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인천공항
“언니, 저 여자 좀 봐.”
“누구? 누구 말하는 거야?”
“저 노랑 단발......아니, 뚱뚱한 여자……참, 그렇게 대놓고 보지는 말고.”
간밤에 잠을 설친 탓인지 뺨이며 입술이 바짝 말라있는 채로, 동생은 잔뜩 골이 나 있다.
“왜? 나 없는 동안 뭔 일 있었어?”
“참 어이가 없어서. 갑자기 나한테 와서는 다른 데 가서 앉으라는 거야. 이렇게 자리가 많은데……진짜 이상한 여자 아니야?”
“그래? 이상하기는 하네. 여기 다 빈 자리 아니야? 사람들 열 명도 안 되잖아.”
한국어로 소근거리는 우리 자매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문제의 백인 여인은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얼굴을 붉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신경 쓰지마. 그냥 이상한 사람인 거 같은데. 그럴 시간에 이거나 훑어 봐.”
“이게 뭐야?”
“스마트폰에 다 저장했지. 여기랑 여기가 파리에서 제일 유명한 맛집이래.”
“와, 이건 새우야? 진짜 맛있겠다.”
여행 생각에 들뜬 우리는 스마트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상한 냉기가 느껴져 내가 먼저 고개를 든다. 우리 앞에 서 있던 젊은 남자와 중년 여성이 입을 꾹 다물고 급하게 내 시선을 피한다. 백인 특유의 버석한 피부와 생기 없는 은회색 머리카락. 어딘지 지친 듯한 그들의 굳은 표정에서, 내가 익숙히 알고 있는 하나의 감정을 읽어낸다. 무얼까? 나는 작은 혼란에 빠진다.
“어머, 언니. 큰 일 났어.”
“왜?”
“여기 LA행 수속 카운터잖아.”
“아, 잘못 왔네. 괜찮아. 바로 옆이야. 아직 시간 많네.”
느긋한 내 반응에 동생의 얼굴이 샐쭉해졌지만 금새 웃음을 되찾는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만든다. 시간이 임박한 탓인지 파리행 에어 프랑스 탑승 대기 공간은 만원이다. 불어가 만들어내는 프랑스인들 특유의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동생의 얼굴에 홍조가 뜬다. 얼마 후 이코노미석 예약자들은 탑승을 준비하라는 방송이 뜬다. 우리는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줄을 서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었다. 하나같이 헐렁한 면 티 위에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많은 것이, 아마도 동남아 겨울 여행을 마치고 인천 공항을 경유해 집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오, 쏘리.”
동생이 낑낑거리며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네 받는 도중에, 내 팔꿈치가 앞 사람 가방에 닿은 모양이다. 앞에 서 있던 프랑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영어로 사과를 한다. 십 년 전 파리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프랑스인의 ‘예의바름’을 기억해낸 나는 당황하여 서툰 불어로 맞사과를 한다.
“익스큐제 무와.”
프랑스 여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커다란 겨자색 가죽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마치 자기의 가방은 마구 다루어도 상관없으니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듯, 툭툭 발로 차면서 줄 앞 쪽으로 걸어간다. 실수로 여자의 가방을 건드린 것은 내 쪽이었기 때문에 민망해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참 좋은 거 같아. 아까 그 여자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아까의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던 여동생은 이내 프랑스 여인에게 상냥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게……”
하지만 무언가 석연치가 않다. 찜찜한 기분으로 기내에 들어선다. 좌석을 찾고 짐을 정리한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숨을 돌린다. 창가에 앉은 여동생이 싱그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다. 하나로 묶은 탐스런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아까의 불쾌한 일은 잊어버린 모양이다. 신경 쓰지 말라고 한 사람은 나였지만, 정작 나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다른 쪽으로 가세요. 여기는 내 자리예요. 내가 아까 맡아 놨어요.”
금발의 미국 여인은 여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LA행 비행기 탑승 수속 대기실, 수십 개의 좌석들이 텅 비어있는 데도 말이다. 마음이 복잡하다. 그것은 분명 낯선 얼굴이었다. 삼 년 전 가을, 그러니까 2009년 달러 위기 당시에 LA를 경유하여 샌디에고와 라스베가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가적 경제 위기 앞에서도 그들은 여유로웠고 친절했으며, 의젓했다. 라스베가스의 마지막 날, 공항 초콜릿 매장에서 선물을 고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밝은 갈색 눈동자가 투명하게 비쳐 보이던 초로의 남성이었다.
“한국인이라고요? 나는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그 후로도 한국에서 몇 번 근무했습니다.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예요. 저는 한국인의 정신을 존경합니다.”
그로부터 삼 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들의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신문이나 뉴스, 인터넷을 통해 듣게 되는 풍문 말고, 피부로 맞닿아 느끼는 삶의 진실 같은 거 말이다. 무작정 선망하던 옆 집 사는 친구의 낯선 얼굴을 마주하면 덜컥 겁이 난다. 비록 그것이 친구의 또 다른 솔직함일지라도. 내가 과민한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애써 고개를 젓는 나의 머리 속을 휘젓는다. 2012년 1월, 인천공항을 떠나는 에어프랑스가 이륙을 시작한다. 청량한 목소리를 타고 명랑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한국을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