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잘 살게 될 거여
최진
어느 따뜻한 봄 날, 여인은 꽃 가마 타고 시집을 갔다.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두른 결혼이었다. 아직은 열일곱, 어린 나이였다.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착하고 순박하고 성실한 남자였다. 어린 부부는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했다. 남자는 장사를 했다. 수완이 좋아 먹고 살만했다. 그럭저럭 행복한 삶이었다. 얼마 후 아들도 태어났다.
그러나 일본 패망 이후, 광복의 기쁨도 잠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 미처 피난을 못 간 부부는 아이와 함께 서울에 남게 되었다. 인민군이 소집 명령을 내렸다. 새로운 세상이 왔다고 했다.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인민군을 기다려 준 것이니, 인민군은 그들을 환영한다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세상이 왔다며, 여인의 남편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들은 여인의 남편을 ‘영웅’이라 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남편은 열심히 뛰어다녔다. 인민군은 남편에게 작업반장이라는 직함을 주었다. 남자는 수완이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아내와 아들을 먹고 살만하게 만들었다. 얼마 후, 북한군이 퇴각하였다. 여자의 남편과 함께였다. 그러나 남자는 인민군으로부터 도망쳤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갈 수 없었다. 남한군이 서울로 들어왔다. 그들도 소집명령을 내렸다. 빨갱이를 색출한다 했다. 남자는 총살당했다.
여인도 시장에 나갔다. 이것저것 내다팔아 보았다. 그러나 여자는 수완이 좋지 않았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다. 아들은 남편을 많이 닮았다. 살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은 나이 먹어 갔다. 좀처럼 아들의 인연이 나타나지 않는 게 속이 상했다. 못 가르치고 잘 못 먹인 탓인 듯 하여 여인의 마음이 미어졌다. 마흔이 다 되어 예쁘장한 동네 식모와 연을 맺게 되어 한시름 돌린다 했더니, 며느리는 아들 하나만 남겨두고 동네 얼치기와 도망을 갔다. 반푼이였지만 얼굴이 반반하니 인물 값을 한다 여겼다. 시간이 흘렀다. 가난은 지독한 끈끈이처럼 여인의 인생에 스며들었다. 어느 겨울, 여인은 쓰러졌다. 중풍이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장애인 수급과 임대 주택이 나왔다. 가족은 처음으로 소박한 행복을 느꼈다. 어느덧 손자가 스무 살이 되어 군대를 갔다. 간간이 손자와 주고 받는 편지가 그들의 작은 기쁨이었다. 일 년이 지나서였다. 손자로부터 연락이 끊겼다. 언젠가는 소식이 오려니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지 않니? 그런데 무소식이 너무 길었다. 아들이 군부대를 찾아갔다. 아들은 제대를 했다고 했다. 무작정 손자를 기다리던 그들은 스스로의 무지를 탓했다.
이상하다. 아들의 몸이 부쩍 말라가는 듯 했다. 먹는 것도 시원찮고, 토악질을 해 댄다. 체한 거려니 여기려 했지만, 어딘지 석연찮다. 여인은 어눌한 말로, 아들에게 병원에 가보라 말한다. 아들은 병원에 갔다. 위암이라 했다. 아들은 8개월 후 죽었다.
여인은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똥오줌도 가려낼 수 없었다. 아들이 죽고 나서 3개월 후 여인도 죽었다. 장례를 치를 사람도 없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악취 가득한 여인의 방을 정리하고 시신을 수습했다. 뒤늦게 여인의 소식을 듣게 된 이모 할머니가 혀를 찬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무의 죽음 앞에서 이유 모를 신경질을 낸다.
“그렇게 입버릇처럼, 우연히 잘 살게 될 거여, 잘 살게 될 거여 하더니만……”
그렇게 불행한 여인의 삶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