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즐거운 날 2013. 6.
이른 아침 집 근처에 있는 불곡산에 올랐다.
입구에서 부터 밤꽃 향기가 가득하다. 상큼하고 풋풋한 나무 냄새, 산들거리는 바람, 산뜻한 공기가 몰려온다. 머릿속이 시원해짐을 느낀다. 등에 배어오는 땀 때문에 스치는 바람이 더욱 시원하다. 한참 오르자 바람은 물이 되어 물속을 수영한다. 한참 후 벤치에 앉아 바람을 향하여 어깨를 쫙 펴본다. 시원한 물결이 온 몸을 감싼다. 머리가 가슴처럼 따뜻해질 때면 머리가 무겁다. 이 때 산에 오르면 한결 기분이 좋아지고 높이 오를수록 공기가 좋아진다.
근래에 이름을 익힌 꽃, 나무와 인사한다. 이름을 알아야 더 유심히 보고 상호간에 제대로 인사가 되는 것 같다. 산 딸 나무 꽃, 엉겅퀴 꽃, 밤꽃, 유채꽃, 망초 꽃, 물 박달나무, 너도밤나무 등. 아는 꽃과 나무를 만나면 즉시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게 된다. 이름 모르는 좋은 꽃은 카메라에 담아둔다. 언젠가 책에서 찾아보자. 나무에 달린 설명서를 보니 졸참나무, 물 박달나무, 단풍나무 등은 모두가 암컷, 수컷이 한 나무에 같이 있는데 소나무에는 암수가 같이 있는 나무가 있고 따로 있는 나무가 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니 바람만 불어도 수정이 되어 번성하도록 대부분의 나무가 암수를 같이 가진 모양이다. 동물은 움직일 수 있으니 암수를 따로 만들었나 보다. 일부 사람도 암수를 같이 기자면 어떨까? 성 문제로 시간 소모하고 고민하는 일도 없겠으나 사는 재미는 적을 것이다.
등산과 하산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기로 했다.
‘네, 안녕하세요’ 하는 상대방의 경쾌한 답례인사가 온기가 되어 내 온 몸속에 퍼지고 피로감도 사라진다. 이야기하며 걸어가던 60대 여성 두 명에게도 옆을 지나가며 인사를 건넨다. 허나 대답이 없다. 얼마 후 다시 만났을 때 ‘안녕하세요, 잘 걸으시네요’ 하고 다시 말을 건넨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슬쩍 쳐다보더니 그냥 지나간다. ‘지독한 촌 할머니들이구나. 아침 인사도 못 알아들을까? 희롱이라도 하는 것으로 생각하나?’
한 참 후에 이들에 대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고 있어 내 인사에 대꾸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몰라. 내 인사가 그들의 생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상대방의 답례 인사가 오고 안 오고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겠어.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아니면 모두에게 인사할 필요야 없겠지.
집에 돌아와 보니 학기말 시험시간이 촉박했다. 학과 조교에게 시험문제를 보냈고 시험 감독도 부탁했으니 나는 전철로 천천히 가서 답안지만 받으면 된다. 전철에선 신문이나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자. 승용차를 빠르게 운전하고 가자 다행히 정시에 교실에 도착했다. 시험문제에 질문이 없느냐고 물으니 학생들은 주관식 문제의 수가 너무 많다고 하였다. 나는 해답을 간결하게 쓰면 된다고 말했으나 얼마 후 다시 생각해 보니 평소 때 보다 더 많은 문제를 출제했기에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하나는 빼고 써도 좋다고 양보했다. 그들은 좋아라고 했다. 시험장에 제 때에 도착해서 소통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 참으로 잘 한 일이었다.
꽃, 나무 그리고 상대방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이 나를 즐겁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