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기타그룹 >  수필공모
  혼자 걷는 길    
글쓴이 : 류지현    14-03-07 18:29    조회 : 7,116
 한 주를 마무리 하는 금요일. 나에게 금요일 저녁은 한 주간의 쾌쾌묵은 때를 벗어 버리고 세상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물론 금요일이 즐거움만 주는 것은 아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여자 친구와 술자리에 올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언쟁을 벌인다. 그 길로 여자 친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이지 않는 그녀를 생각하며 꺼지지 않는 휘황찬란한 도시를 거쳐 멈추지 않는 나무 몇 그루를 지나 그녀의 실험실에 도착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그치기 시작한다.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더니, 나에게 한 마디를 던진다.
 
 “졸려.”
 
 달려가는 그녀를 쫓다 어제 다쳤던 허리가 아파온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가방을 뒤져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6개월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필까 고민하느라 가방 깊숙이 모셔 놓았던 담배였다. 담배를 입에 물다가 그 동안의 내 의지가 무너지는 것 같아 접어버린다. 내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나 보다. 도망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도망가는 강아지의 일화가 떠오른다.
 목줄이 풀려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기는 강아지와 그 뒤를 쫓아가는 주인.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었던 강아지와 힘이 빠져 주저앉고만 주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넋이 나갔을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주인 곁으로 다시 돌아온 강아지.
 나는 목줄 풀린 강아지를 생각하며 그녀를 버려두기로 결심했다.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집어넣었던 담배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들고 있던 라이터의 부싯돌이 반짝 하는 순간 묘한 상실감과 함께 편안함이 다가온다.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시고 뱉는 순간 그녀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며, 안하는 것이 하는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거나 포기하는 거라고 했다.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마음에 빚이 생기는 것이라 했다. 내가 말했다. 사람은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너를 만나면서 10년간 끊지 못했던 담배를 끊었다고 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자신이 고치려고 노력만 하면 틀에 박힌 습관처럼 고정화되어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법륜 스님“스님의 주례사책을 보면, 기대를 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고, 상대방에게 기대려는 마음만 버리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기대를 하지 않으면 너와 나의 관계는 이성관계가 아니라 단순한 인간관계일 뿐이라고 했다. 호의 동승과 같이 단순한 인간관계로, 사고가 나면 사실관계에 입각한 법률관계로 변질되는 콘크리트 벽을 사이에 둔 관계라고 했다. 우리는 그랬다. 같은 점도 많았을 텐데 다른 이야기를 했고, 다른 점도 좋았을 텐데 싫은 점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별이라는 인생의 굴레를 맞아 각자의 세계에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게 사랑이라는데, 가슴이 잘 모르겠다고 하니 심장이 뛰는지 확인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멈추는 게 당연한 일이지.
 
 여자 친구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고, 나도 가던 방향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피운 담배는 독하지만 위로가 되었고, 연기와 함께 그녀와의 추억도 한 장의 사진처럼 흘러가 분산되어 사라졌다. 나쁜 기억은 모두다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좋은 기억만이 내 가슴속에 남아 내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남아 있는 그녀와의 발자취는 나와 함께해 마음속의 온전한 풍요를 가져다준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착하고 아름답다. 혼자 걷는 길 역시 낭만적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잔디밭 오솔길을 걷다보면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태양도, 내려갈지 올라갈지 고민하는 청솔모 한 마리도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운치 있다. 학교 앞 잔디밭에 누워 잠식해가는 어둠을 바라보니 별 빛이 자태를 뽐내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엉덩이가 시려오는 고통은 내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늘이 허락해 비라도 내려 준다면 우산 없이 훌쩍 거리를 걷다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인적을 안주삼아 책 한권을 읽고 싶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유시경   14-03-08 01:53
    
류지현님, 안녕하세요? 세 번째 산문 잘 읽었습니다. 매우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글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원이시니 금요일이 좀 여유로우시겠군요. 저는 주말 쪽이 가장 바쁜데 말입니다.^^
요즘 법륜스님 말씀이 대세지요. 물론 그분의 말씀에 반하려는 건 아니지만, 상대에게 충실하고 또 어느 정도 기대를 함으로써 생활의 활력도 생기고 그(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선한 감정까지 나온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인간관계의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그래요. 눈에서 안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더라고요. 무엇 때문에 그리 다투셨는지 그 구체적인 대화내용이 약해서 선생님의 문장에 깊이 들어가기 어렵습니다만, 아무쪼록 여자 친구분과 화해를 하거나 아니면 더 멋진 여인을 만나서 ‘함께 걷는 길’도 쓰셨으면 합니다.
비라도 내려주면 좋을 금요일, 카페 창가에 앉아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읽기 좋은 책은 <백석 시 전집>이 딱이랍니다.^^
그런데... 외람되오나 글을 쓰시는 선생님은 적어도 이립(而立) 전후에 계신 분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글의 격이 너무 높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류지현   14-03-09 21:28
    
유시경선생님! 안녕하세요!
다시 한 번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작년 9월경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 적었던 글을 한국산문에 내기 위해서 수정한 글입니다.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술로도 밤을 지새보고 일도 열심히 해보았지만 더 많이 생각났었는데,
글을 적으면서 제 자신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싸운 이유를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 헤어진 날 싸운 이유가 기억이 안 났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날 왜 싸웠는지, 마지막이 되었어야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걷는 길"로 글을 쓸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30살 대학원생입니다. 선생님의 과분한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백석시 전집과 함께 카페 창가에서 따뜻한 날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요.
- 류지현 올림 -
임정화   14-03-13 09:51
    
안녕하세요, 류지현 선생님.
그렇지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기억하지도 못할 사소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다투고 또 헤어지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서로 같은 말을 하면서도 각자 다르게 이해해서 생기는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왜냐하면 여자친구분의 말도 일리가 있고, 선생님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까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할 테지요.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그런데 목줄이 묶인 강아지의 비유는 적절한지 모르겠네요. 또 도입부에서 현재형으로 쓰였다가 뒤로 갈수록 먼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식이 되어 시제가 많이 불분명하고, 두 번째 문단의 '어제'라는 단어도 그런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로 초점을 맞추면 무리가 없겠지만 그러자니 사건의 계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이해가 어렵고, 연인 사이라도 서로의 다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주라면 앞뒤로 더 부연되어야 할 분량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려우시겠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하셔서 고쳐보시면 어떨까 해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글이었습니다. 아주 잘 읽었고요.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것이 틀린지 맞는지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류지현   14-03-18 20:22
    
안녕하세요! 임정화 선생님.
이번 주내로 수정을 하고 싶었는데, 틀을 깨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수정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선생님의 고견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류지현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8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수필 응모하는 분들은 꼭 읽어보세요 (6) 웹지기 05-15 80264
8 내 마음의 중력 - 아버지 수정 (1) 류지현 03-24 5744
7 버스표 빌려주는 아이 (1) 류지현 03-24 5444
6 혼자 걷는 길 - 수정 류지현 03-24 4708
5 아버지 (3) 류지현 03-18 6452
4 혼자 걷는 길 (4) 류지현 03-07 7117
3 분필 (2) 류지현 03-01 6631
2 연상 (聯想) - 수정 류지현 03-01 5646
1 연상 (4) 류지현 02-23 6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