테이블에 십 여명 씩 둘러 앉아 각자 어떻게 하느님을 영접했는지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L 차례에 “ 나는 중학교를 미션스쿨을 다녀서 그때 수녀님들에게서 교리를 배워 알았다” 고 말했다. C는 성경공부 시간 동안 주방봉사 담당이라 끝 시간에 처음 참석했다. 집에 오는 길에 C가 함께 나오면서 L에게 물었다.
“미션스쿨이면 몇 년도 어느 학교를 다녔어요?” L은 1957년도에 P학교를 다녔다고 대답했다.
C가 다시 물었다, 기억나는 친구이름을 말 할 수 있어요?.”
“김춘자 라고 토랜스에 사는 친구예요.”
“친한 친구 이름이지만 흔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이 있을지도 모르고, 혹시 또 생각나는 다른 친구의 이름은 기억할수 있어요?”
“계길자 라고 있어요, 그는 희성이라.”
“어머 , 그는 우리 동창인데, 틀림없는 우리 반 친구에요.” 이렇게 해서 궁금증의 물고가 트이니
. 이 친구 저 친구 아는 이름이 거론되면서 C와 L은 동창임이 확인 되었다.
L은 P중학교에서 다른 고등학교로, C는 다른 중학교에서 P고등학교로 입학 했으니 서로 가고 오고 해서 모르는 사이였다.
그 날밤 전화에서 불이 났다. 이 친구 저 친구에서 확인 전화가 왔다. 나와 토랜스 친구는 왕래가 있었지만 , L 친구, 덴버 친구와 씨애틀 친구는 연락은 닿었지만 오래 못 만난 친구들이다. C는 졸업 후 처음이니 얼마나 친구가 그립고 보고 싶었을까? 그는 몹시 흥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당장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튼날 웨스턴 겔러리에서 만나기로 약속 했다. 허지만 교복입고 단발 머리에 해맑았던 소녀가 오십여 년이 지나 칠십이 가까운 할머니를 알아 볼 수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꿈 많았던 시기가 아니던가? 그 후 우리는 한국에서 남미와 미국으로 전전하며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어떻게 살았는지?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고 보고 싶어 잠이 오질 않았다.
다음날 우리는 약속장소에 일찍 도착했다. 각자 이름을 대고 마주하니 어렴풋이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C와 나는 렉타(湖) 여행을 함께하며 1박 2일 예정의 여행이 고속도로에서 버스 고장으로 2 박 3 일이 되어 함께 있었건만 그곳에 그 친구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서로 알아보지도, 짐작도 못했었다. 그냥 만나면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한 친구의 세심한 관심과 끈질긴 질문으로 지나칠 뻔한 일이 이국에서 동창생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친구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넓은 곳에서 친구를 만나기란 불가능 하고 같은 이웃에 있으면서도 서로 모르고 지낼 뻔 했다. 우리는 오랜 만에 만났건만 이웃에서 계속 함께했던 친구인양 바로 말을 놓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이래서 동창생이 좋구나 생각이 들었다.
C는 “우리 때는 서기가 아니고 단기를 썼다” 며 서기로 계산하며 앨범을 가져와 사진의 얼굴을 하나 하나 짚어 가며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 했다.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가깝게 또는 멀게 있으면서, 못다한 만남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 LA에서 토랜스로, 덴버로 , 씨애틀로 행복한 여행의 시간을 가졌고 소녀시절의 추억을 조잘대며 잠시나마 노인이 아닌 십대의 소녀로 변신되었고 만나지 못한 친구들의 이름을 떠올려 안부를 물으며 헤어질 줄을 모르니, 토랜스 친구 남편이 “여학생들,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우리들을 일깨우곤 했다. 친구들의 따뜻한 사랑과 융숭한 배려로 즐거운 이국 생활의 행복한 만남을 가졌다. 때로는 한국에서 방문하는 친구들도 함께 하였다, 여섯 가정이 나름대로 자기 위치에서 모범적으로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이 마음 흐뭇 하고, 고맙기 까지 했다. 특히 L은, 나의 남편이 귀국 후에 내가 급체로 응급실에 간 후로는 혼자 있는 나에게,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형제 같은 따듯한 정으로 베푼 친절과 배려는 두고 두고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친구야!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만은 더 늙지 말고 긍정적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살자.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에 찾아온 만남의 행복이 나를 오래도록 기쁨의 미소를 짓게 하고 행복한 구름 위에 떠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