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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 순례기    
글쓴이 : 김선봉    16-07-17 21:52    조회 : 5,780
   [최종] 재래시장_순례기-2016.07.17.hwp (13.0K) [2] DATE : 2016-07-17 21:52:36

시큼한 땀 냄새와 생선가게의 비린내가 내 코를 자극한다. 과일가게의 참외에서 풍기는 향긋함, 삶은 옥수수에서 보이는 반질반질한 윤기, 오고가는 사람들의 땀냄새에서 삶의 고단함도 느껴진다. 이곳에 오면 사람들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삶의 현장을 간접체험 한다.


  5일장이다. 5일간격으로 장이 들어선다. 난 재래시장에서 필요한 식재료와 필요품을 구입한다. 허나 더 큰 목적은 다른데 있다. 내가 치열한 삶의 현장에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증명 받으면 힘이 난다. 살아갈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구성원으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즉, 나만 힘들게 살아가지 않음을 체험하는 셈이다. 하여 불끈불끈 힘이 날 수밖에 없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넘치듯, 나도 힘이 넘쳐난다.


  오후 시간에 순대골목으로 갔다. 단골집에 가서 순대국으로 주문을 했다. 늦은 점심이었다. 주인 할머니가 순대국을 가져왔다. 아, 오늘 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목욕재계하며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가꾸었을 돼지다. 비록, 이름 모를 돼지이지만 감사의 뜻을 전한다. 덕분에 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포만감에 젖어 나른한 상태로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 털래털래 수산물코너로 갔다. 마침 좌판대에는 여러 종류의 수산물이 놓여 있었다. 동태며 고등어, 갈치, 오징어 등이 있었다. 자신이 주름잡던 곳에서 잡혀와 고생이 많다고 생각했다. 집 떠나면 고생하는 건 물고기나 사람이나 똑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수산물시장을 지나 반찬을 만들어 파는 가게로 갔다. 이곳은 내가 자주 이용하는 상점이다. 반찬을 직접 만들어 판다. 나는 성실한 단골이다. 아직 사다놓은 반찬이 남아 있어 사지는 않았다. 이 반찬가게의 대각선방향으로 건너편엔 멸치 파는 상인이 있다. 아주머니가 주인이다. 볶음용 멸치 한 되를 구입했다.


  그 건너편의 대각선 방향으론 뻥튀기를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난 이 뻥튀기를 쌓아놓고 먹는다. 입이 구질구질할 때 심심풀이로 먹기에 딱이다. 그렇지만 뻥튀기에 중독돼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엔 끊으려고 일부로 사지는 않았다. 중독된다는 건 위험하다. 대상에 중독되면 의존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대로 위로위로 올라갔다. 한때는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걸어야 했다. 헌데 그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따뜻한 봄날을 만끽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잠시 후 시장과 차도가 만나는 사거리에 도착했다. 건너편에서 삶은 옥수수들을 파는 아주머니가 아는 척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하며 하나 구입했다.


가만, 다 구입했나? 혹시 빼 먹은 게 없나? 내 스마트폰의 메모장에다 기록한 구입목록을 살펴본다. 어렵소? 구운 김을 빼먹었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했다. 사람들 속을 비집고 나아가는 건 힘이 든다. 일정한 흐름을 역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실수로 빚어진 결과인 것을.


  그리고 그 흐름을 거슬러 구운 김을 파는 곳으로 갔다. 주인장이 웃는 얼굴로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낸다. 나도 인사하며 구운 김을 구입했다. 듣기로 구운 김 파는 아저씨가 근처의 5일장을 3군데 더 다닌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장들을 돌아다니며 구운 김을 파는 셈이다. 떠돌이 장사라 생각했다.


이젠 다 구입했으렷다! 집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로 메워져 있었다. 그곳엔 무슨 공연을 한다며 차량이 있고, 그 위에서 누가 노래를 한다. 궁금해 잠시 멈춰서 구경하니 재래시장을 홍보하기 위한 거리공연이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재래시장을 홍보하려고 공무원이 생각해 기획했을 것이다.


  재래시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그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홍보가 안되서 재래시장 운영이 안된다고 난 생각하지 않는다. 홍보가 안되서 시장운영이 안된다는 접근방식은 피상적인 접근일 수 있다.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여 구조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어려운 경제도 그렇다.


  난 자주 재래시장을 방문한다. 모르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며 치열하고 고된 삶의 전쟁터 한 가운데 있음을 상기한다. 느슨해지는 삶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활력을 얻는다. 어렵고 힘든 세월을 보내는 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이렇게 한번 다녀가면 날 각성시켜 긴장된 삶을 살게 한다.


당분간은 이 긴장이 내 삶을 이끄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긴장의 끈은 다시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그 때마다 재래시장을 방문해 에너지를 충전 받을 것이다. 에너지가 방전되면 사람은 늘어지고 쳐진다. 감정은 다운되고 우울해진다. 삶의 에너지가 방전되면 충전해서 활력을 되찾으면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고단하고v힘들었지만, 이런 수고가 살아가는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이러한 작은 보람과 풍경들이 모여 살아가는 의미가 될 것이다. 재래시장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거칠지만 꿈틀대며 약동하는 기운이다. 재래시장을 찾아가는 이유이다.

2016.07.17. 최종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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