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우리 반에는 덩치가 크고 영특하게 생긴 친구가 있었다. 짧은 머리에 단정한 옷차림, 우뚝 솟은 코와 적절한 근육을 가진 친구였다. 머리도 좋아 입학성적도 반에서 1, 2등을 다투는 학생이었다. 통과의례처럼 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임시 반장을 시켰고, 2주가 지나 반장 선거에서 그 학생이 반장이 되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버스표가 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15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1500원을 내고 버스표를 구입하면 10장이 붙어 있는 채로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든 11장을 만들어 보려는 친구도 있었고, 반을 잘라 접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에게 버스표는 현금과 같았고, 학교 앞 매점에서 불량 식품을 사 먹다가 돈이 부족하면 버스표를 현금과 바꿔 지불하기도 했다. 그런데 버스표라는 게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떨어진다. 어제 보았을 때는 3장이 남아 있었는데, 오늘 확인해 보니 한 장도 없다. 유에서 무를 창출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준비성이 부족한 내 자신을 탓하며 버스표 부자인 친구를 불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날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버스표가 떨어졌다. 같이 등하교를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친구들 역시 버스표가 한 장씩 밖에 없단다. 때 마침 버스표를 빌려주고 있는 반장이 보인다. 버스표 뭉치로 보아 여유가 있어 보인다. 다행이다. 반장에게 다가가 버스표 한 장만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반장은 필통에서 버스표를 꺼내 한 장을 떼어내 나에게 건네주더니 꼭 갚으라고 말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반장이 빌려준 버스표로 무사히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버스정류장 앞 간이 판매소에서 버스표를 구입하고 반장에게 버스표를 주었다. 반장은 나에게 무척이나 고마운 듯해 보였다.
한 번 빌리고 나니 두 번 빌리는 게 익숙해졌다. 버스표 구입을 잊을 때마다 반장에게 버스표를 빌렸다. 반장의 필통에는 항상 두툼한 버스표 뭉치가 있었다. 부모님이 버스표 판매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버스표 빌리는 인연으로 반장과 친해지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가치관도 올바르고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많은 생각을 가진 아이였다. 이런 친구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쁠 정도로 만족스러운 아이였다. 부모님에 대해 물어보다가 반장이 사는 곳이 관저동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관저동이면 학교에서 5분 거리인데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의아했다.
얼마 뒤, 나는 반장에게 버스표를 빌리게 되었다. 버스표를 건네는 그의 미소가 궁금했다. 다음 날 아침에 간이 판매소가 문을 닫았다. 염치없이 나는 반장에게 가서 다시 버스표를 빌렸다. 반장은 웃으면서 버스표를 빌려주었다. 어제 빌려간 버스표를 내일 같이 갚겠다고 말했다. 반장은 어제 빌려줬다는 사실 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해 보였다. 그러더니 내일 같이 갚으면 고맙겠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버스표 두 장을 가지고 가 반장에게 주고, 미안하다며 빵을 사주겠다고 매점으로 데려갔다. 반장에게 빵과 우유를 먹이고 물었다. 버스표를 빌려줘서 너에게 돌아오는 게 뭐가 있느냐고 물었다. 반장은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받지 못한 버스표가 몇 장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부분 다 받았다고 한다. 친구들이라 다 잘 갚는단다. 버스표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반장이 말했다. “빌려주려고.” 다른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반장은 그 말만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