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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그리고 바다    
글쓴이 : 서혜린    17-11-12 23:15    조회 : 5,229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왈칵 비린내가 났다. 피비린내였다. 엄마가 아기를 낳은 것이다. 그것도 바라고 바라던 사내애였다. 우리 집에 유일한 아들이 태어난 것이다. 나는 아들이 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인가부터 들어오던 말이 있었다. 친척들이 우리 세 자매를 보면 늘 입버릇처럼 하던 하나 달고 나오지였다. 나는 그 하나 달고 나오는 것이 시장에 가서 사오면 되는 줄 알았다. 까짓 거 하나 사서 달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에 엄마를 졸랐다. 장에 가서 고추 하나만 사다 달라고 했다. 그럴 때면 난처한 낯빛으로 어린 내게 무어라 대꾸할 말을 잃어버리는 엄마였다.

방안에는 갓 낳은 아기를 싼 강보가 있었고, 좀처럼 걸음을 하지 않으시던 서모할머니가 윗목에서 미역을 꺼냈다. 방바닥은 산후 뒤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듯 했다. 양수인지 오줌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방바닥에 흥건했다. 난 신기해 아기를 들여다보는데 엄마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는 서럽게 흐느꼈다. 또 딸을 낳아 원통함에 우는 울음 같았다. 도무지 어른들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었다. 어색하고 난처해진 나는 그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다. 일하러 나가신 아버지를 불러와야 했다. 할머니는 얼른 아버지한테 가서 아들 낳았으니 불러오라고 성화였다. 거기에다 역한 피비린내에 비위가 상해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봄 해는 짧아 벌써 석양이 뉘엿뉘엿 거리는 중이었다. 난 남산 밑 밭으로 달음박질을 쳤다. 아버지는 남의 밭에 밭골을 키고 있었다. 마을 친척 할머니의 밭을 날품삯을 받고 해드리는 일이었다. 농사는 친척집 산에 팔밭을 일구어 잡곡을 거두어들이기도 하고 문중 땅을 도조 얻어 부쳤다. 이젠 남동생까지 태어났으니 그만큼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워진 것이다. 어쨌든 부모님은 소원성취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시절에 아들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 보다 더 불안하고 조바심을 내던 때였다. 아들을 낳았다는 내 외침에 아버지는 잠시 미소를 보이시더니 집으로 향했다.

딸만 내리 셋을 낳았을 때, 엄마는 늙은 호박을 푹 삶아 먹었다한다. 호박국을 끓인 것이다. 그때만 해도 미역은 귀한 식재료였다. 특히나 산간시골에서는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모할머니는 평소에 인정이 없었지만 그때만은 어른으로서의 인정을 베풀었다. 미역을 한 오리 사 온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구경하기도 힘든 미역국을 먹으며 산후조리를 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게 다 아들을 낳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방안의 비린내는 얼른 가시지 않았다. 산모가 먹는 미역국이 밥상에 올라왔고 난 먹을 수 없었다. 먼저 비위부터 상하는 것이었다. 원래가 비위장이 약하고 예민하기도 했지만, 미역국은 산모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귀한 음식이니 먹으라고 재촉했지만, 난 미역국을 먹으려는 찰나 동생을 낳았을 때의 피비린내가 그대로 느껴져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둡고도 차가우며 질척한 그 방이 동굴처럼 축축하게 되살아났다. 고스란히 각인된 기억 때문인지 난 그 후로도 미역국을 잘 먹지 않았다.

할머니가 첫 미역국을 끓여준 후, 아버지가 미역국을 손수 끓였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미역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손쉽게 끓여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미역 한 축이면 꽤 양이 많았다. 그리고 양식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미역보다는 돌미역이 많다보니 지금처럼 바로 미역국을 끓일 수 없었다. 미역을 한 줌 떼어서 물에 불려놓는다. 그러면 미역의 부피는 열 배는 많아진다. 함지박 가득 미역향이 났다. 종잇장처럼 말라있던 미역은 물에 불리면 부피가 커지고 색깔도 바닷물처럼 변해갔다. 물 먹은 미역은 윤기마저 돌았다. 그리고 모래가 많았기에 그냥 물에 불려서 끓였다가는 낭패를 당한다. 그것을 바락바락 치대야 미역에 묻은 모래를 털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름 한다고 했지만 미역을 제대로 빨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처음 끓인 미역국은 모래가 씹혔다.

엄마는 미역국을 무지 좋아했다. 그런 만큼 자식도 많이 낳았다. 난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엄마가 미역국을 좋아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짐작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미역국이 밥상에 올랐고, 엄마는 그것을 질리지도 않는지 한 달 내내 잘도 먹었다. 어린 내겐 그런 엄마의 식성이 참 신기하기만 했다. 그와는 반대로 난 아이를 낳고도 미역국이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처럼 미역국은 이미 본능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미역국은 소고기나 북어는 넣지 못하고 오로지 들기름과 조선간장만으로 끓였다. 불린 미역을 들기름에 볶고 쌀뜨물을 부은 다음 불을 지펴 무쇠솥에 뭉근하게 끓여낸다. 그러면 그것들이 어우러져 깊은 맛이 났다. 예전에 미역은 짜고도 달았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미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지금도 제대로 된 미역은 값도 무지 비싸고 귀하다. 엄마가 동생을 낳고 그렇게 오래도록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면 나도 그토록 오랜 시간 미역국을 거부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엄마는 서울에서 시골로 시집와 보리밥과 푸성귀로만 된 식사는 아마 맞지 않았나보았다. 고기 못 먹는 것을 한탄처럼 쏟아내었다. 그러면서 유년시절 맛보았던 해삼에 대한 얘기도 자주 했다. 해삼이 바로 앞에 있는 양 입맛을 다셨다. 나는 해삼의 생김새도, 맛도 상상으로 떠올리곤 했다. 자라서 돈을 벌면 그토록 오래도록 입맛만 다시던 해삼을 실컷 사드리라 마음먹었다.

드디어 중학교 수학여행 때 해삼이라는 놈을 보았다. 인솔 선생님들이 수산시장에 들리셔서는 해삼을 흥정했다. 나는 시커멓고 우둘투둘한데다 징그럽게 생긴 모양에 아연실색했다.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바닷가에 가면 나도 꼭 그 해삼이란 놈을 사먹어 보리라 했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바로 외면했다. 우리들은 징그럽다고 비명을 질렀고, 선생님들은 그것을 사서는 따로 먹는 듯 했다. 게다가 울퉁불퉁 수염까지 달리고 벌겋게 부어오른 멍게라는 놈도 혐오스러웠다. 대체 저런 것을 어찌 사람이 먹을 수 있는지 의아스럽기만 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직접 본적이 없는 바다는 내게 막연한 동경심을 심어줬다. 바다를 본다면 소원이 이뤄질 것만 같은 상상이 들었다. 남해로의 수학여행이었다. 부산 해운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끝없이 넓었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을 보니 비로소 세상이 넓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찝찔한 바다 내음도 시원하게 불어대는 해풍도 모두가 환상 같기만 했다. 나는 시의 의미도 채 모르면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떠올렸다. 그 후로도 바다에만 가면 그 시가 떠오른다.

-, -, , -. 따린다, 부슨다, 문허바린다.”

파도가 칠 때마다 그 소리가 났다. 어른이 되고 중년이 지나면서 가슴 한구석이 돌덩이를 얹은 듯 갑갑할 때면 바다가 생각났다. 내 탯자리도 아니면서 달려가고 싶은 바다, 그곳에 가면 콱 막혔던 숨이 뚫릴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거기로 데려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혼자서 간다는 엄두는 내지 못했다. 지금껏 갈망만 해왔다. 바다를 보면 설레고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것은 끝없는 광활함 때문인가. 살짝 눈을 감으니 비릿한 바다향이 난다.

그렇게 입맛을 다시며 해삼타령을 하던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고도 한참 뒤에 해삼을 맛보았다. 평생을 원하던 음식이니 맘껏 드시라고 권했으나 정작 많이 먹지 못했다. 뼈도 이도 구멍 숭숭한 스펀지처럼 부실해졌다. 6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산후 조리도 시원찮았고, 먹을 것도 부실한 상태에서 죽기 살기로 일했다. 세월은 청춘만 좀 먹은 게 아니었다. 눈처럼 희고 보드랍던 얼굴은 기미가 덮었고 주름이 골짜기를 이룰 만큼 깊어졌다. 성난 파도처럼 괄괄하던 성미도 번득이던 재치까지 함께 데려갔다. 머리칼은 하얗게 포말을 그리는 물거품을 닮아갔다. 변하지 않은 것은 바람소리와 바다의 내음 뿐이다.


노정애   17-11-15 17:49
    
서혜린님
반갑습니다.
이 글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제와 소재를 하나로 맥을 잡아 쓰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와 미역을 하나로
해삼과 바다를 하나로
따로 쓰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지 마시고 반복된 문장이나 설명의 글은 빼는게 좋습니다.
목성균의 <누비처네>라는 책을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듯 합니다.
서혜린   17-11-15 18:48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고에 좀 더 힘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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