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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가 할 말을 했다.    
글쓴이 : 임세규    18-09-14 22:29    조회 : 11,049
   아내가 할말을 했다.hwp (32.0K) [1] DATE : 2018-09-14 22:29:36

                                      아내가 할 말을 했다.

                                                                임 세규.

아내와 나는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전화번호를 터치한다. 010-977..‘지 잉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 폰의 진동과 함께 익숙한 전화번호가 영상에 떠오른다. 아내의 전화다. 텔레파시가 존재함을 증명하듯 서로를 향해 동시에 전화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결혼 전 어머니는 사주를 보고 오시더니 "너희 둘은 천생연분이다 못해 만생연분이더라.” 말씀 하셨다.

점심은요?” 아내가 묻는다. ". 방금 먹었어. 당신은?”"입맛도 없고 배도 고프지 않네요. 저녁에 같이 퇴근해요. 할 말도 있어요.” “그래. 이따가 보자. 도착하면 전화 할게.”아내가 할 말이 있다 한다. 오늘 아침 출근 할 때 3만원을 아내 지갑에서 슬쩍했다. 아내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한다. 가끔 월급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지갑이 텅 비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어제 저녁 설거지를 미루고 쌓아놓은 채 출근해서 그런가. (아내와 맞벌이를 시작한 이후 각자 할 일이 있다. 나는 설거지와 청소, 아내는 빨래를 널고, 갠다)

휴일 오전 우리 집 풍경을 시로 써본다. <<우선순위>> 일주일 내내 부지런히 새벽 다섯 시를 알리던 알람은 일요일 아침 게으른 기지개를 켜 네 // 맞벌이로 살아가기 시작한 시간은 아내와 내게 자연스레 집안일의 밀림을 안겨주고 / 가끔은 어린 딸아이의 꾀죄죄한 얼굴로 학원을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게 해주었지 // 빨래는 심각히 어지러운 표정으로 설거지는 먹다 남은 치킨의 흔적으로 / 식탁 위는 정리 좀 해 달라 아우성으로 / 형광등은 갈아 달라는 깜박거림으로 / 안개 자욱한 휴일 아침에 우선순위를 손에 쥐여 주었네 //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 빨래를 개고 정리정돈을 끝내고 / 밥을 하고 청소기를 밀고 /아내와 딸아이는 잠을 자고 / 딸그닥 거리는 소리에 일어날 듯 싶은 데 애써 모르는 척 하네. // 헤드폰을 쓰고 씰룩씰룩 흔들며설거지를 하면서 생각 하네 //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

맞벌이 부부의 집안일은 오로지 아내 몫이 되면 안 된다. 가사는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아내는 집 근처에서 일을 한다. 선영이는 사춘기의 절정 중학교 3학년, 가영이는 고사리 손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좀 더 필요한 나이다. 아내가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을 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불타는 주말의 시작이다. 5일 근무제가 시행된 이후 금요일 밤의 치킨집 앞은 불야성이다. 고소한 튀김 닭과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 ‘아내와 한잔 해야지.’오후 8. 아내의 퇴근시간이다. 버스에서 내려 롯데 마트 앞 신호등 앞에 선다. 아내 몰래 3만원을 슬쩍 한 것과 미뤄놓은 설거지가 마음에 걸린다. 아내가 손을 흔든다. 아내의 표정이 밝다. ‘별일 아닌가보다.’ 소심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가끔 아내를 마중 나간다. 아내가 일하는 매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주면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다. 사계절 내내 따뜻한 손이라며 그녀는 내손을 꼭 잡는다.

아내는 전업 주부였다. 우리가족은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만 해도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내 월급을 가지고 나름대로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지냈다. 하지만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외벌이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현실에 놓였다.

40대중반 중년의 나이, 집대출금과 아이들 학원 비, 보험료, 생활비, 등등 돈이 제일 많이 들어갈 시기다. 혼자 벌어서는 더 이상 생활을 유지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외식한번, 여행 한번, 옷 한 벌, 신발 한 짝 마음 놓고 시원하게 지출하며 산 것도 아니다. 아무리 아껴 쓴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그런다. “집을 팔아서 전세로 살면 되고, 아이들 학원은 끊으면 되지.” “그 월급 가지고 먹고는 살 수 있잖아.” 맞다. 단순히 먹고 살 수는 있다. 산다는 게 어디 그렇게 단순하고 간단하던가. 행복의 기준이 돈과 물질이 될 수는 없지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내 집이 있어야하고, 아이들 미래를 위해 학원도 보내야 하지 않은가. 조금씩 살림살이가 나아져야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고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인생의 낙() 아니던가.

무슨 일 있어?” “할 말이 있다며?”바람 한 점 없는 열대야는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아내가 내 손을 잡은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건널목을 바라본다. “이번 주 까지만 출근 하게 될 것 같아요.”공원 앞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뀐다. 조금만 뛰어가면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10여초 남은 깜빡임을 아내와 나는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다.

최저 임금에 대한 논란이 화두(話頭 ). 방송과 신문에서 보던 사회적 이슈가 우리에게 피부로 와 닿았다. 아내의 실직이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16.4%) 정책은 서민들의 살림살이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부작용이 나타났다. 영세 자영업자는 인건비에 부담을 느껴 종업원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또한 거래처에서도 임금인상에 대한 부족분을 채우려 생산 단가를 올렸다. 결국 오른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하게 되는 소비자는 물가 인상으로 인해 삶이 더욱 힘들어졌다.

경기 곡선이 급강하를 했고 L자형 침체 기조로 떨어졌다한다. 장기불황을 예고하는 현상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자영업자 폐업도 급증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종업원을 고용 하지도 못하고 물가까지 오른다.

지난 중복(中伏)에 삼계탕 집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조금 유명하다는 삼계탕 한 그릇이 15000원 이었다. “돈 없는 사람들은 맛있는 걸 밖에서 사먹지도 못하겠네.” 아내에게 푸념을 했다. “그러게요. 그냥 재료 사다가 집에서 요리 해 먹는 거죠.”부모님과 우리식구 삼계탕 식사비용이 10만원을 훌쩍 넘어 버렸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진다. 물가 상승률에 비해 실질임금의 상승은 미미하다.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내 월급도 일부 줄어들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최저 임금 상승도 우리가 느끼는 체감경기가 좋아졌을 때 해도 되지 않은가싶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선의(善意)의 정책 일 수도 있지만 팍팍한 우리네 삶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

아내가 할 말을 했다. 이번 주까지만 출근 한다고.


노정애   18-09-19 14:41
    
임세규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정책이 가정에도 큰 타격을 주었네요.
저희 주변도 모두 난리랍니다.

다정한 부부를 글로 만나서 좋았습니다.
힘든 시간 잘 이겨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내분과 현실의 문제들이 잘 녹아내려 좋은 글이 되었습니다.
이 글 쓰시면서 조금 힘들셨을것 같아요.
정말 서민들은 언제즘 좋은 날이 올지...

이 부분

'아내와 나는 가끔 깜짝깜짝 놀란다.'
이 단락 마지막으로 옮겨보시면 어떨까요?
종종 있다.--->종종 있어 서로 깜짝 깜짝 놀란다. 

전화번호를 터치한다. ---> 아내의 전화번호를 터치하는데  '지~잉~~'

아내의 전화다. ---> 아내다.

 “무슨 일 있어?” “할 말이 있다며?”
"무슨 일 있어? 할 말이 있다며."

이렇게 생동감있게 바꾸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3만원도 설거지이야기도 참 좋았습니다.
워낙 잘 쓰시는 분이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임세규   18-09-20 14:28
    
좀 더 매끄럽게 다듬는것이
숙제로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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