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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선 씨    
글쓴이 : 최재선    14-06-26 17:33    조회 : 6,228
   도선 씨.hwp (35.0K) [0] DATE : 2014-06-26 17:33:28

 

도선 씨

최재선

 

  내가 이 곳 화심으로 귀촌하였을 때 우리 마을은 다른 농촌과 별반 다르지 않게 노인이 많고 젊은이가 별로 없어 마을 분위가 생동감이 없었다. 상당히 넓은 마을 광장은 이런저런 잡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생활 쓰레기를 대부분 집에서 태우는 바람에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앞으로 농촌이 가진 자연과 생태는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귀중하고 소중한 큰 자원이다. 그리고 농촌으로 사람이 들어오게 하려면 자연과 생태를 잘 보존하여 정주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농촌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사람이 점점 빠져 나가는 공동화 현상이다. 나는 우리 마을이 발전하려면 사람들이 살려고 들어오는 마을로 만들어 귀촌인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이른 새벽 마을길에 있는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줍자 대다수 마을 사람들이 곱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꾸준히 마을 청소를 하였다. 그리고 마을이 안고 있는 여러 현안을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완주군에 바란다'에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제기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마을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지하수였다. 마을에서 공동 식수로 사용하는 수량이 넉넉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여러 번 군에 상수도를 개설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예산문제로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녹색연합이 우리 마을에서 4키로 미터 떨어진 인근 마을 지하수에서 WHO가 규정한 기준치보다 훨씬 많은 우라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기사를 보았다. 이 기사를 보고 지하수가 지닌 특성상 우리 마을 지하수에도 우라늄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완주군에 우리 마을 지하수에 우라늄이 들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수질검사를 해 줄 것을 의뢰하였다. 환경부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전북환경운동 연합 관계자와 이 방면에 전문가를 수소문하여 나름대로 철저하게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여러 번 민원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우리 마을 지하수에 대해 수질검사를 한 결과 오히려 인근 마을보다 더 높은 수치가 나왔다. 감사하게도 군에서는 예비비를 신속하게 집행하여 우리 마을을 비롯해서 인근 마을 전체에 상수도를 개설해 주었다.

  나는 희망제작소에서 추천하거나 발행한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마을사업을 할 때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마을 환경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마을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하였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완주군에서 전국에서 최초로 실시한 면장기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받아 소양면 발전위원회 교육, 환경 분과 위원장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다. 나는 전국 마을 단위(지자체)로는 최초로 우리 마을 자체적인 환경규례를 만들어 우리 마을 생태자원과 자연을 보존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도선 씨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너무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다. 그러나 도선 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러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내 스스로가 좀 평화스러울 것 같은 이기심 때문이다. 도선 씨는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다 한다. 치매 걸린 노모와 함께 마을 입구에 있는 스레트 집을 전세 500만원에 세 들어 살았다. 그는 거의 매일 술에 취해 있고 하루에 두 갑 정도 줄 담배를 태우는 골초이다. 항상 빨간 매니큐어를 열 손가락에 꽃 피듯 칠하고 때로는 노모 손가락에도 매니큐어로 꽃을 피운다. 문제는 술에 취하면 길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잠이 들어 통행을 아예 원천봉쇄하기 일쑤다. 그리고 담배꽁초를 길에다 버리고 다녀 날마다 마을길을 청소하는 나는 도선 씨가 미움의 대상이자 경계 제 1호였다.

  도선 씨가 입에 술을 대지 않고 제 정신일 때 오가는 길에 용케 만나면, 길에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여러 번 하였다. 그리고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입맛이 없다며, 라면을 사달라고 하여 몇 차례 아예 박스 라면을 사 주었다. 워낙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얼큰한 라면 국을 안주 삼을 량으로 라면을 부탁한 것이 분명하였다. 그 때마다 도선 씨는 "선생님, 저 이제 담배꽁초 안 버려요. 쓰레기도요."하면서 은근히 자신이 저지른 혐의를 벗어 내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에게 적어도 이름처럼 향기롭지 않는 '라일락'이라는 담배꽁초는 여전히 마을길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루는 이른 아침 화심교회 목사님 댁에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오다 마을 입구 도선 씨 집 앞에서 도선 씨를 만났다. 늘 술에 완취하거나 반취해 있어 비틀거리기 때문에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한 것인지 소아마비 때문인지 도선 씨를 처음 본 사람은 헷갈릴 정도이다. 도선 씨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차를 세웠다. 차창을 여는 순간 술 냄새와 함께 유쾌하지 않은 체취가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하였다. 나는 애써 감당하기 어려운 냄새를 손으로 막고 "일찍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도선 씨가 개망초처럼 웃으며 ", 선생님. 진짜 잘 만났네요. 담배가 떨어져서 담배 사러 가는 길인데 천 원이 부족해요. 담에 꼭 갚을테니 천 원만 빌려줘요."라고 했다.

  그 때 나는 지갑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차를 뒤지면 동전이 천 원을 훨씬 웃돌 정도로 가지고 있었다. 나는 우선 지독한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귀찮아서 "담배를 피우면 맨 날 길에다 버리는데 내가 왜 담뱃값을 주느냐? 그리고 지갑을 안 가져 와서 돈이 없다."고 하면서 호주머니를 다 뒤집어서 보여 주었다, 그러자 도선 씨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더니 "알았어요. 에이."하면서 사이드 미러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식탁에서 부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도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그냥 주지 그랬냐."하시면서 잠시 수저를 내려 놓으셨다. 쉰을 눈앞에 둔 아들을 장애인 보호시설에 보낸 어머니로서 18년 동안 복합장애를 가지고 있는 손자를 둔 할머니로서 마음이 이만저만 짠한 것이 아닌 모습이셨다.

  그 날 저녁 퇴근하여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버지께서 도선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귀뜸해 주셨다. 나는 단순한 타박상이나 가벼운 것이리라 생각하고 별로 귀에 담지 않고 지나쳤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마을 앰프를 통해 이장이 도선 씨 부고를 알렸다. 분재 화분에 물을 주다가 방송을 듣고 나는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과 현기증 때문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밤에 장례식장에 들러 빈소에 라일락 담 배 한 보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밤이 되자 도선 씨를 보러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아침 도선 씨를 만났을 때 차 속에 있는 동전을 다 털어줄걸 하는 후회가 솔솔 일어나기 시작했다. 10시가 넘자 내 머릿속엔 아예 도선 씨가 턱하니 버티고 앉아 버렸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장례식장으로 갔다. 문상객 한 사람 없는 텅 빈 빈소엔 도선 씨 얼굴과 전혀 다른 사진이 놓여 있었다. 다만 '고 황도선'이란 이름이 도선 씨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뿐이었다. 아마 도선 씨 젊었을 때 사진 같았다. 나는 담배는커녕 국화 한 송이 헌화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낯선 도선 씨에게 목례를 정중하게 하고 도망치듯 장례식장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빈소에는 치매 걸린 도선 씨 어머니와 얼굴이 검다 못해 숯덩이 같은 여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핑계 같지만 사진 속에 있는 도선 씨는 얼굴이 너무 달라 마음이 가벼워졌는데 빈소를 지키는 두 여자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나를 붙잡고 보내주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날 이후 퇴근하면서 도선 씨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전봇대 긴 그림자 도선 씨처럼 턱 버티고 길을 막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담 그림자 가로등 불빛에 땅바닥에 무너지면, 마치 도선 씨가 길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 무시로 길 막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모처럼 시간을 내어 마을 입구에서 집 앞까지 쓰레기를 주웠다. 도선 씨 살아 있을 때 마을 길 곳곳에 만발했던 라일락 담배꽁초 지금은 거의 한 송이도 피어 있지 않았다. 도선 씨에게 담배는 밥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도선 씨에게 담배는 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도선 씨 살았던 빈 스레트 집 앞에서 마을 입구를 바라보니 도선 씨 비틀거리면서 당당하게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임도순   14-06-27 10:26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황도선"씨에 대한 후회스러운 감정이 있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진솔한 내용이 감동을 자아내게 합니다. 화심마을의 환경과 식수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그 중 도선씨에 대한 솔직한 감정들이 참 좋게 느껴집니다.

옥에 티라고나 할까요.  "상당히 넓은 마을 광장은 이런저런 잡물이 자리하고 있었고 생활 쓰레기를 대부분 집에서 태우는 바람에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 그리고 마을이 안고 있는 여러 현안을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완주군에 바란다'에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제기하였다."에서 입니다.

마을광장에 자리한 잡물?이 가령 폐경운기와 농기구인지, 썩어가는 나무토막과 폐비닐다발, 폐타이어 등 잡물들인지, 독자들이 관찰하고 싶어하는 대목을 간단히 처리하지 않았나하는 것이고요,
마찬가지로, "마을현안"도 그렇겠지요. 관공서일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완주군"하면 "군청"이라는 것을 압니다만, 완주군청이라면 훨씬 몰입이 쉽겠지요. "완주군에 바란다"도 그런 식입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라는 표시가 있으면 어떨까요?

저도 몇년 전 늦가을에 완주군 산골마을에 간 기억이 있습니다. 농협 건물 앞에 큰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이었죠, 평지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아마 그 근방이라고 상상하면서 글을 읽으니 실감이 났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기대합니다.~~~
최재선   14-06-27 12:14
    
녜,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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