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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눈과 이 다리, 제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 : 최재선    14-06-26 21:15    조회 : 5,662
   이 눈과 이 다리는 제 것 아닙니다.hwp (31.0K) [0] DATE : 2014-06-26 21:15:44

 

이 눈과 이 다리, 제 것이 아닙니다

 

최재선

 

  꿈결에 낭자하게 들리는 새 울음소리에 잠 깼습니다. 묵방산이 새벽이슬을 머금고 초록으로 더욱 깊어가고, 화심소류지에서 핀 안개가 국약천 따라 머리를 길게 풀어 헤치면, 이 곳 화심리 사람들 칡덩굴처럼 일어나 아침을 열어젖히고 들풀처럼 일어섭니다. 이 곳에 집을 짓고 마치 유배자처럼 숨어 든 지 벌써 여덟 해가 되었습니다. 원래 시골 태생이라 말년에 전원에 들어가 사는 것을 꿈꾸었지만 생각보다 이르게 전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태어나자마자 앞을 전혀 보지 못해 시각장애 1급에다 발달장애와 정신지체를 복합적으로 가진 아들 훈용이 때문입니다.

  훈용이는 지금 열여덟 살이지만 대여섯 살 정도 밖에 안 되는 신체에 갓 돌 지난 아이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울삼성병원을 다니고 있지만 현대의학으로는 결코 앞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훈용이를 받아 주는 학교나 시설이 없어 집에서 집사람이 24시간 돌보고 있습니다. 이런 훈용이를 위해 제법 창을 크게 내고 부모님과 함께 살려고 2층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속 모른 사람들은 제가 돈이 많아서 집을 크게 지은 줄 알고 부러워하는 눈치지만 실은 그럴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고단하고 외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연좌제에 걸린 것처럼 죄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복합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가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해발 구천 구백 미터를 넘어야 합니다. 그 무명고지 칼 능선에서 하나님을 만나 왜 그런 아이 주셨느냐고 떼쓰기도 하고, 데려갈 때 꼭 함께 데려 가 달라고 애원하기도 합니다. 집사람은 결혼하기 전부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평생 돌보며 살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훈용이를 주신 것으로 여기고 훈용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믿으며 양육하고 있습니다. 제가 모 월간 문학지에 응모하여 등단한 "훈용이 마음, 엄마의 얼굴"이라는 동시입니다.

 

  " 내가 눈을 떠서/ 이 세상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엄마 얼굴입니다/ 엄마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 호수처럼 생겼을 거야/ 아니야, 난 아직 호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엄마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마 백합처럼 생겼을 거야?/ 아니야, 난 아직 꽃 한 송이도/ 본 적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하셔서/ 이 세상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입니다/ 엄마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분명, 바다처럼 생겼을 거야/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엄마는 늘 파도소리를 들려 주셨으니까/ 엄마 마음은 어떻게 생겼을까?/ 분명, 해처럼 생겼을 거야/ 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엄마는 늘 햇살을 뿌려 주셨으니까/ 난 아직까지/ 엄마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엄마 마음속에서/ 날마다 엄마를 보며 살아요."

 

  제가 출강하는 대학에는 장애를 가진 학생이 다른 대학에 비해 많습니다. 저는 훈용이 때문에 장애를 가진 학생이나 그 가족이 겪고 있는 아픔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훈용이 눈이 되어 주려고 노력한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훈용이에게 황혼에 붉게 물든  석양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고 밤이면 외롭게 불 밝히는 가로등 불빛 한 번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봄이면 지천에 별처럼 뜨는 꽃 한 송이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정말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인 셈입니다. 저는 그래도 쉰다섯 해 동안 세상을 보며 살아 왔으니까 한 쪽 눈이라도 훈용이에게 줘서 우리 훈용이가 앞으로 사는 동안 앞을 보며 살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땅에 사는 부모는 대개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자식보다 더 아파합니다. 더욱이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훈용이 앞에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사는 제 자신이 너무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할 따름입니다.

  훈용이는 거의 날밤을 새웁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훈용이 안압이 너무 높아 통증이 심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훈용이는 "엄마""아빠"소리 한 마디 하지 못합니다. 아마 그래서 밤으로 잠을 자지 못하고 심하게 짜증을 부리거나 자신을 때리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집사람은 훈용이와 함께 거의 밤을 새우기 때문에 아침은 주로 어머니께서 하시고 설거니와 청소는 제가 합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가정이라는 현장에서 사회복지를 실천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항시 마음에 걸린 것은 훈용이 눈이 되어줄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아침을 먹고 싱크대 앞에 섰습니다. 하도 고무장갑을 낀 탓인지 왼손 약지는 소금 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주부습진은 물이 봄이라 물만 만나면 들불처럼 일어섭니다. 한 무리 물까마귀 떼가 은은하게 비행을 하면서 묵방산 굴참나무 숲으로 길 떠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황홀한 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제가 훈용이 뿐만 아니라 어둔 눈 가진 사람에게 눈 되어 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 없는 사람에게 발 되어 준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허기지고 배고픈 사람에게 더운 고봉밥이 되어 준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두 눈 밝혀 제 스스로를 바라봅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밝은 눈 가지고 세상 맑고 청명하게 쳐다보지 못한 제 자신이 눈 어둡고 눈 먼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제 눈이 세상을 비뚤하게 바라보는 사시였습니다. 멀쩡한 다리 가지고 남을 위해 헌신하지 못한 제가 다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참에 이 눈으로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보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걸어주는 다리가 되도록 깨어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부로 이 눈과 이 다리는 이제 제 것이 아닙니다. 친히 받아주시옵소서.

 

 

 

 

 


임도순   14-06-27 10:44
    
동시가 들어있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우선,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자식을 돌본지 18년, 작가나이 쉰다섯, 시골귀향 8년째, 내가 갈 때, 자식을 데려가고 싶다는 내용이 안타깝게 전해집니다. 이제까지 나만을 위해서 판단하고 노동했던 행동보다는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각오가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가족중에서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으면 부모와 가족들이 더 아픕니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진주같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진주알갱이를 가진 사람들과 "껍대기"만 요란한 사람들, 세상이 혼탁할수록 진주는 더욱 영롱하고 값질 것으로 믿습니다.

문장 중에 보이는 영어글씨등이 안나오게 하는 방법이 위 공지란에 있습니다. 참고하시고요. 글씨체는 굵게 안하셔도 될 것같습니다. 이 "참여광장"은 등단을 위한 예비공간이기 때문에 자신의 글솜씨를 발휘할 글을 가려서 몇 편 올려주시고, 등단하시면 "개인방"이나, 한국산문지에 발표하는 등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우선 합평할 수 있는 선생님의 대표 수필을 먼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10편이내에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건필하세요~
최재선   14-06-27 12:13
    
임 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컴맹이라서 그런지 공지대로 해도 잘 안되네요
  조만간 배워 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날 청명한 하루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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