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공개수배합니다
"이대로 살아야하나 아주 막막합니다. 희망이 안보여요. 최소한 열심히 살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희망이 안보이니 좌절할 수밖에요." 그는 무표정하게 운전을 하며 말한다. 난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말도 위로가 안 될 테니까. 그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므로.
2015년 2월초에 인천병원을 가야만 했다. 20여년 전에 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걷는데 장애가 있다. 보행을 돕는 보조기를 맞추려고 찾아간 것이다. 그는 장애인 같은 교통약자를 돕기 위한 장애인단체의 차량을 운전한다. 내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인천까지 동행하게 된 셈이다. 그는 계속 말한다.
"TV에서 자살하는 뉴스를 보면 많이 공감해요. 사람에게 어떤 희망이 있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면 나중에 좋은 집사고 좋은 차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열변을 토하는 그에게 난 말했다. "정상적으로 살아가선 돈을 모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그는 단호히 잘라 말한다.
"아니다. 저는 대통령이 저와 같은 사람을 만나주지도 않겠지만 한 달동안만, 아니 며칠만 제 차에 타고 다녀보라 이거에요. 열심히 일한만큼 대접을 받아야 정상인 사회가 아닌가요?" 그는 어처구니 없다는 식으로 나에게 반문한다. 나 역시 딱부러지게 말이 없었다. 그저 헛웃음으로 동의를 표현해줬다.
그는 계속해서 이야기 한다. "이곳에서 퇴근하면 6시. 퇴근 후 집에 가면 6:30분. 씻고 잠이 들면 7시. 그리고 밤 12시에 일어나요. 12:10분까지 옷입고 새벽 12:20분에 출근을 합니다. 〈교차로〉에 가서 735부를 실어요. 다 돌리고 나면 새벽 6시. 7:30분에 집사람을 출근시키고 저도 출근하면 8:30분."
그가 말하는 일상생활은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그의 부인은 보육교사라고 한다. 그에겐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내년도에 중학교에 들어간단다. 내가 걱정되지 않냐고 물으니 그래서 투 잡(two job)을 하고 있단다. 이것으로도 생활유지가 안되어서 쓰리 잡(three job)을 알아보는 중이란다.
그는 올해 42세라고 한다. 난 속으로 아직까진 젊으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사람의 육신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근력은 약화된다. 마냥 저런 강행군을 계속할 순 없다. 이 강행군은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기 때문에 작은 사고로 활동 못 할 수 있다.
그의 강행군이 염려되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요즘에는 이렇게 계속 살아야 되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드시겠어요?" 그러자 그가 대답한다. "엄청 들죠. 그리고 제가 못 배웠잖아요. 못 배웠으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잖아요. 잘 배웠으면 대기업 들어가거나 공무원 했겠지요." 그의 푸념은 그렇게 이어졌다.
계속해서 그는 말한다. "제가 얼마 전에 대학에 합격했었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뭐라시는줄 아세요? 대학에 떨어지길 기도하셨데요. 학비를 못 대주시니까요." 말하는 그의 입에서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계속 말한다. "이런 현실이 제 생애에 바뀌겠어요?" 난 말했다. 언젠간 바뀌지 않겠냐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내리니 늦겨울의 황량한 바람이 불어온다.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의 접수대에 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훨체어에 앉아있는 그들은 공통적으로 다리가 절단되어 있었다. 원무과 직원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이 산업재해 환자라고들 했다. 마치 꿈과 희망이 절단당한 모습이었다.
2015.03.13.오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