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향기
“향수 뿌렸어?”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을 뿐이다.
“아, 네.”
후배가 수줍어하며 웃는다. 내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다른 동료가 경상도 억양이 섞인 말투로 엉뚱한 대꾸를 한다.
“불가리 옴무 아냐?”
“맞아요. 바로 아시네요?”
“그게 좀 강하긴 해도 여자들이 좋아해.”
일제히 아침 커퍼런스 준비 중이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평소 말이 없던 무뚝뚝한 후배마저 맞장구를 친다.
“여자들이 은근히 강한 향수를 좋아하더라고요.”
이미 상황은 내가 후배의 향수를 맘에 들어 하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향이 너무 강하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려던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수줍음 많던 후배가 엷은 미소를 띄운 채, 새색시 마냥 조신하게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교수님이 도착하고 컨퍼런스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향수 이야기는 지나가는 듯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체질적으로 화학적 향기에 민감했던 나는, 아침 컨퍼런스를 진행할 때마다 후배의 강한 향수 냄새를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단순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향이 더욱 진해지는 것 같았다. 뿌리는 양을 늘리는 모양이었다. 급기야 후배의 노트와 볼펜에서도 향이 묻어났다. 한 번은 후배가 자신의 락커를 열고 물건을 꺼낸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확하고 몰아치는 향기의 물결에 나도 모르게 새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향수 락커에 넣고 다니니?”
“네. 갖고 다니기 귀찮아서요.”
후배가 점잖게 웃으며 대답했다. 후배의 얼굴이 하도 해맑아서, 또 다시 입을 다물고 대신 미소를 지어 준다.
“당신의 향기가 참 좋군요.”
마법같은 주문을 하나 알게 된다. 작은 오해와 나의 소심함이 불러일으킨 따뜻한 미소.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너는 나에게, 너는 나에게.
당신의 향기가 참 좋군요.
머리가 아프면 어떠하랴? 후배와 나를 미소짓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