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블록 방
임 세 규
둘째 녀석은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쪼르르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내 품에 안긴다. 아내는 입학 시즌이라 일요일도 없이 출근이다. 딸아이와 함께 어디에 가야할지 고민을 하다가 식탁 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레고 블록 방 전단지가 있다. 딸아이는 신이 나서 벌써부터 갈 준비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각자의 테이블 위에 놓인 블록을 조립하고 있다. 남자아이들은 로봇이나 비행기, 자동차, 여자아이들은 집이나 작은 소품을 만든다. 레고 시리즈 세트는 장난감 치고 제법 비싼 가격이다. 막상 구매를 하고 집에서 만들면 작은 부품들은 어디로 가버리기 쉽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 둘 중 하나는 아이 옆에서 같이 도와주어야 한다.
블록 방은 한 시간에 4000원을 낸다. 쉬운 것에서부터 어려운 것까지 원하는 만큼 만들 수 있다. 대여도 가능하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놀이방이다. 레고( LEGO )는 덴마크어로 레그 고트(leg godt) 잘 논다(play well)라는 뜻이다. 1932년 덴마크의 목수 출신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만든 장난감 공장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1년에 2억 박스 이상이 팔리고 있다고 한다.
신조어인 키덜트 ( 어른이 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아이들의 물건이나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 )중에도 마니아층이 있다. 시리즈 세트 하나를 완성 할 때마다 무슨 신이 된 것처럼 창조주의 기쁨을 누린다고도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 어디 그런 가 ’차분히 앉아서 설명서를 보고 집중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블록 방의 또 하나 인기 비결이 있다. 직원이 잘 조립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도와준다. 또한 아이들은 레고를 만들고 엄마들은 1층 커피숍에 내려간다. 두어 시간 실컷 수다를 떨면서 조금의 자유시간을 즐긴다. 누가 생각을 했는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까지 연결한 것이 참 대단하다.
실버는 초급이고 프리미엄은 중급이다. 마스터는 어른도 하기가 까다로운 고급 코스라고 직원은 친절히 설명을 해준다. 딸아이가 프리미엄까지는 혼자서도 여러 번 해보았다고 한다. “ 아빠하고 같이 하는 거니까 최고로 어려운 마스터 한번 해볼까 ?”가영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뿔싸 ! 보기에는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30분쯤 지나자 은근히 후회가 든다.‘ 쉬운 걸로 할 것을.’놀이공원 시리즈 레고에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풍차를 만들 때다. 비록 장난감이라 하지만 방향과 위치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 방향을 잘못 잡아서 분리를 한 후 다시 끼워야 하는 상황이다. 식은땀이 흐른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해본다.
“ 어떻게 하면 쉽고 재밌고 빨리 할 수 있을까 ? 블록을 크기하고 색깔별로 나눈 후에 아빠가 다음 순번을 미리 찾아주고 가영이는 조립을 하면 어떨까 ?” 단순히 조립하는 놀이다. 하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어려운 일을 쉽고 빠르게 풀어나갈 수 있음을 가영이는 조금이나마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4시간의 조립 끝에 놀이 공원처럼 거대한 풍차, 레일위의 기차, 아이스크림 가게 등등 하나의 작품이 우리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최고 난이도의 블록을 완성한 건 우리가 처음이라고 한다. 멋진 선글라스를 쓴 인형이 롤러코스터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일요일 오후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 보라 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해주는 것이리라.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나와 둘째 딸은 놀이동산의 친구다. 완성된 놀이공원 레고와 함께 사진을 찍어 아내와 큰 딸에게 보냈더니 카카오 톡 이모 티 콘이 난리다.
아이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사춘기가 일찍 오는 것 같다. 아들을 키우는 친구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징그럽다고 한다. 껌 딱지라는 유행어가 있다.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쯤 되면 친구를 더 좋아한다. 제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한다.
마음 가득 뿌듯함을 안고 돌아 오는 길이다. 아빠의 따뜻한 온기가 한 손을 꼭 잡고 걷는 딸아이에게 전해진다. 맞벌이 부부의 일상은 빠듯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놀아 준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내와 서로 분담한 집안일을 하다보면 늦은 밤이 되어 버린다. 일요일은 솔직히 쉬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다. ‘ 그렇게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의 몫이 무얼까 ’생각해본다. 블록방의 추억은 훗날 딸아이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초롱초롱한 딸아이의 눈망울 속에 아빠와 함께한 레고 블록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