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아
신 영 애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언니다. 전화를 걸어본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인가 생각을 하면서 다시 전화가 오겠지 했다. 바로 전화가 다시 왔다. “야~ 우리 집 아저씨가 며칠 필리핀으로 여행 간다고 해서 계란을 삶고 있는데, 오메~으짜쓰까~ 깨져 부렀네... 소금을 넣고 삶으면 안 깨진다고 하드만...” 계란을 삶았다고 전화를 한건 아니다. 그냥 일요일 오후 어떻게 지내느냐는 안부 전화다. 그렇게 계란을 삶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언니네 회사 여직원이 이 바쁜 시기에 그만둔다는 얘기. 나이가 드니까 여기 저기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는 얘기. 몸이 힘들면 가장 약한 곳에서 증세가 나타나는데 언니의 경우는 치아로 신호가 와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얘기. 신고 기간인데 오늘은 왜 집에 있냐는 얘기. 그러니까 그냥 수다이다.
10년 전 당시 일손이 부족하여 누군가가 급하게 도와 줄 사람이 필요했다. 아르바이트 구직 공고를 내어도 좀처럼 이력서를 제출하는 사람이 없어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밤 낮 없이 일을 하던 때. 그렇게 언니와 만났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는 내 일을 도와줄 사람으로 채용하였는데 오히려 나를 채용한 듯 당당함이 때때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나는 그런 언니의 태도가 거슬려 까칠하게 행동하고 업무를 지시했다. 두 달 정도 일을 했을듯하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언니는 자주 이직을 했다. “왜 그렇게 자주 옮겨 다녀요? 한곳에 진득하게 있지 못하고...” “야, 세상이 내 마음 같지가 않아. 나는 열심히 했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만두란다. 내가 뭐 여기 아니면 갈 때가 없을라고” 그렇게 짤렸다는 얘기를 남의 얘기하듯이 덤덤하게 했다. 그리고 나면 며칠 후 어디에 취직을 하였다고 전화가 왔다. “참 잘도 그만두고 잘도 취직 하시네요” “내가 안 간다고 해서 그렇지 오라는 데는 많아” 언니는 아쌀하고 쿨하다. 가끔은 그것도 능력이라고 통화하면서 낄낄대기도 했다. 나는 늦은 시각까지 회사에 혼자 남아서 야근을 하는 날이면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아니다. 언니가 귀신같이 알고 전화를 했다. 메신저 창이 켜져 있어서였다. 아직도 퇴근하지 않고 뭐하냐고, 일이 많으면 가서 도와 줄까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언니가 여기 와서 나대신 일 좀 하라고 너스레도 떨었다. 세법이 새로 바뀔 때마다 전화를 하고 신고 기간이면 어김없이 전화해서 모르겠으니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내가 법전이냐고 나도 바쁘다고 하면 “그래도 가장 편하게 물어볼 사람이 자네밖에 없네.”하면서 그거 하나 가르쳐 주면서 되게 타박을 한다고 궁시렁거렸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때 내게 위기가 왔다. 계속 되는 야근과 줄어들지 않는 일들로 인해 지쳐있었다. 집에 가서 힘들다고 말하기 싫어서 그런 날이면 일부러 회사에 남아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가 가고는 했다. 그날도 회사에 남아서 그냥 넋 놓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성취감도 좋다. 욕심도 많다. 그러다보니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그렇다고 새삼스레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할 일도 아니다. 선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 시기만 지나면 된다고 하였으니까. 내 인내심이 부족한 것인가 자책도 했다. 내 능력이 여기까지인가 한심하게 생각도 했다. 언니도 그날은 힘들었나보다. 밤 10시든 11시든 휴일이든 일요일이든 시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불쑥불쑥 전화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렇게 늦은 시각에 전화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언니는 대뜸 “정말 더러워서 이 짓도 못해 먹겠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것들이 사장이랍시고 온갖 갑질을 다 하는 통에 열 받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면서 특유의 걸쭉한 욕을 해대었다. 다른 날 같으면 그냥 들어주고 웃어주고 했을 일이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그러나 그날은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아니다. 나도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자 언니가 말했다. “울고 싶으면 펑펑 울어.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야. 나도 울고 싶은 때가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나는 마음 놓고 울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강산만 변하겠는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많다. 인간관계의 깊이는 얕아지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친하게 지내 던 사람들은 어느 사이 연락이 닿지 않게 되었다. 업무는 전산화가 되어 정확도를 요구한다. “나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아.” 그 한마디가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언니는 여전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전화하고 싶을 때 전화한다. 가족들과 같이 있는 일요일이라고 얘기하면 우리 나이에 무슨 가족들 눈치 보면서 전화하는 시기는 아니지 않느냐고 한다. 계란을 삶았는데 몇 개가 터졌다는 아주 사소한 얘기를 하면서.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