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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엿보기    
글쓴이 : 강대식    14-09-06 17:57    조회 : 7,222
엿보기(수정 2)
강대식
카사후의 여름도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로 후끈거렸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여서인지 한여름의 자외선은 사정없이 피부로 파고든다. 그늘이 아니면 어디라도 피부를 꿰뚫고 들어오는 자외선을 피할 수 없다. 별생각 없이 밖으로 나오면 피부가 익을 정도로 따갑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두꺼운 천으로 몸을 감싸고 다니는 이유를 알만하다. 멋을 부리다가는 자외선에 피부가 아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모자를 썼다. 한결 시야가 편하다. 멀리 카사후의 기슭에 자리한 카사스가 아스라하게 보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기도처이기 때문에 외지 사람들을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다. 카사후 가장자리에 텐트를 치고 카사스로 향했다. 카사스에 도착하자 눈앞에 성냥갑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백여 호 정도의 수행처가 나타났다. 겨우 서너 평 정도의 공간인 작은 방문 앞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벌집처럼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위쪽 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운다. 머리를 하얗게 깍은 여스님이다. 하얀 머리가 광채를 내 듯 아름답다. 스무살이나 되었을까 애띤 얼굴의 스님은 나에게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왜 올라오라고 하지. 나는 내심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몸은 벌써 행동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올라갈 곳을 찾기 위하여 두리번거리는데 앞쪽에서 두런거리는 소리와 물을 쏟아 붓는 소리가 들렸다. 몇 발짝을 조심스럽게 더 나아가자 한낮임에도 여스님들이 웃옷을 모두 벗고 목욕을 하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젊은 여러 명의 여스님들이 한 낮에 웃옷을 모두 벗고 목욕을 하는 장면은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가야할지 멈추어야 할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겨우 20대 전후의 젊은 여스님 여러 명이 한낮에 같이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현 듯 30여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우리 마을에 옥희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키도 크고 성격도 활발하여 선머슴아로 불리는 아이였다. 한여름 밤 선풍기나 에어콘이 없던 시절 모기의 윙윙거리는 날개 짓 소리는 온 몸에 소름이 짝 돗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밤이면 친구들과 곧잘 마을 중간에 있는 다리 위로 모였다. 다리가 만들어진 다음부터 다리 위가 우리들의 미팅 장소가 되었고, 간혹 수박이나 참외서리를 모의하는 아지트가 되기도 하였다.
칠 흙 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개울에 널린 자갈보다도 더 촘촘하게 박힌 별들이 재잘거리듯 광채를 쏟아내며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무료한 한밤의 후끈한 열기를 잊기 위해 별자리를 찾고 있는데 경섭이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왔다. 마치 무슨 큰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숨도 제대로 못 쉬며 버버 거리는 목소리로 “저기 옥희가 샘에서 목욕을 해”라고 하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친구들의 눈망울은 밤하늘에 빛나던 북극성보다도 더 크고 초롱거렸고 시선은 일제히 경섭이에게 쏠렸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친구들의 눈동자는 도깨비불 보다 더 환하게 활활 타오르는 듯 했다. 나도 다가가 구체적으로 어디서 목욕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경섭이가 혜선이네 집이라고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빛의 속도로 혜선이네 집으로 뛰어 갔다. 혜선이네 집은 옥희네 옆집으로 옥희가 목욕을 하고 있다는 샘을 가장 잘 홈쳐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혜선네 뒷마당으로 잠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문은 늘 열려있고, 늦은 밤이라 어른들은 모두 잠들었을 시간이라 동작이 빠른 몇 명은 시멘트 담장을 잡고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도 담장 밑에서 막 고개를 들어 옥희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전등불빛에 역광으로 보이는 옥희의 뒤태가 눈부시게 들어왔다. 옥희의 나신을 훔쳐보는데 입안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고, 숨을 쉴 수 없었다. 한밤중 들리는 것이라고는 간간히 샘물을 퍼 올려 몸에 끼 얻는 물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뿐이었다. 그 시절 여자의 누드는 사진으로도 보기 어려운 것이었고, 실물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옥희의 나신은 젊은 나에게 충격적일 만큼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여자의 신체 그것도 성숙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몸쳐 본 것은 어쩌면 인구에 회자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우직끈”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주변의 삼라만상을 모두 깨우려고 소리치는 벼락소리 같았다. 늦게 쫓아온 병국이가 담장 아래 말려서 묶어 놓은 미루나무 가지를 밟아버린 것이다. 일찍 도착한 친구들은 미루나무 묶음을 보고 주의 깊게 다가왔지만 늦게 도착한 병국이는 아무 생각없이 담장으로 달려들었다가 일을 낸 것이다. ‘우지끈’하는 소리가 밤하늘로 울려 퍼지자 아무런 의심없이 목욕을 하던 옥희가 “누구야”하며 소리를 질렀고, 친구들과 나는 큰 죄를 저지른 죄인처럼 전광석화와 같은 동작으로 도망을 쳤었다. 얼마나 빨리 도망을 쳤던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우리는 동네 어귀에 있었고, 발에 신고 있어야 할 고무신 한 짝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었다. 잠시 35년 전의 세상으로 돌아가 옛일을 회상하니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깔깔거리고 웃는 여스님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스님들의 웃음소리는 청아하고 호탕했다. 앞으로 나가자니 여스님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얼굴을 대하고 보아야 할 것 같아 민방하고, 뒤로 돌아가자니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멀었다. 무작정 나가면서 이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오히려 속세에 찌든 사람이라고 몰매를 맞을지도 몰라. 그래도 잘만 찍으면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욕심도 생겨났다. 한국에서 발표하면 초상권 시비도 붙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욕심은 번뇌를 불러왔고 어쩔 수 없이 속세에 찌든 인간이 되었다. 이러면 안되지 하는 생각에서 사진촬영은 자재하고 앞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여스님들을 골탕도 먹여 볼까 하는 심술보도 발작을 하였으나 걸음을 옮기면서 그러한 생각은 모두 버렸다. 애써 고개를 숙이고 걸으면서도 내 눈은 이미 여스님들의 하얀 속살을 스캔하고 있었다. 두꺼운 옷 속에 묻어 두었던 스님들의 속살은 뽀얀 우유 빛처럼 투명했고, 아름다웠다. 햇살은 지극히 간결하게 사선으로 들어왔지만 하얀 피부에 부딪힐 때면 사정없이 튕겨져 나가 듯 흩어졌다. 샘에서 퍼 올려 진 물들은 머리에서부터 부드럽게 스님들의 피부선을 따라 흘러내렸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도 아름다운 여인의 나신은 분명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이성의 몸을 훔쳐보는 것인가. 이러한 충동은 어쩌면 본능인지도 모른다. 전혀 알지 못하는 이성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엿보고 싶다는 충동은 속물근성을 가진 인간이면 한번쯤 상상을 해보거나 그 작은 시도를 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속물근성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여스님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당당하게 다가갔다. 나보다 오히려 스님들이 더 웃으면서 소리를 지른다. 나이들은 사람이지만 외지인들을 볼 기회가 적은 스님들은 오히려 머뭇거렸던 나를 보고 더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스님들의 속마음이야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렇게 웃으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앞을 지나가는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나는 스님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 지나갔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도 전혀 동요됨이 없이 등목을 하며 시원한 물을 쏟아 놓는 스님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카사후의 잔잔한 물결위로 퍼져나갔다.
내가 위로 올라가자 젊은 여자스님이 맑게 웃으며 16번이라는 표찰이 걸린 자신의 숙소로 안내를 하였다. 스님의 이름은 른쉬였다. 내가 목욕하는 여스님들의 나신을 쳐다보며 오는 모습을 른쉬스님도 위에서 모두 지켜보았다. 어쩌면 처음 내가 허둥대던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른쉬스님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발라져 있지 않았고 방금 목욕을 끝낸 사람처럼 홍조 띤 얼굴에 물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더군다나 티셔츠 한 장을 걸친 몸 위로 커다란 젖가슴의 굴곡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른쉬스님도 저 여스님들과 같이 목욕을 한 것일까. 아니면 혼자 실내에서 하였을까. 른쉬스님의 표정을 살피며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금방 보았던 다른 여스님들의 나신과 내 눈앞에 앉아있는 른쉬스님의 알몸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속물근성이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튀어 나와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른쉬스님은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으며 칭커 가루와 버터를 가지고 왔다. 가까이 다가와 칭커 가루를 개어 건네주는 른쉬스님의 몸에서 싱그러운 여자의 살 내음이 묻어난다.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초원의 풀 내음 같다. 어쩌면 아기의 살내음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후 내가 돌아가려고 일어나자 른쉬스님은 내 손을 꼭 잡고 오늘 밤 카사후를 건너서 놀러 오라고 한다. 른쉬스님의 따스한 체온이 나에게 거역하지 못하도록 무언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한밤중에 여스님이 나를 놀러오라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왔다. 왜 놀러오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밤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날 밤 밤새도록 폭우가 쏟아졌다. 쏟아져 내리는 비 때문에 나는 카사후를 건너지 못하고 텐트안에서 카사스의 등불이 모두 꺼질 때까지 카사스를 지켜보아야 했다. 밤새 산란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잉어들의 거친 애정행각을 들으며.....

김순례   14-10-10 18:59
    
후끈 달아올라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작가의 솔직한 심정을 재미있게 그려 놓아 흥미를 유발했네요.
일단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카사후가 어디 인지, 그곳에는 무슨 일 때문에 갔는지...
물론 살짝 글 속에 사진을 찍는 분 같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는 해 주는 것이
궁금증을 유발하지 않고 글속에 계속 몰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필력이 단단하시니 조금만 손 보면 잘 쓰시리라 믿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강대식   15-01-16 11:07
    
감사합니다.
카사후는 중국 차마고도 루트에 위치한 작은 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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