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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공탄(수정)    
글쓴이 : 서혜린    17-11-22 22:07    조회 : 7,118

내 바로위에 언니는 대구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장녀이기에 무리를 해서 대구로 유학을 보낸 것이다. 특별히 공부를 잘 해서라기보다는 맏이가 잘 되어야지 동생들을 끌어줄 것이라는 부모님의 기대 때문이었다. 나는 동생들이 많았기에 따로 나가 사는 언니가 무척 부러웠다. 아직 중학생이었기에 어서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 언니처럼 자취를 하고 싶었다. 엄마는 세 살짜리 막둥이를 업고 언니를 보러 절편을 빼고 갓 짠 들기름까지 보따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엄마에게 맏딸은 살림밑천이자 집안의 대들보처럼 귀한 존재였다. 겨울방학이 되어 내게도 언니의 자취방이 있는 대구에 갈 기회가 생겼다. 고향에 내려온 언니를 따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구행 버스를 탔다.

자취방은 사실 고모집의 방 한 칸을 세 얻었다. 언니와 한마을 친구 둘이 사용했지만 그 언니는 시골로 내려가고 없었다. 나무 판자문을 열면 연탄아궁이가 있는 자그마한 부엌이 있고 바로 방이었다. 가구라고는 밥상을 책상으로 만든 게 전부였지만 나는 시골과는 다른 환경에 설레었다. 옹색하기 그지없는 살림이었지만 부엌에서 나무만 때다가 연탄을 보니 뭔가 색달랐다. 연탄은 아침저녁으로 때를 잘 맞춰 갈아줘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 시간이 지나버리면 불씨가 다 꺼져 새 연탄에 불이 붙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갈기에는 연탄이 아까웠기에 불구멍을 잘 조절해야 했다. 나는 도회지생활에 대한 설렘으로 연탄가스냄새조차도 정겨웠다.

양은냄비에 쌀을 씻어 화덕뚜껑을 열고 연탄집게를 걸쳐놓고 냄비를 올렸다. 냄비밥을 해서 먹고 반찬은 시골에서 가져온 고추부각 달랑 한 가지였지만, 그것조차도 달았다. 연탄집게를 들고 연탄을 가는 것도 요령이 필요했다. 자칫 잘못해 연탄을 떨어뜨리는 날에는 아까운 연탄만 낭비였다. 하지만 아무리 조심을 해도 연탄이 제대로 집어지지 않아서 떨어지기도 했고, 또 집게 잡은 손에 너무 힘을 많이 줘 연탄이 부서지기도 여러 번. 못쓰게 된 연탄 한 장의 값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다. 없는 살림에 겨우겨우 보태주는 생활비였다.

여유가 없으니 연탄을 많이 들여놓지 못하고 한 번에 50장씩 받아놓고는 했다. 연탄이 똑 떨어지기라도 하면 골목 앞 슈퍼에서 낱장으로 샀다.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도 없는 시골에 살다가 바라본 대구의 주택가 골목은 밤인데도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바깥쪽으로는 가판대에 밀감이나 사과를 진열하여 판매했다. 그곳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밀감 한 줄 사먹을 엄두도 못 냈지만, 도시에는 없는 게 없었다. 집집마다 연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탄가스냄새를 정겨워하기는 그때가 처음인 것 같다. 생경한 도시에서의 생활은 마치 미지의 신세계에 다다른 듯 신기하기만 했다.

그때 언니의 학교친구 중에 집에 들어가지 않는 언니가 있었다. 완전히 집을 나온 것인지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잠시일탈을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언니가 며칠을 머물다갔다. 가정형편이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거기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그 언니의 방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나 호기심은 있었다. 읽는 책도 고전보다는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좀 부적절한 사랑의 체험수기나 성인들이 읽는 책을 어디서 구해 와서는 읽었다. 나도 궁금증에 그 책을 읽었다. 가뜩이나 호기심 가득한 나는 소용돌이처럼 거기에 빠져들었다.

언니들은 외출이 잦았다. 내가 방안에서 할 일이라고는 책을 읽는 일 밖에는 따로 할 일이 없었다. 둘은 어딜 그렇게 다닐 데가 많은지 나만 내버려두고 바람을 친구삼아 그렇게 배회했다. 그녀들을 속박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둘은 생각을 다른데다 두고 온 사람처럼 떠돌기만 했다. 그녀들은 밖으로만 나가면 신이 나는 것 같았다. 방안에만 있는 것은 알 수 없는 무엇이 그녀들을 옥죄는 것 같았다. 마치 열병에 들뜬 사람마냥 영혼은 어디에 던져두고 껍데기만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떠돌 뿐이었다.

어느 날은 밀감 한 줄을 가져온 적이 있다. 샀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연탄 갈고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가 되었고 나중에는 집에 가고 싶어졌다. 결국 고모부가 눈치를 채서 언니의 친구는 더 이상 자취방에 오지 못했고, 우리 자매는 일주일간의 대구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갔다. 내가 기대한 대구드림은 그걸로 끝이었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언니는 대구에서의 일을 부모님에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난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불붙기 전의 연탄처럼 위태로웠다. 불씨가 남아 있어야하고, 바람구멍을 열어주고, 구공탄의 구멍을 잘 맞춰줘야지 제대로 불이 붙는다. 그러기 전에는 방심하면 안 된다. 불이 붙는가 싶으면 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녀들은 활활 타오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불씨가 미약하든지 바람구멍을 누가 막아놓았는지 불을 피우지 못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어느 한 가지가 부족했는지 모른다. 아무도 그녀들이 왜 방황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그녀들의 품행만 지적했다. 한 번 낙인찍힌 주홍글씨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들을 어두운 곳으로만 자꾸 몰았다. 음지에 서서 동동거렸지만 아무도 양지 바른쪽으로 나오라고 손짓하지 않았다. 늘 어두운 그늘에서 신음해야했다. 원래부터 어둠이 그녀들의 자리인 것처럼 그랬다. 헤르만 헷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처럼 지금도 무거운 바퀴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불씨가 잘 일도록 살펴보지는 않고 불이 안 붙는다고 연탄 탓만 한다.

공전의 주기에 따라 계절은 이제 겨울로 향하고 있다. 사람의 생을 계절에 비유해 겨울을 노년기로 본다면 너무 서글픈 비약이 될지 모른다. 가을이 중년이라면 이제 겨울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돌아본 지난날은 잠깐이었다. 후회라면 좀 더 너그럽게 보듬지 못한 마음이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설렘도 많은 만큼 바람도 많이 불고 갑자기 추워지기도 한다. 봄이 왔다하면 다시 겨울 같고, 봄이 무르익는다 싶으면 바로 여름으로 넘어간다. 마치 사람의 성장처럼 변화가 심하고 위태로운 것이 봄이고 청소년기 같다. 연탄 한 장에 발갛게 불이 활활 타오르는 건 우리 젊음이 불타오른다고 본다면 어불성설일까. 구공탄의 따뜻함이 문득 그리워지는 늦가을이다.

 

 


서혜린   17-11-22 22:10
    
선생님 말씀대로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 약간 수정을 해보았습니다. 글을 쓰려면 혼자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도 생각하며 써야 된다는 데에 반성도 했습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노정애   17-11-28 19:42
    
서혜린님
글 다듬는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글 쓰기가 쉽지 않지요.
오래 시간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수필창작 수업을 듣습니다.
합평을 받고 오래 다듬고 엄청 혼나는 중이지요.
잘 쓰시니
조금만 퇴고에 힘 쓰시면 좋은 글이 나오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몇 말씀만 올립니다.
첫 문단에서 것이다는 보냈다로
기대 때문이었다는 기대가 컸다 로

'나는 동생들이 많았기에 따로 나가 사는 언니가 무척 부러웠다. 아직 중학생이었기에 어서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 언니처럼 자취를 하고 싶었다. '
이 문장에서는
챙겨야할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중학생인 나는 큰 언니가 무척 부러웠다. 빨리 고등학생이 되어 언니처럼 자취를 하고 싶었다.
이렇게 바꾸면 어떨지요.

전체적으로 읽어보시고 이런식으로 문장을 다듬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마직만 문단에 계절이야기는 빼고 구공탄 이야기로 마무리 하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글을 인쇄해서 곁에 두고 틈틈히 읽어보시면서 계속 고쳐 보세요.
나중에 완성된 글과 초고를 비교해보면 훨씬 좋아진것을 알 수 있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서혜린   17-11-30 10:24
    
글마다 꼼꼼히 읽어봐주시고 첨삭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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