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대원사 계곡이 좋다!!!
장 석 률
한국(육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지리산이고 또한 가장 산다운 산을 꼽으라면 역시 지리산일 것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탁족의 행복을 누린 가장 환상적인 아름다운 계곡은 산청 지리산의 대원사 계곡이라는 글을 읽고 당장 가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해본다. 대원사 계곡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끄트머리가 유평리 새재다.
새재 - 무재치기폭포 ? 치밭목대피소까지 왕복코스는 소요시간 4시간 반이고 난이도「상」의 코스이다. 내 체력으론 만만찮은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글을 읽은 뒤에는 가보고 싶은 욕망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이성의 방파제를 넘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란 속담대로 내일 당장 산에 오르기로 한다. 기대 반 걱정 반의 감정이 교차한다.
등산 전날 저녁 장을 봤다. 방울토마토, 포도, 참외, 초콜릿, 맥주 한 캔, 소시지, 과자 한 봉지, 물, 커피 한 캔을 사고 등산용 여름 장갑도 샀다.
다음날 새벽 4시 20분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허둥지둥 배낭을 꾸리고 김해에서 남해고속도로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거쳐 산청IC로 빠져나와 꾸불꾸불한 산길을 넘어 6시 반 새재에 도착했다.
안개비가 오는 듯 마는 듯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는다. 출발 지점 앞 표지판에「치밭목대피소 현재 온도 3℃」란다. 목적지가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을 실감한다. 등산로 시작은 개울 옆을 따라 폐가를 지나는 오죽잖은 길이다. 200m 쯤 지나자마자 바로 그럴듯한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이제 본격적인 등산이다.
출렁다리에서 계곡을 바라보니 물이 많지는 않지만 수정처럼 맑고 계곡에 널려있는 집채만 한 바위가 몹시 이색적이다. 내가 자란 고향은 계곡다운 계곡도 없거니와 계곡에 널려있는 바위는 더더욱 보기 힘든 광경이다.
등산로 양쪽으로 산대나무가 무성하게 덮여있고 큰 나무는 하늘을 덮어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지만 여름철 등산로 치고는 이만한 곳이 없다.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길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벤치가 한두 개 있으면 참 좋으련만 등산객이 많지 않은 탓인지 벤치를 찾기 어렵다. 등산로도 손을 보기는 했지만 어떤 곳은 길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정도로 바위뿐인 길도 있다. 등산로가 능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숲길로만 걷게 되어 주변 경치를 볼 수 없어 아쉽다. 중간 중간에 산짐승의 배설물과 엊저녁에 파놓은 듯 한 토끼 굴 같은 것이 자주 보인다. 거기에 더해 반달곰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여러 개 보여 약간 겁이 났다.
서너 번의 간식을 겸한 휴식을 하면서 쉬엄쉬엄 오른 끝에 드뎌 두 시간 만에 목적지인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는 공사 중으로 그야말로 공사판 광경 그대로이다. 정상이 아니라서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탁 트인 전경을 기대한 맘은 접을 수 밖에 없다. 해발 1,425m라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면서 여까지 오른 것에 만족한다.
가빴던 숨을 고르고 참았던 화장실도 다녀오고 땀도 식한 다음 준비한 도시락을 꺼냈다. 산에서 마시는 맥주 한 캔과 과일 맛은 이 세상 어느 맛도 비교할 수 없이 달다.
이제 하산이다.
내려오면서 보니 무척이나 험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런 길을 올랐다는 내 자신이 뿌듯하다.
문득 시 한구가 떠오른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되었다. 대략 7시간이 걸린 셈이다. 남들은 4시간이면 충분한 길을 나는 7시간이 걸렸으니 그만큼 경치를 더 많이 즐긴 것이리라.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가 문득 탁족을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자동차를 세우고 등산화 끈을 풀어 계곡에 발을 담갔다. 생각보다 물이 차갑지 않다. 발뒤꿈치 때가 너무도 잘 벗겨진다. 누가 볼까봐 창피스럽지만 묵은 장독 항아리를 닦는 것처럼 개운하다.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친구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골아 떨어졌다. 친구의 숨소리가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우리 나이가 되면 좋든 싫든 체력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고 치아도 조금씩 부실함을 느낀다. 조금씩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기 시작하면 격렬한 운동은 삼가야 하며 등산도 점점 더 낮은 산으로 가야한다.
나와 같은 장애인은 더더욱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게 되면 그동안 한 일과 앞으로 할 일 중에 대개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준비 보다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회상이 많은 시간을 차지할 것이다.
먼 훗날 내 인생에 아름다운 회상을 위하여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천왕봉을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