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선물
서청자
을미년이 저물어 가는 때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늘 그렇듯이 크리스마스 캐롤과 연하장들로 한 해를 보내는 축제 같은 시기에 큰 선물로 내게 온 손자.
12월의 보석은 ‘행운의 보석’이라고 하는 터키석이다. ‘신으로부터 받은 신성한 보석’이라고 불리는 터키석. 성공과 승리를 약속하는 의미의 보석인데, 나는 그 터키석보다 더 소중한 손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다.
손자를 처음 보는 순간 어찌나 벅차던지, 오히려 덤덤하고 어리둥절하던 그 심정을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손자가 내게 큰 선물인 데는 남다른 까닭이 있다.
20대 후반에 결혼한 나는 연달아 딸을 셋을 낳았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기 낳기를 포기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이 만취되어 남편이 들어왔는데, 평소 술을 많이 마셔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몹시 취한 그는,
“내가 이렇게 애쓰고 사업해서 이담에 누굴 주지?”
“아들이 하나 있으면....”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내뱉는 것이었다. 그 말은 잠이 가득 들었던 내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을 주었다. 평소 아들 필요 없다고, 예쁜 우리 딸이 좋다고 늘 말하더니 그 마음은 진정이 아니었던가.
다음날부터 아들 갖기로 마음먹고 알카리성 식품과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여 지방까지 가서 지어왔다. 일 년 반을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고 식초에 계란 노른자와 견과류를 넣어 먹었다. 날마다 기초 체온를 재서 배란일을 따지고 독일에서 가져왔다는 기구까지 사용하였다. 그렇게 정성들여 몸 관리를 하였으나 두 번이나 자연유산을 하였다.
결국 지쳐서 노력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음을 접었다. 포기하고 나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그때가 1970년대 후반 이였다.
친한 모임에서 강원도 적멸보궁을 간다기에 나도 따라나섰다.
그 시절에는 적멸보궁 가는 길이 잘 정돈되지 않아 가팔라서 산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왠지 몸이 무거워 오르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끝까지 올라가 정성껏 108배까지 하고 하산하였다.
신이 점지해 주시는 자식은 어찌하여도 태어난다더니 힘든 산까지 오르고 난 후에야 내가 임신한 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힘든 산행을 했지만 유산을 하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음을 비우고 편안해지자 바로 다음 달에 임신한 것이었는데 몰랐던 것이다.
첫딸과 띠 동갑이 될 만큼 터울이 지는 늦둥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한테서 손자를 받아 안아보니 감동과 기쁨이 넘쳐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돌았다.
행복한 삶은 가정이란 작은 둥지 안에 있나보다. 그 안에 또 작은 둥지가 있어 그 안에 새로운 생명체가 기쁨과 희망이란 빛을 발하며 있다. 무의미하게 세월만 보내던 내게 와 준 작은 둥지 속의 손자,
내 삶에 기쁨과 감동을 준 손자의 탄생에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가슴을 툭 울리는 큰 설렘을 준 내 며느리에게 고마운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랑한다, 아들아, 며늘아, 그리고 내 손녀, 손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