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 시속 100Km/s속도로 100호라는 우주선이 발사됐다고 합시다. 오늘은 110Km/s의 속도로 110호라는 우주선이 여행을 떠납니다. 끝없는 우주에서 시간은 흘러 처음 출발한 사람들은 죽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여행의 목적이 상실됩니다. 마치 지구 사람들이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이유와 같습니다.
입장이라는 것이 묘한 측면이 있어서 정리해보면 100호나 110호의 주민들은 자신들만이 우주에 홀로 존재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구라는 행성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봅니다. 지구사람들이 볼 때도 마찬가지로 두 대의 우주선이 각기 다른 속도로 멀어지는 것을 무심히 바라봅니다.
아인슈타인 박사가 일반인에게 상대성이론을 강의할 때 사용한 커리큘럼이랍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 박사도 말하지 않은 논리의 함정 한 가지를 살펴볼까요. 110호의 입장입니다. 어느 날 느리게 접근하는(실제로는 자기가 따라 가지만) 우주선 한대를 발견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다가와 결국은 충돌하게 될 것입니다. 서로 부딪친다면 상식이지만 부딪치지 않는 것도 상식입니다.
거리가 1m에서 1Cm로 1mm까지 접근 한다고 해도 아직 0.5mm가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0.01mm라든가 0.001혹은 0.000이라는 숫자는 얼마든지 있지요? 따라서 충돌까지는 갑자기 무한대의 시간과 거리가 됩니다.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평생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를 예로 들까요? 각자가 다른 환경에 살다가 어느 날 같은 방을 쓰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다행히 무슨 호르몬작용이라고 하기도 하고 눈에 콩깍지가 씌는 현상 때문에 처음에는 그럭저럭 혼합되다가 그 효과 끝나고 부터는 성격차이 라든가 경제적 문제 등의 기초적인 효과가 다시 작용합니다.
전자의 상식으로 충돌하면 간단한 이혼입니다. 후자의 상식으로 무한대의 시간을 얻는다면 지지고 볶으면서 잘 살고 있는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입니다. 이 경우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과학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지 않아서 제외합니다. 인생살이가 무슨 과학이냐? 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정말 과학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2차원의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3차원에 살고 있어요. 두 우주선이 충돌로 치닫고 있을 때 '그렇게 말고 요렇게'보면 충돌하지 않고 넉넉하게 자기 갈 길을 갑니다. 부부가 2차원적으로 충돌을 위하여 맹렬히 돌진하는 것을 보고 있는 3차원의 당신이라면 '그렇게 말고 요렇게' 라고 말하고 싶어 입술이 근질근질하겠죠. 거의 미쳐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 으뜸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어요? 바둑에서 괄시를 받으면서 훈수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서 보면 두수 혹은 두급이 더 보인다고 하는데 어찌 참견을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부간의 문제는 레벨의 차이입니다. 사람은 많은 방법으로 레벨을 극복하면서 살아갑니다. 당장 그렇게 하고 싶지만 애들 때문에 요렇게 라도 살아야지란 말이 상대적 시각이고 차원입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고 있는 최고의 두뇌집단이 어마어마한 설비와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충돌을 향해 돌진하다가 힘이 빠져서 재물을 탕진하고 포기를 선언한 일을 아세요? 절대영도 사건입니다. 이상기체가 온도에 따라 내려가면 어느 지점에서 체적이 없어지고 엔트로피가 잠이 듭니다. 섭씨 273.15도 지점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환경에서 경쟁적으로 도전 하지만 눈에 보이는 한계점에 이르자 한데모여 역량이 집결되고 총체적 충돌을 감행 합니다. 결과는 100조분의 1도라는 0.000만 남겨 놓은 채 항복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개의 넘지 못할 신의 영역에 한 가지 추가된 것입니다.
우주선의 충돌은 그렇게 말고 요렇게 해결한 우리가 이제 절대영도를 그렇게 말고 요렇게 봐야할 때인 것이죠. 이제 글쓰기를 목표로 새로운 충돌의 준비를 하는 나에게 필요한 해답입니다. 목표는 거기에 그렇게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요렇게 봐야할 나에게 생각의 문은 닫혀있고 비켜서야 할 자리는 낭떠러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