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명감
신 영 애
너무 오랫동안 어떤 일에 몰두해 있다 보면 온통 생각이 그리로 집중되어 일상적으로 돌아와 익숙해지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든다. 요즘이 그렇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허구한 날 이번만 하고 끝내야지, 끝내야지 마음만 수백 번 다짐하고도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다. 잠시 권태기가 와서 다른 일을 해보기도 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들을 해도 나는 배운 대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면서 발을 들여놓았다. 물론 아이들을 예뻐하는 마음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맑고 순수한 그 영혼. 아무런 계산 없이 마음이 느끼는 대로 손을 내밀고 웃어주는 그 아리따운 마음. 그러나 실상은 아이들을 예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주변의 열악한 환경들. 양심 없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저지르는 무언의 폭력들을 보아야만 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해맑게 웃어주던 아이들 속에서 나는 매일매일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노동에 대한 터무니없이 낮은 월급. 그저 아이들이 좋아서 선택했다고 하기에는 그 이유가 너무 옹색하고 눈물겨워 나는 그 일을 떠났다. 이따금 뉴스에서 들려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의 아이들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학대를 보면서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당시의 환경이 떠 올랐다. 아직은 세상에 대하여 어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아이들을 대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최소한의 양심과 미래의 꿈나무들을 키우고 있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세무회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싫어서 떠났다가 다시 찾은 만큼 약간의 공백기라도 밀어내려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이 일을 다시 시작했다. 무엇이든 성실히 하는 성격답게 나는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인정도 받고, 남들은 열정 페이니, 노동력 착취니 할 때도 나름 괜찮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하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아니, 남들보다 수십 배는 아니어도 적어도 다섯 배쯤은 노력했다는 게 맞을 듯싶다. 그게 내 성격이니까.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항상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고, 일을 처리하면서 상대방의 원하는 바를 파악해서 그들의 간지러워하는 부분을 잘 긁어주려고 노력했다. 책을 찾아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은 두 번 세 번 읽고,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차라리 내용을 외워버려서 누군가 내게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그들이 듣기를 원하는 맞춤 대답을 시원하게 한마디로 핵심만 콕 들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얕은 지식으로도 그들에게 신뢰를 얻었으니 때로 미안하기도 했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했다. 간혹, 어깃장을 부리는 사람이 있어도 어쩐 일인지 그들은 그게 본심이 아님을 내게 금방 드러내었고 나 역시 그리 인생 오래 산 세월은 아니어도 그만하면 이해해 줄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들고는 했다.
‘적당히’를 넘어선 친절을 요구하는 사회, 대접받고 치켜세워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정확하고 빈틈없는 나를 요구하는 그들을 볼 때가 있다. 때로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이유 없이 경쟁하고 작은 실수도 참아주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분명 누군가 처음 걸어가고, 또 누군가 그 길을 가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들이 지나갔던 길이 우리에게도 길이 되는 것처럼 분명 그들도 이해하고 서로의 눈높이에서,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간혹 주위에서 ‘왜 이렇게 죽자 살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어제까지 함께 했던 동료가 더는 못해먹겠다며 떠나는 모습을 볼 때면 왠지 그런 자리에 남아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속에서 서로 '양보 = 지는 것'이라는 이상한 공식을 세워두고 양보는 미덕이라는 옛말은 그저 자라나는 새싹들에조차도 얘기하기가 민망하리만치 그렇게 소위 '어른'의 모습을 '철듦'이라는 이유로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기도 한다. 억울하기도 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훔치다가도 자리에 앉으면 다시 현실과 맞서 외롭고 지루한 숫자와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눈뜨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들이지만, 그런데도 우리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보듬으며 살아간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어쩌면 일 때문에 힘들었다기보다 사람 관계로 인해 지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다 휴식 없이 달려왔기 때문이라고 해두고 싶다. 일 년의 절반을 고된 업무에 파묻혀 나를 돌볼 시간도 없이 지나와서 그런 거라고. 좋은 마음을 갖고 열심히 달려오는 동안 그들은 나에게 신뢰를 보내주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까딱 잘못하면 생각보다 큰일이 생기는 건 맞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먹고살기 위한 일일 수도 있는 이 일을 나는 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려오는 동안 즐겁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내게는 아마도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던가 보다. 오늘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나의 그런 작은 마음이 그 누군가에게는 씨앗으로 심어졌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