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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상    
글쓴이 : 류지현    14-02-23 16:46    조회 : 6,214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단지 배경음악이다. 나이가 있으니 결혼할 처자를 데려오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텔레비전에서는 싫어라고 대답한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화, 대학교 때 만났던 여자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였다.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연인이었던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밥을 먹을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갈 때에도 서로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중인 영화를 보고 우리는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대학생 신분과 어울리지 않게 횟집에서 배를 채운 그 날, 나는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고 시험을 볼 생각을 했다. 여자 친구는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으면 부모님께서 괜한 오해를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였다. 사소한 생각 차이는 그녀와 나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혼자 걷기로 결정했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은 까닭에 연상으로 공부한다. 화학의 기본인 전자배치의 3원칙을 공부할 때도 그랬다. 전자배치의 1원칙은 축조법칙 (Aufbau principle)이다. 영어 글자들 사이로 ab가 보인다. 전자가 에너지가 낮은 오비탈부터 차례대로 채워져서 ab를 만드는 원칙으로 생각했다. 전자배치의 2원칙은 파울리의 배타원리 (Pauli exclusion principle)이다. 오비탈에 전자가 채워질 때 밀도가 높은 원자핵 주위에 서로 다른 2개의 상태를 가질 수 있는 궤도함수로 존재하는 데, 이는 하나가 1/2의 전자상태로 점유되면 나머지는 ?1/2의 상태로 점유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파울리와 배타가 있기 때문에 파울리와 반대적 특성을 가진 배타는 반대의 스핀을 가진다고 기억했다. 마지막 3원칙은 훈트의 법칙 (Hund’s rule)이다. 에너지가 같은 원자 궤도에 전자가 배치될 때, 홀전자수가 많게 배치되며, 스핀 양자수가 서로 같다는 법칙이다. 나는 훈트는 혼자 존재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방향, , 홀전자수가 많게 배치된다고 암기했다. 연상으로 공부하는 특성은 암기능력이 떨어지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사람을 기억할 때 다른 사물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방법 탓인지는 모르지만 주변의 사람을 떠올리면 그에 맞는 것이 떠오른다. 객체는 영화일 때도 있고, 책일 때도 있고, 음악일 때도 있고, 냄새일 때도 있다. “법륜 스님스님의 주례사책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제니퍼 로페즈용기 (Brave)”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집에서 쓰는 비누향기가 나던 친구도 있었다. 한동안 비누만을 사용하게 해 준 그 친구는 가까이 다가가면 풍성한 거품의 비누향이 났다.
 
 내 지도 교수님은 홍합에 관한 연구를 하셨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교수님의 인생 끝에 밝은 빛을 내밀어 주었던 것이 홍합이었다. 먹는 데만 쓰이는 줄 알았던 홍합이 바닷물 속에서 어디든 잘 붙어 자라는 것에 호기심을 가졌던 그는 홍합의 접착성분을 분석하여 모든 표면에 접착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프라이팬에 기름때 방지를 위해 처리되는 테플론에도 코팅이 된다. 교수님의 박사 논문에는 그의 아이디어와 실험설계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지도교수님을 보면 홍합을 생각난다.
 
 실험실 후배는 광견을 떠오르게 한다. 실험실 후배는 말은 많지만 나를 잘 따라주는 후배다. 이 녀석은 평상시에는 순진하고 착하지만 자신이 화가 나면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부순다. 자신의 손이 퉁퉁 붓고 상처가 나도 개의치 않고 세상을 향해 화를 푼다. 보통 개는 자신의 주인이나 친한 사람은 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친구는 광견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다. 누군가 그랬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인생에 여유가 있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내가 아는 마음의 풍요로운 상태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는 상태에서 나오는 행복의 단계이다. 아직 나는 그럴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부족한 내가 그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나중에 내 농사, 자식 농사를 마치고 사랑하는 부모님을 영전에 모시고, 아내와 풍요로움을 따지는 나이가 되어야 할 것 이다. 내가 포장했던 작은 선물을 그대로 받아준 친구가 고맙다.
 
 과거 여자 친구가 그랬다. 나는 집 냄새가 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자취 생활을 처음 해본 탓일까. 우리 집 고유 냄새가 있는데 그 냄새가 내 몸에 베어있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그랬다. 나에게는 담배냄새가 난단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워서 그런지 내 몸과 옷에는 담배냄새가 베어있다고 한다. 한 친구는 인스턴트 커피가 생각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믹스커피인지라 원두커피에서 맛을 느끼지 못하는 탓이리라.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기억해 주는지는 속마음을 알기도 힘들뿐더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설날에 텔레비전을 보며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유쾌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웃기는 게 직업은 아니지만 개그맨처럼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일단 집 냄새와 담배냄새를 지워야겠다.

임정화   14-02-25 11:56
    
안녕하세요, 류지현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목이 연상인데다 도입부에서 여자친구 얘기가 나오기에 나이가 많다는 뜻의 연상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연상을 이야기한 글이었네요.
잘 모르는 화학이 나와서 잠시 주춤했는데 집중해서 읽어보니 연상에 대한 화학암기법이더군요.^^;;
드라마를 통해 옛여자친구 - 그녀와의 일화-화학공부법-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사물과 노래와 감각 -홍합을 연구하신 교수님 - 광견을 닮은 후배 - 남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 아까 그 여자친구 아니면 다른 여자친구 - 마지막으로 남에게 기억되고 싶은 내 모습의 순서인데요. 일단 예가 좀 많지요? 여자친구도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헷갈리고요. 특히 두번째 문단의 내용은 연상과 관계짓기 예로 취급하기엔 좀 동떨어져 보입니다만.
주제는 관계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보편적 방법인 연상을 통해, 좋지 않은 것들보다는 남을 유쾌하게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예를 두어 가지로 축약하셔서 작가의 메시지에 독자가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글은 연상이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작용이나 인간관계 등 너무 광범위한 현상들을 이야기하셔서 결말에 이르기까지 약간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지 않나 해서요.
처음 올리신 글인데도 문장이 안정적이고 주장에 거침이 없어서 잘 읽힌다는 장점을 갖고 계시네요.
게다가 전공을 살리신다면 여기 한국산문에서는 자주 보기 어려웠던 과학에세이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 상당히 기대가 됩니다. 자주 뵙길 바랄게요.^^
류지현   14-02-25 15:14
    
임정화 선생님.
안녕하세요! 류지현입니다.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고, 수정할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잡아주셔서 퇴고할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두번째 문단은 연상의 예로 보기에는 어렵고,
예를 두어가지로 축약해서 독자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졸업을 앞둔 박사과정학생인데, 과학에세이를 써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도전해 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위에 감기 걸려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 류지현 올림 -
유시경   14-02-26 01:35
    
안녕하세요.
저도 제목만 보고 '연상의 누구누구'하는 내용인 줄 알았답니다. 이렇게 심오하고 재미있는 문장일 줄이야.^^
먼저 저는 첫문단의 '그녀와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가 무언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 내용을 조금만 더 풀어쓰셔서 그녀(과거의 여자 친구)를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연상할 수 있는지 독자에게 가까이 보여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연상의 예시 가운데 실험실 후배를 광견으로 표현한 부분은 좀 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 사람의 격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거든요. 그 후배님께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치료를 하셔야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되고요...ㅜㅜ
타인에 대한 연상기법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서 써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나의 물질(또는 행동)에 하나의 인격을 대입한다는 것은 실로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을 보편성으로 받아들이기엔 약간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사람 얘기 쓰는 게 가장 어려워요...)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사람의 웃음과 유머는 코미디나 개그보다는 대화 속에서 더 많이 터져나온다고 해요. 모쪼록 선생님의 수필 문장이 세상에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길 마음 깊이 바라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이라 여깁니다. 관념이 관념을 불러오는 것은 모든 글쓰기의 기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서 서로 충돌한 이미지와 풍경들이 작가 개개의 고유 문장으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사료됩니다.
항상 참여광장에 올라오는 작품들을 열심히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고자 노력 중에 있습니다.
임정화 문우님께서 비평해주시는 글 잘 보고 또 배우고 있고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류지현   14-02-26 13:53
    
유시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실험실 후배와 반말을 하면서 지낼 정도로 친한사이이고 배경을 알면 재미있는 후배이기에 광견으로 표현했는 데, 말씀하신 대로 글 자체에서는 인격을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글을 읽는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물질에 대입하는 "연상"이라는 주제이므로 퇴고할 때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적도록 하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류지현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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