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행로
서청자
허물없이 대화하며, 즐겁게 웃고, 작은 물건이라도 서로 챙겨 주는 마음의 쉼터인 모임이 있다. 30년이 훨씬 지난 모임이다.
모임 중 한 친구는 남편이 치매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다.
그러나 현실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는 친구이다.
내가 남편의 병 수발 하는 동안, 쓰라린 가슴의 고통과 아픈 순간을 절실히 느꼈기에, 그냥 바라보아도 마음 앓이를 하는 친구 생활이 마음을 찡하게 했다.
그 친구가 모임에 나왔다. 모임에 들어서면서 “아침부터 울적하고 마음이 산란해서 참 힘드네” 라고 하소연 하였다. 왁작 지껄 생활의 얘기가 여기저기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한 달 만에 만나 얘기꽃이 한창 무르익고 분위가 좋았다. 남편 돌보느라 힘든 친구가 두 달 만에 나오니 하고픈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내 사정 들어 주는 값으로 “오늘 점심은 칠순 생일도 지나고 해서 내가 낼께” 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흥분된 분위기에 젖어 “점심으로 내려고” 하며 경상도 말투에 높은 톤으로 말했다. 순간 친구는 무척이나 화를 내며 내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나는 베풀 수 있는 여유로움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말한 것이 점심만 내느냐고 오해를 했던 것이다. “점심 내려고”말 할 것을 “점심으로 내려고” 같은 의미이나 점심만 내느냐고 들린 것이다. 같은 마음의 말이라도 단어에 따라 말이란 참 무서운 것을 나중에 알았다.
친구의 의중을 몰라 한참 그의 말을 듣다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에 결국 서로의 언성이 높아졌다. 마음의 혼란과 동시에 분노와 얽혀오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 못해 먼저 나왔다.
많은 세월 마음 다스림과, 비움의 경지와, 베풂과 아량을 공부하며 살아 온 시간이 물거품이 되어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내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지금까지 마음 닦고 반야(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의 세계를 흠모하며 보살의 행을 추구 했던 수양이, 내 자신의 부끄러움이 되었다. 마음 다스림이 아닌 마음에 빗장을 걸고 말았다. 마음에서 지우니 편안해졌다.
완전히 머리에서 지우고 인연의 고리를 잘라내니 평온한 마음이 된 것이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명상(참선이라기엔 과분하여)을 하다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친구가 “미안하다 내가 너무 마음안정이 안되어 실수 했다고 ....” 마음 풀라고 전화가 왔다. “내가 나간 다음 속상해서 모임에서 울었노라고” 말도 하였다. 발로참회( 스스로 드러내는 참회) 를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닌데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니 명상하고 마음공부 했던 내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병 주고 약주나” 생각하며 빗장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또 전화로 미안하다며 빗장 밑으로 약봉지를 넣어 주는 기분 이였다. 다음날 남편 때문에 보이스병원 가까이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간다고 전화 왔다. 마음의 빗장을 열게 더 큰 약을 준 것이다.
중학교1학년 그 시절엔 집에 피아노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학교 강당 피아노로 연습할 수 있게 음악 선생님께서 배려하셔서 연습하고 랫슨도 받았다. 많이 보살펴 주며 예뻐 해 주셨다. 같이 다닌 친구가 샘을 내 함께 피아노를 연습하게 되었는데 시간 때문에 다투게 된 것이다. 그 후 고등학교 까지 교류가 없다 사회 나와 동창 모임에서 만났다. 서로 반가워 손잡고 정말 철없던 어린 시절 일이였다고 웃었다. 사회에서 큰 단체를 이끌며 활동하고 피아노 치는 것으로 봉사 활동도 한단다. 나는 건강 악화로 피아노를 그만 둔 것이 지금도 후회 되지만 모두 자기 갈 길이 있는 것 같다. 지나고 보면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는 것을 당시에는 큰 일 인양 마음의 길을 엇나가게 하는 것이 복잡한 마음 놀음인 것 같다.
전화를 준 친구, 지나고 보면 하찮은 추억이 되겠지.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를 맞이하자”라고 마음에 말을 하며 조각난 마음을 모아 사랑의 퍼즐을 맞추려 한다. 나눔이란 물질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나누어 주는 것이리라.
잠시 쉬고 싶을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기댈 수 있는, 마음의 지혜를 볼 수 있는 길을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