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세곡동 ‘다원’이란 다도 하는 선배의 초대를 받았다.
맛있는 점심에, 귀한 차를 마시고, 총무가 알뜰히 준비한 수박, 포도, 복숭아까지 먹었다. 그러나 여러 선배, 문우들께 걱정을 끼치게 된 일이 생겼다.
문우의 차를 타고 가는 중 고속도로 어귀에서 뒤쪽 차가 크게 받았다.
순간 ‘앗 차’ 하고 걱정과 동시에 머리가 찡하고 아파서 ‘큰일 났구나’ 싶었다. 3년에 걸쳐 한해 한 번씩 사고를 당하여 남달리 통증이 많이 온 것이다.
머리와 눈 뿌리까지 아파왔고 3일 동안 몽롱한 정신에 잠만 자게 되었다.
열심히 전기치료, 찜질, 초음파, 레저, 등 물리치료를 하려고 매일 다녔다. 교통사고란 시일이 지나 나타날 수도 있다더니 한 달이 지나 오른쪽 어깨에 심한 통증이 왔다. 오른쪽으로 눕지도 못하고 앓는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통증이 잠을 몰아내고 있었다.
육신의 아픔이 마음의 서글픔과 서러움을 덮쳐오며 우울증이란 늪으로 점점 빠져 들었다. 아들집에 머물러도, 누가 와서 돌봐 주어도 모든 것이 싫어서 내 집에 혼자 있으며 마음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육신은 점점나아지고 있는데 왜 마음은 늪으로 달려가는지 마음이 엉켜 있었다.
약을 먹으려고 물을 찾을 때도 옆엔 남편의 그림자도 없으니 누가 물을 떠다 줄 것인가. 막연한 그리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조여 오며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생각지도 않은 많은 상념이 영화 필림이 되어 머릿속을 돌고 있다. 추억이 날개를 펴고 마음을 휘저으니 마음이 쓰리다.
어느덧 여름을 지나 가을의 단풍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니 내 자신도 한 계절을 넘듯 강한 의지의 불씨를 일구려고 다짐 해 본다. 무겁고 침울한 나의 내면을 이겨 보려고 마음을 다독거리며 책장을 넘기고 ‘사흘만 볼 수 있다면’(헬런 켈러지음)을 읽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작가의 아름다운 표현에 푹 빠졌다.
‘포도 밭 향기를 맡고’ ‘황금빛 띤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정원에서 햇살을 받으면’ 나도 주인공의 그림자가 되어 함께 그의 상상 속으로 스르르 빠져 들어 나를 잊는 순간이 되었다. 아픔과 우울증이라는 것에서 순간이나마 빠져 나온 것이다.
‘아픈 마음에 책이란 좋은 친구가 있구나’ 생각하며 여러 가지 책이란 친구를 따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아름다운 말과 함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다스려 주는 보배가 있어 고마웠다.
3개월 가까운 대학병원의 물리치료와 한의원의 침과 추나요법 치료로 육신이 나아지니 맑은 하늘을 바라보듯 마음도 밝아졌다. 끝없이 추락하는 마음과 엉켜있던 서러운 생각의 씨앗도 민들레 홀씨 되어 훨훨 날려 보내며 변덕스러운 내 마음에 회심의 미소를 보내 본다. 의사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집니다.” 라고 한 말씀을 되새기며 시간이 해결할 것을 마음의 끈에 매달려 헤매고 다닌 것이 창피와 함께 인간의 좁은 마음의 세계를 되새겨 보게 한다.
지금은 여러 가지 애를 쓴 나의 자세에, 나의 의지에, 스스로 상을 주고 싶다.
통증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나에게 풍요로운 즐거움과 여유로움으로 삶을 꾸려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