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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과 을    
글쓴이 : 임세규    18-06-26 21:57    조회 : 7,418
   갑과 을.hwp (28.5K) [5] DATE : 2018-06-26 21:57:05

                                            갑과 을

                                         임 세규.

뉴스속의 한 여인이 안전모를 쓴 작업자들을 향해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듯하다. 그녀는 한 남자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빼앗아 던진다. 길 위에 널부러진 하얀 종이들이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하다.아나운서는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며 의례적인 멘트를 한다.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회 지도층이라 함은 그에 걸 맞는 인품과 성정( 性情)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대기업 회장의 아내이고 장학, 문화, 복지라는 명분아래 설립된 재단의 이사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지도층이 된다는 말인가.

이른 아침 배달을 가기 위해 가방에 짐을 넣고 있다가 상급자의 호출을 받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PC의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았다. 비교적 간단한 문제였다. 무심코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잡은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따가운 눈초리와 함께 어딜 앉아 ! 옛날 같으면 워커로 정강이를 차였어.”

상황은 이렇다. 상급자는 사무직이고 나는 배달을 나가는 현장 직 이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상급자는 자기보다 한참 아래인 내가 자신의 의자에 덜컥 앉는 것이 몹시 싫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갑이라 여겼고 나를 을이라 생각 했을 것이다.나는 기분이 몹시 상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P.C 문제를 해결하고 배달을 나갔다. 개인의 인성도 문제가 있지만 그가 겪어온 70.80년대의 군대문화가 2000년대 공직 사회에서도 직장 내의 갑과 을의 관계로 바뀌어 존재하고 있음이 씁쓸했다.

얼마 전 책장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책 한권을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렸다. 과일과 야채를 팔아 성공을 거둔 한 청년의 살아온 이야기와 인생관, 자기만의 철학이 공감되어 제목만 봐도 힘이 났던 책이었다. 그는 각종 미디어에 출연하고 강연, 출판을 하며 유명해졌다. 그러나 책의 내용과는 모순된 삶이었던 그의 갑 질이 뉴스에 나왔다. 사과문을 발표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했지만 진정성이 의심되었고 더 이상 신뢰 할 수 없었다. 많은 부와 명예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자만심과 너는 내 아래야 ' 라는 오만함으로 그를 이끌었다.

햇살이 눈부신 오후였다. 집을 나서 도서관 앞 건널목 앞에 이르자 해수욕장의 대형 파라솔 같은 기구가 신호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차양막이 생기기 이전에는 건널목 앞에서 머리위로 뜨겁게 내리는 햇빛을 받아가며 신호를 기다렸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차양 막을 만들었고 시()에서는 신호등 앞에 설치했다. 그늘 밑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 중심의 사회에 대해 생각을 했다.

갑과 을이 있다. 갑과 을은 함께 고민한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최고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을이 떠올린 기발한 아이디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며 예산 등을 문제로 갑이 가볍게 여겼다면 시민을 위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의 기차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차에 치인 여성을 배경으로 한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고 있는 한 남성이 기자에 의해 언론에 공개 된다. 여성은 살았지만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고 한다. 배경속의 여성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 남성은 무슨 생각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알 수 없다.

()를 넘어선 행동이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스스로를 갑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들을 상대로 갑 질 이상의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명문 대학의 교수, 폭행과 갑 질로 인한 가맹점주의 자살까지 이르게 한 유명 피자체인점 회장, 고급 외제 승용차에 주차위반 딱지를 붙였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같은 연배의 경비원을 무릎 꿇리고 사과를 요구했던 강남의 어느 아파트 주민이다. 그 남자와 이들은 모두가 함께 하는 삶을 잃어버린 채 영혼이 없는 듯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윤리나 도덕성이 점점 사라져간다.

프랑스에서 유래된 노블리스 오빌리주라는 말이 있다.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도 이 말을 실천한 존경을 받는 가문이 있다. 12대에 걸쳐 300년간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누고 선행을 행한 경주 최 씨 명문 가문이다. 실천을 통한 모범을 보여준 최 씨 가문은 참 대단하다.

한자사전을 보면 갑()'아무개(이름대용)' 의뜻을 가지고 있다. ()은 계약서의 당사자 중에 한명을 갑으로 하고 다른 한명을 ''로 해서 이름대용으로 쓰이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갑은 힘이 센 자, 을은 힘이 약한 자로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에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 되지 않고 상호 존중이라는 마음이 우선시 되는 사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 때로는 갑이 되고, 을이 되는 인간관계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지 생각해 본다.


노정애   18-07-03 13:21
    
임세규님
이 글도 참 좋습니다
메시지도 있고 요즘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를 잘 쓰셨군요.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힘
글 속에 있다는것을 알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임세규   18-07-05 15:5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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