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의 후유증으로 기운이 없어 자전거 타러 가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뒹굴 거립니다. 다다음 주면 자전거타고 속초 회 먹으러 가는 날인데 제가 생각해도 무리일 것 같습니다. 속절없이 천장만 쳐다 봅니다.
어제 금요일 저녁 성당 레지오 모임 갔다가 4년, 7년 전 모임에서 탈퇴한 옛 단원들이 두 명이나 복귀하여 같이 술 한잔 했습니다만 저는 맥주를 병아리 눈물만큼만 마셨습니다. 성당 레지오란 성당에서 영세를 받은 사람들이 매 주 한 번씩 모여 기도하는 모임입니다. 성당에선 신자들이 술 먹는 것을 금하지는 않기에 가끔 회합 끝나면 한 잔씩하곤 하는데 보통 11시 경이면 일어 섭니다.
오전 열 시경, 학원가는 막내딸이 오후에 제빵제과 재료 사달라고 합니다. 3시 반 학원 끝나면 성당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후 막내딸은 학원으로 가고, 저는 성당으로 가서 장구 연습을 합니다. 요즘 '삼도사물'을 연습하는데 가락보 외우기가 만만찮습니다. 사물놀이 고수님들은 단순 가락만 치면 재미없다고 온갖 어려운 가락들을 다 모아 놓은 것이 삼도사물 가락입니다. 초보는 ‘영남농악’, 중급은 경기지방의 ‘웃다리’, 상급은 영남, 호남, 경기 지방의 풍물 중 중요한 가락들만 모아서 만들어 놓은 ‘삼도사물’을 배우는 게 이 동네 관행이지요. 꽹과리나 장구 치는 속도도 빨라야 하니 오로지 연습만이 지름길입니다.
세 시간 넘게 연습을 한 후 성당으로 온 막내딸을 만나 대치동에 있는 제과제빵 기구 등을 파는 가게로 갔습니다. 막내딸이 필요한 건 스승의 날 담임선생님께 구워 드릴 제과제빵 재료들과 포장 용지입니다. 과자 밑에 놓을 종이, 무슨 보자기 같은 것도 모두 이름이 프랑스어로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빵이나 과자 이름을 잘 알지도 못하는 저는 그저 물건 사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계산하고 빨리 집에 갈 생각뿐입니다. 막내딸은 주인에게 이거저거 가격 물어보며 고민을 하기에 뭘 사느냐고 물었더니 과자 밑에 까는 종잇값이 너무 비싸다는 겁니다. 신문지에 싸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주인과 가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한바탕 웃어 제쳤고, 막내딸은 홍당무가 되었습니다만 그 바람에 흥정이 쉽게 되었습니다. 주인이 좀 싸게 해 준 모양입니다. 조개처럼 생긴 빵틀도 선물로 하나 얻었구요.
나머지 재료들은 가락시장 마트에 가서 샀습니다. 여기는 대형 할인점 보다 20~40% 쌉니다. 아는 사람들은 대형 할인점 안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큰 사위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집안 청소 중 아파트 천장 배관 파이프 있는 곳에서 쥐똥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사위가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이 ‘쥐’라면서 저보고 쥐똥 좀 치워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저도 세상에서 쥐가 제일 무섭습니다. 하지만 정말 무섭다고 엄살 부리는 큰 사위를 안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만약 큰딸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온갖 소리 다 하면서 자기 집에는 무섭고 더러워 죽어도 안 갈 테니까요. 다 치울 때까지 우리 집에 눌러앉아 있을 것이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큰딸이 가끔 부리는 신경질과 제 엄마와 티각대는 소리는 들어 본 사람만이 그 고충을 압니다. 막내딸은 이런 큰 언니를 '신경질쟁이'라 하여 작은 언니보다 쪼끔 덜 좋아합니다.
막내딸을 집에 데려다 주고 다시 100여 미터 떨어진 사위네로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천장 배관구 안에서 쥐똥 냄새가 심하게 나고 있었습니다. 겨우 머리를 들이밀어 살펴보니 거기는 바로 쥐들의 화장실이었습니다. 기겁하는 사위는 저 멀리서 구경만 하고 할 수 없이 제가 바짝 마른 쥐똥을 하나하나 줍기도 하고 쓸어 내기도 합니다. 천장 배관구 구멍이 너무 작아 머리를 먼저 넣은 다음 팔을 넣어야 합니다. 어두워 플랫시를 켜야 했으며 냄새가 지독하여 수건으로 코를 싸매고 숨을 참아가며 조금씩, 조금씩 치웠습니다. 구석구석 멀리까지 흩어져 있어 치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스티로폼으로 쥐구멍까지 꼼꼼히 막고 나니 무려 두 시간 동안 밥 세 공기 이상 쓸어낸 듯합니다.
땀이 범벅되었습니다만 페스트가 염려되어 얼굴을 닦지도 못합니다. 이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만, 아파도 내가 아픈 게 낫지 하며 마지막 걸레질까지 깔끔하게 마쳤습니다.
사위랑 약속을 합니다. 큰딸한테는 이런 사실 절대 비밀이라고. 사위도 흔쾌히 동의를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때수건으로 온몸을 빡빡 씻은 후 피우는 담배 맛은 찝찝했습니다만 뒤따라 저녁 먹으러 온 사위랑 마시는 쏘맥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손자랑 대공원에 놀러 갔다 온 큰딸은 쫑알쫑알 재잘재잘거리다 저녁 잘 먹고 무사히 집으로 갔습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