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디딤돌
서청자
내가 외롭고 힘들 때 나를 지켜주신 두 할머니가 계시다. 내 삶의 디딤돌 같은 분들이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어린 나에게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친할머니와 결혼해서 만난 남편의 유모할머니입니다. 나는 가끔 두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움에 젖어본다. 그럴 때면 그분들이 주신 사랑이 가슴 속에 되살아나 눈물이 고인다. 이제는 곁에 없지만 늘 그리운 분들이다.
어릴 적, 매일 새벽 5시쯤이면 할머니방의 옆 작은방(기도 방)에서는 할머니의 독경소리가 들렸다. 천수경, 반야심경, 신묘장군대다라니 등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들리는 독경소리에 깨어 그 소리를 듣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부지런하고 엄격한 할머니 덕분에 식구들도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다. 동네 반장아저씨도 우리 집에 올 때는 옷 단추를 다시 여밀 정도로 엄격하여 호랑이 할머니로 통했다.
함께 살던 작은아버지 부부는 무엇 때문인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 작은아버지는 결국 일본으로 가 버렸다. 할머니는 혼자 남은 며느리를 엄하게 구속도 했지만, 기다림을 가르치며 따뜻한 말로 다독였다. 엄함과 따스함이라는 양면을 가진 할머니가 어린 마음에도 의아하고 신기했다. 식구들을 다독여 이끄는 일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할머니는 그 식구들을 잘 이끄셨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스스럼없이 처리하시는 할머니의 여장부 같은 능력이 온 식구들과 내게 기댈 수 있는 큰 산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없었다면 오늘 나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 밥상에서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 때 할머니의 곧은 몸자세에 나 역시 허리 펴고 반듯이 앉아야 했다. 길을 걸어도 바른 자세로 앞만 보고, 말을 많이 못하게 하여 말수가 없이 얌전한 처녀로 자랐다. 그러나 몸이 약한 나를 항상 염려하고 사랑으로 길렀고 품행에는 매우 엄중하셨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나쁜 말을 들을까봐 더 엄했던 것이리라.
엄한 할머니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잘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약하고 내성적이지만 할머니에게 배운 꼿꼿함은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또 한 분 할머니는 시집가서 만난 분이다.
성년이 될 무렵 부산을 떠나 서울로 오면서 환경이 달라졌다. 사회활동도 하고 아버지의 사업 심부름을 다니면서 얌전하기만 했던 성격도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니 낯선 환경과 시어머님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점심은 집에 남은 식구가 둘뿐이라 시어머님과 겸상을 했다. 어른과 겸상을 하는 게 어려웠지만, 어릴 때 할머니와 겸상하던 때를 생각하면서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적응해나갔다.
어느 날 시어머님이 약속이 있어 출타를 하셔서 혼자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때 “아씨, 숭늉입니다.”하며 남편을 길러 준 유모 할머니가 왔다. 새색시에게 공손한 그분의 행동에 너무 놀라 밥이 목에 걸리며 당황하여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의 친정할머니 같은 분이 나를 대접해주니 송구스럽고 민망했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인가, 어릴 때부터 시댁에 들어와서 노인이 되도록 시댁과 인연을 맺고 있다 보니 상전 모시던 옛날 관습이 몸에 젖어 새색시인 내게도 잘 하셨던 것이다.
유모 할머니는 아담한 키와 고운 얼굴, 정갈한 옷매무새를 한 얌전한 분이었다. 자신이 돌보고 키운 사람이 결혼해서 색시가 오니 무척 좋으셨나 보았다.
몇 개월 후 임신을 한 내가 춥고, 졸리고, 잘 먹지도 못하자 마치 친정어머니처럼 돌보아주셨다. 유모 할머니는 내가 잘 먹게 하려고 멸치 넣은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하면 바로 해 주곤 하셨다. 나를 보살펴 주는 따스한 눈길과 애쓰는 마음에 감동되어 큰 의지가 되었다. 애기를 잉태하고 낳았을 때 가장 그리운 것이 친정어머니 일 것이다. 그러나 내 친정은 울타리였던 친할머니가 별세하시고 나니 허공이 된 터였다. 일본에 계신 아버님은 경제적으론 풍족했어도 마음의 빈 방을 사랑으로 채워주진 못했다. 산후 우울증인지, 출산 후 내 마음이 산 넘어 구름 넘어 온 종일 떠다니며 가슴속에 찬바람이 일었다. 이런 나에게 유모할머니는 아기가 보고 싶다고 오셔서 완전히 곁에서 나를 보살펴주셨다. 낮에도 한밤중에도 따뜻한 미역국을 먹게 하였다. 자신의 며느리처럼 따뜻한 마음과 사랑스럽게 미소 짓고 바라보던 그분의 고운 심성에, 실수할까 항상 긴장으로 자신을 얽매던 내 마음도 어느새 편안하게 바뀌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눈을 녹이는 따뜻한 햇살처럼 할머니의 포근한 보살핌과 따뜻한 사랑이 느껴져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릴 적 엄한 습관이 몸에 배어 항상 스스로를 꽁꽁 묶어 조심스럽게 살던 생활이었는데, 유모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이 나의 마음을 감쌌다. 따뜻한 햇살에 몸을 풀 듯 내 마음이 안정되고 누그러졌다. 나는 그분에게서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결혼생활은 순탄한 것 같아도 어려움도 닥쳤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어느 날 후배에게 거대한 땅을 사기 당한 것이다. 산이 포함된 큰 토지였다고 한다. 얼마나 넓은지 누가 산 속에서 나무를 찍어 훔쳐가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끝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그걸 사기 당한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으면 큰 부자가 되고도 남을 재산이었다. 사기를 당한 남편은 괴로워하며 동분서주하였다. 차분하고 감정을 잘 나타내지 않던 사람이 큰일을 당하니 마음을 크게 다친 것 같았다. 큰 덩치가 빠져 나가니 가장이란 책임감과 체면에 더 짓눌렀으리라. 사업상 복잡하게 얽혀, 일을 당한 것 같으나 내용을 상세히 묻지 못하고 눈치만 보았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힘들어 하며, 건강까지 해칠 것 같은 남편에게 상세히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남편의 자존감을 살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애써 태연한 자세로 위로했다. 나 역시 몹시 속이 상했으나 마음 비우는 기도를 매일 했다. 인간관계도 서툰 편이고 작은 일에도 항상 어설픈 나 자신이었지만 어디서 용기가 나는지 집안의 큰 불행에 나는 강인해졌다. 온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꿋꿋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과 한탄은 뒤로 하고 앞으로 대처 할 실마리 찾기에 집중했다. 남편 마음과 건강도 챙기고 기도하며 움직였다.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할머니, 저도 강인한 할머니 피를 이어 받았나 봐요. 전 아주 급할 땐 더 차분해지네요. 할머니, 이겨낼 힘을 주세요. 아범도 잘 이겨 내야하구요.”라고 기도 했다.
어릴 적 엄격하셨던 친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할머니는 내 삶에 디딤돌이 되어주신 것이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냈다.
시집와서 긴장 속에 있던 내게 따스하게 돌보아주셨던 유모할머니도 내게는 큰 의지가 되는 분이다. 두 분은 내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분들이다. 삶의 고비마다 많이 생각하고 그리워한 할머니, 그리고 유모할머니.
말수가 적고 목소리도 낮은 나는 얌전해 보이지만 안에 강한 의지가 있나보다. 친할머니의 강인함을 이어받은 손녀 아닌가. 힘들고 어려웠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생각나면 항상 할머니 얼굴도 함께 나타난다.
내 생에 두 분의 할머니는 굳건하고 따스한 삶의 디딤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