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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혜린    17-11-22 21:59    조회 : 5,292

집 마당이 목장처럼 변하고 있었다. 엄마와 싸움까지 해가며 암소 한 마리를 수송아지 두 마리와 바꿔 오신 아버지. 자못 신바람이 나셨다. 마당 외양간 바로 앞에 말뚝을 치고 산에서 베어온 소나무 가지에 껍질까지 벗겨 매끈하게 다듬으신다. 그런 다음 빙 둘러가며 울타리를 치셨다. 거기에다 송아지들을 풀어놓고 키우겠다고 하셨다. 수송아지들을 길들여 이다음에 싸움소로 만드시겠다는 당찬 포부. 엄마는 제정신이냐고 악다구니를 치시고, 그렇게 몇날 며칠을 입씨름을 하다가 일단은 아버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울타리는 기둥을 박고 나무를 덧대고 철사로 묶어 못질까지 해가며 한참이 걸렸다. 동네 사람들도 지나가다 들여다보곤 했다.

송아지 두 마리는 무럭무럭 자랐다. 몇 달이 지나자 중소만큼 커졌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소들을 어루만져주고 털을 빗겨주며 정성을 기울이셨다. 소들도 탈 없이 여물도 잘 먹고 건강했다. 마치 아버지의 두 아들처럼 든든하기만 한 녀석들이었다. 아버지는 낮에는 밖에 울타리에서 자유롭게 지내도록 해주고, 저녁이면 외양간으로 소들을 들이셨다. 한동안은 참 좋았다.

친구처럼 따르던 녀석들이 어느 날 부터인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삐 줄을 풀려고 고개 숙이던 아버지의 머리를 뿔로 받았다. 아버지는 어이쿠비명을 지르셨고, 놀란 나는 외양간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이마에는 옴폭하게 구멍이 패었다. 뾰족하고 단단한 소뿔이 아버지 이마를 뚫은 것이다.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럽다며 방으로 들어가서는 누우셨다. 평소에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던 아버지셨다. 돈이 아까워 병원에도 가지 않고 상처에는 연고를 바르고 이마를 끈으로 질끈 묶었다. 그리고는 며칠을 그렇게 앓아누우셨다.

난 아버지를 다치게 한 소가 너무 미웠다. 그래서 작대기로 몇 번 때렸다. 소는 입에 거품을 흘리며 퍼르륵소리를 내더니 눈을 이상하게 치떴다. 그러더니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오려고 야단이었다. 겁이 난 우리는 얼른 방으로 숨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가기가 겁이 났다. 다행히 자리를 털고 아버지가 일어나셨다. 아버지는 여전히 소죽을 끓여주고 녀석들을 보살피셨다. 소들은 점점 이상해졌다.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환자처럼 흥분하는 일이 잦았다. 자꾸 뿔로 사람을 받으려 하고 망나니같이 날뛰었다. 기르는 짐승에게 사람이 쩔쩔매는 형국이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도 볼일 보러 면소재지에 나가시고 집에는 우리 세 자매만 남았다. 아버지가 묶어둔 고삐 줄이 풀린 것이다. 난 겁이 났지만 조심스레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줄을 기둥에 묶으려고 했다. 묶지 않으면 소들이 탈출해 도망갈까 염려해서였다. 이미 아버지가 뿔에 받혀 다친 것을 봤기에 많이 두려웠지만 용기를 낸 것이다. 언니는 겁부터 먹고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으나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줄을 잡고 조심스레 묶으려는 순간 황소가 그것을 눈치 채고는 뿔로 나를 받으려고 했다. 난 그대로 울타리를 타넘으려고 했지만 높은 울타리를 바로 넘을 수 없었다. 놀란 언니가 내 팔을 잡아당겨 거꾸로 뒤집어지면서 가까스로 울타리 밖으로 탈출했다.

만약 뿔에 받혔다면 큰 부상을 입었을지 몰랐다.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흥분한 황소 한 마리가 드디어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은 것이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큰일이었다. 놀란 우리는 다급한 마음에 앞집 친구오빠를 불렀다. 그 오빠는 청년이라 힘도 셀 때였다. 하지만 황소의 굳센 힘을 당하지 못했다. 고삐 줄을 잡으려는 오빠가 오히려 황소에게 질질 끌려갔다. 온 마을은 뛰쳐나온 황소 때문에 혼비백산했다. 아이들이나 아낙들은 무서워 집으로 숨고, 마을 청년 몇몇이 힘을 합세해 겨우 소를 잡을 수 있었다. 소는 무엇이 분한지 발로 땅을 탁탁 차기도 하고 발버둥을 쳤다. 소고삐를 단단히 움켜잡았기에 나중에는 잠잠해졌지만 그 소동으로 모두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결국 소들은 소장수에게 넘겨졌다. 소들이 난폭해져 아버지나 우리 가족만 위험한 게 아니라 놀란 마을 사람들이 당장 팔아치우라고 성화였다. 황소들은 트럭에 태워졌는데 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동네 사람들은 그 소가 미쳤다고 했다. 나는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엄마에게 여쭤보니 그 소들을 잡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흥분하면 날뛰는 소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얌전히만 있었으면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었는데 소를 떠나보내고는 많이 아쉬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정성들여 키워온 것을 알기에 더 안타까웠다.

이제 애써 만든 울타리는 무용지물이 되어 다시 뜯어내야했다. 소똥이 앉을까봐 풀을 베어서 깔아준 자리는 주인이 없어지니 휑뎅그렁 했다. 마치 해일이 일어나 모든 것을 다 휩쓸어 가버린 듯 집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키우던 소를 재산목록 1호로 여기며 언제나 정성을 다했는데,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지만 무척이나 씁쓸해보였다. 그 후, 아버지는 다시는 황소를 들이지 않으셨다. 비어있던 외양간도 머지않아 암송아지 한 마리가 채웠고, 일 년이 지나자 어른소가 되었다. 1년에 한 마리씩 송아지를 낳아주고 우리 집의 논과 밭을 갈아주었다. 우린 소 덕분에 공납금과 육성회비를 냈다.

힘겹게 송아지를 낳은 어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송아지의 양수를 혀로 다 핥아주었다. 그렇게 닦아줘야 털이 빨리 말라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새끼를 낳느라고 용을 있는 대로 쓰고도 자기가 낳은 태반을 다 먹어치운다. 나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힘겨워보였다. 소는 초식동물이기에 육식을 하지 않지만 그것을 먹는 것은 일종의 사명 같았다. 태반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켰다. 그걸 보는 모습은 눈물겨웠다. 거룩한 하나의 의식을 보는 느낌이랄까. 다 삼키고 난 소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흘렀다. 힘겨움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어미로서의 소임을 다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때만큼 소가 위대해 보인 적이 없다. 어쩌면 모성애는 사람과 동물의 경계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더 지극해보였다.

그렇게 애지중지 핥아주며 키운 송아지는 젖을 떼면 소장수에게 판다. 암송아지 같은 경우는 계속 키워 또 새끼를 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긴하게 돈이 필요하기에 팔 수 밖에 없다. 그 송아지 한 마리가 농가에는 가장 큰 목돈이 되었다. 소에게서 새끼를 떼어놓는 죄를 짓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끌려가지 않으려는 송아지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엄마소의 신경전은 송아지 싫은 트럭이 떠남으로서 종결된다. 하지만 새끼 잃은 어미 소의 슬픔은 오래도록 계속된다. 밤새 송아지를 찾느라고 울부짖고 며칠 동안 여물을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어미 소가 울 때마다 팔려간 송아지가 걱정되었다. 소의 울음소리는 온데 산을 휘감고 돌았다. 나는 소에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절대 소로 태어나지 마내 말에 어미 소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커다란 눈만 끔벅거릴 뿐이었다.

십 년이 지났다. 어미는 송아지가 팔려갈 때마다 새끼를 찾느라 목이 쉬도록 울었고, 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였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송아지를 데려다 주고 싶었다. 엄마는 에구 딱하지…….” 하면서도 해마다 송아지를 팔 수 밖에 없었다. 어미 소도 늙어 더 이상 새끼 낳기가 힘들어질 때 다시 팔려갔다. 죽도록 논밭 갈아주고 마지막 갈 곳은 뻔하다. 소는 여물 얻어먹는 대신에 인간에게 주고 가는 게 더 많다. 오롯이 다 내어주고 그렇게 떠난다. 사람들은 내 혀만 즐거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땡그렁땡그렁 워낭소리는 멀어지고 소도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비어버린 외양간 한쪽 구석엔 주인 잃은 멍에가 쓸쓸하다.


노정애   17-11-28 19:15
    
서혜린님
이 글도 참 좋습니다.
잘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내 혀만 즐거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이 문장은 빼시는게 좋겠습니다. 글 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리고
'우린 소 덕분에 공납금과 육성회비를 냈다.'
이 문장은
아기소를 보듬고 돌보았는데 떠나보내는 이야기 뒤로 옮기시는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떠나보낸 송아지는 우리들의 공납금과 육성회비가 되었다.
그렇게 하려면 앞 문장도 조금씩 수정해야할 듯 합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도 지금 작가의 시선이니 어린 작가의 시선에 어울리는 단어를 쓰시는게 좋겠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을 그렇게 앓아누우셨다.'
에서 그렇게는 빼시는게 좋겠습니다.

'오롯이 다 내어주고 그렇게 떠난다. 사람들은 내 혀만 즐거우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땡그렁땡그렁 워낭소리는 멀어지고 소도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비어버린 외양간 한쪽 구석엔 주인 잃은 멍에가 쓸쓸하다.'
이 문장에서 '그렇게  떠났다. 비어버린 외양간...쓸쓸하다.'
중간 문장 빼는것은 어떨지요.

공들여 쓰셨는데 괜한 말씀 드린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서혜린   17-11-30 10:28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글은 쓸수록 어렵습니다. 저라는 사람과 또 다른 자아가 함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글을 쓰면서 저의 내면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노정애   17-12-01 21:32
    
서혜린님
몇마디 올린것에 맘 상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또한
멋 모르고 글 쓰는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처음 글은 서혜린님글보다 더 형편없었지요.
가르침 주셨던 교수님은 속옷까지 벗는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 주는게 글이라고 하셨답니다.
글을 쓰는게 쉽지 않음을 그렇게 알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서 그 글들이
제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글도 내가 쓰는것인데 위로가 되더군요.
서혜린님의 말처럼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많아져서겠지요. 
그러니 용기를 가지세요.
지금도 너무나 잘 쓰시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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