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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선물    
글쓴이 : 서청자    16-01-25 21:43    조회 : 6,885

큰 선물

서청자

을미년이 저물어 가는 때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늘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캐롤과 연하장들로 한 해를 보내는 축제 같은 시기에 큰 선물로 내게 온 손자.

12월의 보석은 행운의 보석이라고 하는 터키석이다. ‘신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보석이라고 불리는 터키석. 성공과 승리를 약속하는 의미의 보석인데, 나는 그 터키석보다 더 소중한 손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손자를 처음 보는 순간 어찌나 벅차던지, 오히려 덤덤하고 어리둥절하던 그 심정을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손자가 내게 큰 선물인 데는 남다른 까닭이 있다.

20대 후반에 결혼한 나는 연달아 딸을 셋을 낳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기 낳기를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이 만취되어 남편이 들어왔는데, 평소 술을 많이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몹시 취한 그는,

내가 이렇게 애쓰고 사업해서 이담에 누굴 주지?”

아들이 하나 있으면....”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는 것이었다. 그 말은 잠이 가득 들었던 내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을 주었다. 평소 아들 필요 없다고, 예쁜 우리 딸이 좋다고 늘 말하더니 그 마음은 진정이 아니었던가.

다음날부터 아들 갖기로 마음먹고 알카리성 식품과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여 지방까지 가서 지어왔다. 일 년 반을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식초에 계란 노른자와 견과류를 넣어 먹었다. 날마다 기초 체온를 재서 배란일을 따지고 독일에서 가져왔다는 기구까지 사용하였다. 그렇게 정성들여 몸 관리를 하였으나 두 번이나 자연유산을 하였다.

결국 지쳐서 노력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음을 접었다. 포기하고 나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때가 1970년대 후반 이였다.

친한 모임에서 강원도 적멸보궁을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그 시절에는 적멸보궁 가는 길이 잘 정돈되지 않아 가팔라서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몸이 무거워 오르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올라가 정성껏 108배까지 하고 하산하였다.

신이 점지해 주시는 자식은 어찌하여도 태어난다더니 힘든 산까지 오르고 난 후에야 내가 임신한 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힘든 산행을 했지만 유산을 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해지자 바로 다음 달에 임신한 것이었는데 몰랐던 것이다.

첫딸과 띠 동갑이 될 만큼 터울이 지는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한테서 손자를 받아 안아보니 감동과 기쁨이 넘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돌았다.

행복한 삶은 가정이란 작은 둥지 안에 있나보다. 그 안에 또 작은 둥지가 있어 그 안에 새로운 생명체가 기쁨과 희망이란 빛을 발하며 있다. 무의미하게 세월만 보내던 내게 와 준 작은 둥지 속의 손자,

내 삶에 기쁨과 감동을 준 손자의 탄생에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가슴을 툭 울리는 큰 설렘을 준 내 며느리에게 고마운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한다, 아들아, 며늘아, 그리고 내 손녀, 손자야.

 

 


나윤옥   16-01-25 21:59
    
단아하고 늘 고우신 서청자 선생님, 글이 꼭 선생님을 닮았습니다. 절실한 소망과 그 소망을 향한 忍苦의 시간들도 조용히 감당하셨을 선생님, 전 이 글이 좋습니다. 남에겐 가벼운 일도 본인에게는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일. 그 무게는 당사자를 이해하는 일로 가늠해야하지요.
귀한 아드님이 어머니께 드린 귀한 손주. 그 큰 선물, 축하드립니다.
서청자   16-01-26 12:50
    
나선생님 감사합니다. 항상 배려하고 칭찬 해 주시고 그 온화함때문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축하의 말씀 격려받아 힘을 내겠습니다.
노정애   16-01-29 16:48
    
오랫만에 올리신 서청자님의 글을 읽습니다.
큰 기쁨으로 다가온 선물 손자.
얼마나 좋을셨을지요.
글 속에서 님의 기쁨이 넘쳐납니다.
작가의 경험과 잘 어우러진 이 글이 좋습니다.
가정이라는 둥지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시는
작가의 마음이 참 고왔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안명자   16-01-30 17:05
    
얼마나 기쁘셨을까. 얼마나 행복 하실까.
그토록 기다리던 손주를 품에 안으신 선생님의 그 온화하신 얼굴에 살짝 맺힌 눈 이슬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간의 힘들었던 인고의 세월은 다 잊으셨을 듯. 고운 모습에 고운 미소가 한없이 떠오릅니다.
금자동아 은자동아 수명장수 부귀동아.  금을 주고 너를 살소냐 은을 주고 너를 살소냐.
오색비단 채색동아 만첩산중 보옥동아 하늘같이 높으거라 하해같이 깊으거라.
어화둥둥 내 사랑아 유명천하 하여보자. 서선생님께서 손주 어우르시며 이노래를 읊어 주실듯.
선생님 건강하시고 글을 쓰시는 기쁨속에서 손주와 함께 행복하소서.
서청자   16-02-03 15:08
    
반장님, 안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빨리 등단하도록 격려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도와 주시려고 눈여겨 봐 줄 때 금요반에 잘 왔구나 싶어요. 앞으로도 지도 바랍니다.
안선생님 글을 외워 손주한테 속삭여야 하겠어요
구정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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