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 집은 전쟁터가 되어있었다.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1년 전 어느 봄날부터였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딸아이가 심각한 병에 걸린 그때부터.
무시무시한 그놈은, 어느 날 불쑥 예고도 없이 우리 집 대문을 노크했고, 허락도 없이 제 발로 성큼성큼 집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이곳이 오래전부터 살던 제집인양, 아예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날부터 큰딸은 변해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와는 처음부터 그 태생이 달랐던 종족인양.
그 첫 번째 증거는 언어였다. 점점 자신이 알던 말을 잊어가더니, 어느 순간에는 단 세 단어가 딸아이가 하는 말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어쩌라고, 그래서, 왜?”
하루에도 수백, 아니 수천마디 종달새의 지저귐처럼 쏟아내던 말소리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춰버리던 그날, 아이는 우리가족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무섭고 끝을 알 수 없는, 3차 세계대전에 버금갈 만한 전쟁선포를...........
그때부터 아이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엿보였다. 자신이 입은 작은 상처에도 반응은 민감하고 날카로 왔다. 그곳에는 한 치의 양보나 타협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빛도 없고, 깊이조차 가늠 할 수 없는 동굴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어느 쪽도 전쟁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전쟁에 패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전쟁을 끝내는 가장 빠른 길은 전쟁에 지는 것이다. - (조지 오웰)’
화려했던 가을도 시간의 흐름을 못 이긴 채, 불어오는 찬바람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거리를 뒹굴던 낙엽이 쌓여가는 눈에 자취를 감추던 겨울의 어느 날, 드디어 나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는 없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죽고 싶다”
딸아이의 가방에서 나온 작은 쪽지 하나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전쟁도 드디어 막을 내렸다.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긴 채, 예상치 못한 한 순간에 끝나버렸다. 전쟁에 승자는 없었다. 모두가 패자였을 뿐, 포성이 오갔던 전쟁터엔 적막감이 흘렀다. 그것은 무서우리만큼 고요했다. 누구도 그것을 깰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단지 시계 초침의 작은 소리만이 그곳을 채워가고 있을 뿐 이었다.
무심히 쇼파에 앉아 TV를 보던 중에 프리허그를 하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며 서로 안고 있는 모습의 두 사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36.5도의 서로의 체온이 교환되는 순간 말보다 더 따뜻한 교감이 생긴 것이다. 저녁에 들어오는 딸을 아무 말 없이 꼭 안아 주었다.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차갑고 매서울 줄만 알았던 겨울의 끝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얗고, 탐스러운 눈은 온통 얼어붙은 대지를 포근하게 덮어주었다. 겨울 아침햇살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밤새 얼어붙은 땅을 덮었던 눈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고, 방울방울 녹은 물이 스며든 든 대지에는 봄을 기다리던 새 생명의 태동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 백화점에 딸과 함께 쇼핑을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는데 뒤에서 가만히 누군가의 손이 겨드랑이로 들어오더니 팔짱을 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수줍은 듯 미소를 띤 채, 내가 예전에 보았던 작고 귀여운, 새까만 눈에 종달새를 닮은 아이가 서 있었다. 조만간 종달새의 지저귐이 다시 내 귓가를 울리리라. 폐허 속 마을에도 봄이 찾아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