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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만들기    
글쓴이 : 박주철    14-09-28 19:58    조회 : 5,441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님이 흔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조금 부족하면 허물어지는 파뿌리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과 노력,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되는지 알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실 거예요.
부부로서 산다는 것은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오래된 부부는 그래서 그 세월만큼 귀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소중한 약속을 지켜온 사랑과 노력이 아름답죠.
살다 보면 가끔은 지칠 때도 지겨울 때도 있죠.
자식들이 다 성장해서 떠나고 난후 남겨진 부모님들이라고 그런 생각이 안 드시겠어요?
복잡한 도심을 떠나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에서 나머지 삶을 사시고 싶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자 이번엔 경기도다"
경기도도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요?
도로가 시원스럽게 잘 정비된 곳도 있고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이 꼬리를 물고 정체가 반복되는 곳도 있습니다.
"노부부인데 짐이 좀 많아"
소장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아주 많은 거지요.
 노부부만 사는데 가재도구가 뭐 그렇게 많겠어요.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면 기가 막힙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는 없는 커다란 냉장고가 두개에다 김치냉장고도 여러 개 입니다.
방은 여러 간인데 방마다 책장이 즐비하고 책이 빈틈없이 꽂혀 있습니다.
거실에는 무슨 운동기구가 한 줄로 서있고 베란다에는 화분이 가득합니다.
자그만 창고 안에서는 어떻게 쌓아 놓았는지 작은 차하나 분량이 될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싱크대 밑의 문을  열어봅니다.
거기에는 플라스틱 식품용기가 가득합니다.
두부라든가 딸기 같은 식품을 살 때 포장해주는 비닐 그릇입니다.
보통사람은 버릴 것들을 안 버리고 종류별로 모아서 쌓아놓은 것입니다.
이 집에서는 책이 문제입니다.
책은 아무리 빨리 포장하고 싶어도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손 빠른 인부라고 할지라도 상자에 집어 던지거나 쏟아 부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책인 줄 알았는데 꺼내면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국민학교 1학년부터 성장 할 때까지 사용하던 교과서와 공책 그리고 잡지들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가 6질인 것으로 봐서 이집에서 성장한 사람이 6명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이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는 자식들의 물품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 둔 것입니다.
자식들은 자기가 필요한 것만 가지고 떠납니다.
필요가 없다기보다 필요가 적은 물품들만 남지만 부모님은  버리지 못하고 고이 간직합니다.
"할머니 자제분이 6명밖에 안되나요?"
"아녀 본래는 8명이 였어"
두 명은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입니다.
할머니에게는 가슴 아프고 미안한 일이지만 이삿짐인부로서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 아니겠어요?
거실의 운동기구를 그들 부부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는 걸 눈치로 알잖아요.
자식들이 자라면서 어디서 모아놓은 것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요
많은 화분은 딸도 있을 테고 취미생활로 기르던 것을 부모님은 자식처럼 돌본 것이겠지요.
실제로 화주부부가 쓰는 가재도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왜냐!
가재도구는 거짓말을 못하니까요.
냉장고에 김치가 웬만한 식당수준인 것도 당신들께서 드실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회용 식품용기는 아마도 자식들에게 담아 보내기 위해 모아놓은 것이고요.
거실에 깔려있는 고급 마루는 상처투성이입니다.
설마 노인부부가 심심해서 바닥을 칼로 조각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시간은 흘러갑니다.
"큰 아들집에 가서 장롱 한 개랑 딸집에 가서 식기세척기와 전기오븐을 가져와야 되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하십니다.
"할아버지 지금 여기 짐만으로도 차가 부족할 것 같아요 실어보고 부족하면 다른 차를 보내야 되거든요."
"어이 차가 모자라니까 꽉꽉 채워"
밑에 있는 사다리 기사에게 소리칩니다.
아무리 짐을 잘 짜도 안 되는 것은 안 되지요
결국은 작은 화물차 한대를 불러 아들집과 딸집에 보냅니다.
그것을 꽁지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저기 꽁지 기사가 싣고 가는 물품이 쓰시는 겁니까?"
장롱과 주방기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 집이 좁아서 우선 보관해 놓는 것이지"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납니다.
'이 사람들이 부모님을 무슨 창고로 아나?'
말이 목까지 거의 올라온 것을 간신히 삼킵니다.
"자제분은 뭘 하시죠?"
제가 할 말이 없어서 자식들의 직업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연로한 부모님이 이사를 하는데 한사람도 안보이니까 ‘지금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는 뜻이죠.
"큰아들은 경찰관이여"
눈치를 모르시는 할아버지는 숨김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네 그러시군요."
할아버지의 진지한 말씀을 듣고 후회를 하지만 한 번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가 없어요.
"둘째는 세무서에 나가고 셋째는 외국에 나가있지."
남자들은 바빠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며느리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기 입주아파트여서 식당이 없어 2km전에 해장국집이 있으니 거기서 점심식사를 하지"
이미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는 동료로부터 휴대전화가 옵니다.
"거기 함바집 없나"
"철거 했더라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공사 현장에는 식당이 따라다니고 이름이 함바집입니다.
함바란 일본 말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말로는 건설현장식당이라고 하면 적당한가요?
나는 이 함바집에 들어가면 어렸을 때 먹었던 설렁탕 생각이 납니다.
옛날 마을에 잔치라도 있으면 소를 잡잖아요.
고기는 고기대로 쓰고 나머지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는 설설 끓입니다.
어느 정도 끓었다 싶으면 꺼내서 머리고기와 내장을 깍두기 크기로 설렁설렁 썰어서 파 마늘과 함께 생강도 넣고 다시 끓입니다.
커다란 국자를 휘휘저어 질그릇 뚝배기에 가득히 담고  밥 한 주걱 턱 넣은 것이 설렁탕 아니겠어요?
마당에 깔린 멍석 귀퉁이에서 김이 술술 나는 이 설렁탕을 한 그릇 먹어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뜨거운 국을 먹다가 깍두기 한개 입에 넣으면 그 아삭아삭한 시원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허름한 공사장 건물이면 어떻고 맵거나 짜고 싱거우면 어떻습니까?
잔칫집 천막과 비슷하잖아요.
공사가 마무리되고 인부들이 떠나면 같이 떠납니다.
허허벌판 끝자락에 새로 지어진 거주지에 구멍가게 하나 없습니다.
막 입주를 시작해 아직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상가는 지어 놨지만 개업한 곳은 없습니다.
그나마 오리나 떨어져있는 호숫가에서 낚시꾼을 상대로 해장국을 팔던 식당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메뉴판에 설렁탕이 눈에 들어옵니다.
"설렁탕을 주문합시다."
그런데 동료들의 의견은 다르고 나는 혼자 설렁탕을 주문했습니다.
"이집은 부대찌개로 유명해"
유약을 칠해 반질반질한 뚝배기에 하얀 멀국, 정확히 4~6점점 떠도는 고기,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설렁탕을 먹습니다.
"해장국집에 웬 부대찌개여?"
엇썰은 소시지와 햄, 길게썬 두부, 사방으로 가지런히 놓여있는 팽이버섯과 김치, 고추, 다진마늘과 어우러져 뻘건 고추장에 얼큰한 듯 익어가는 라면을 곁눈질로 봅니다.
 
식사하는 사이에 사다리차는 이미 하늘로 뻣치고 기다립니다.
꽁지기사는 짐을 부려 놓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납니다.
먼저 가구와 냉장고 세탁기 등 큼직한 것들이 올라가서 자리를 잡습니다.
나는 책꽂이부터 올리라고 고함을 칩니다.
그전에 다른 물품이 먼저 올라와 자리를 차지한다면 작업하기가 힘들어지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거기 놓지 말아 책꽂이 자리야"
"책꽂이부터 올려!"
다시 아래에다 대고 고함을 칩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처음 실을 때 반대순서로 하나씩 빼야하거든요.
그래도 고함을 지르는 것은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알게 하자는데 있는 거죠.
방마다 책장을 고정했을 때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 닥칩니다.
건장한 남자들과 튼튼한 여자들입니다.
"어 미안합니다. 식사를 하신다기에 우리도 밥 먹으러 동두천까지 갔었어요."
"양주가 아니고요?"
동료는 밥 먹으러 동두천까지 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형제들끼리 모인 김에 맛있는 걸 먹었거든요"
이 사람들은 할아버지의 자식들입니다.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린 것이지요.
그들을 원망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사과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식사도 하셨고 일을 시작합시다."
나는 책 박스를 각 방에다가 밀어 넣습니다.
사다리에 올라오는 순서대로 각 방에 밀어 넣어주면 됩니다.
포장박스에 굵은 팬으로 선명하게 적혀있습니다.
문, A, 상, 우, 1
문간방, A번이라고 쓴 책장,  상단, 오른쪽으로부터 1번째 칸 이라는 뜻이죠.
자기물품은 자기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빨리 정리합니다.
가장 빨리 정리하는 것은 그것을 포장한사람입니다.
내 것이 아니므로 본래 대로 해주면 되니까요
주인은 생각이 많기 때문에 늦습니다.
그러나 자기물품은 자기가 가장 잘 정리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를...
이미 쓸데가 없는 물품이지만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그걸 본다면 머리가 아픕니다.
무슨 골동품도 아니고 버리자니 어린시적 추억도 생각나고 하겠지요.
그러나 자기가 쓰던 물품이면 나이를 먹어서도 버리지 않을 겁니다.
부모님이라면 자식이 쓰던 물품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는 다르겠지만요
오늘은 쾌적한 작업 환경입니다.
부모님이 고향입니다.
고향에 가면 자기 것이 남아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구요?
초등학교1학년 국어책이 없어서요?
지금은 없지만 그때는 있었다는 추억은 있습니다.
세월을 이기고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향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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