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언니, 이거 봐. 음식물 쓰레기를 지렁이 먹이로 줘서 처리하는 거래. 정말 좋은 아이디어지?”
취업 준비를 한답시고 노트북을 하루 종일 껴안고 있던 여동생이 엉뚱한 소리를 한다. 얼떨결에 동생이 가리키는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주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이게 뭐야? 지렁이투성이잖아.”
“지렁이가 음식 쓰레기 먹고 똥을 싸면 그게 흙이 된대. 너무 신기하지?”
“징그러워 어디 쓰겠니? 지렁이 기어가는 꼴만 상상해도……에그, 끔찍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지렁이 두 마리의 살구색 피부가 유난히 미끈해 보여 더욱 소름이 끼친다. 친환경 제품으로 소개된 그것은 매우 단순한 설계로 이루어진 듯 했다. 투박한 나무 상자에 지렁이를 풀어 놓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 준다. 지렁이는 쓰레기를 먹는다. 쓰레기는 흙이 된다. 쓰레기 정화 끝.
“지렁이가 왜 새어 나와? 그리고 지렁이가 뭐가 징그러워?”
나의 과민 반응에 여동생의 얼굴이 심드렁해진다.
“그러면 넌 징그럽지 않니?”
“지렁이는 귀엽고 가엾은 생물이야.”
동생의 심각한 대답에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생각해 봐. 지렁이는 열심히 땅 파서 흙만 먹는 애들이야. 다리도 없어서 꾸물거리면서 온 몸으로 땅을 훑는다고. 나쁜 짓 하는 것도 없어. 얘들은 더러운 거 먹어서 똥으로 좋은 걸 내놓거든. 그런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 개울가의 개구리며 물고기, 심지어 개미떼까지 지렁이를 뜯어 먹어. 꼬물거리는 얘네들, 정말 너무 안 됐어.”
생각해 보니 그렇다. 지렁이가 나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이토록 그들을 혐오스럽게 여기는 걸까? 어찌 보면 그들의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귀여운 것도 같다. 나는 가만히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며 그들을 사랑해 보려 노력해 본다.
“얘, 안 되겠다. 징그러워, 아무리 봐도 징그러워. 넌 정말 안 징그러워?”
“응. 나는 지렁이가 안 됐어.”
지렁이를 이용한 신개념 쓰레기 정화기에 푹 빠진 여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심지어 같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비슷한 유전자를 공유한 우리 자매 사이에도 다른 시선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준다. 다른 이의 남다른 시선을 공유하면 가슴이 뛴다. 마치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 젖어 들고 싶다. 지루하지 않은 수억 개의 눈동자를 갖고 수억 개의 시선을, 수억 개의 삶을 느껴보고 싶다.
“그래도 안 돼. 너 나 몰래 그거 신청하지 마. 집에서 지렁이 꼴은 못 보니까.”
하지만 두 개의 눈을 가진 나는, 지렁이를 사랑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지렁이는 일찌감치 잊어버린 채, 연예계 가십을 읽으며 깔깔거리는 동생에게 다짐을 받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