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수정)
잠결 속에 데크를 걸어 다니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조용하고 나직한 것이 서생원이 아닌가 생각되어 커튼을 여니 차루가 창문을 쳐다보고 있다. 밥줄 시간이 지났는데 주인이 보이지 않자 아침이 되었다고 치근대는 중이다. 해는 동쪽 산자락 위로 빨간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앙상한 나무의 잔가지가 둥근 해에 까치 머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매끈한 민둥산 머리보다 한결 더 잘 어울린다.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 첫 태양은 그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덜 깬 잠을 털어내며 식탁으로 갔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주방에서 분주하다. 구수한 사골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출근하는 아침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오히려 쉬는 날에 식탁에 앉을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신기하다. 오늘 아침은 떡국이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 사람들이 떡국을 먹는다. 떡국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되었다는 설렘도 있다.
지금이야 설날과는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떡국을 먹을 수 있지만 내 유년 시절에는 설날이 아니면 좀처럼 먹기 힘든 음식 중의 하나였다. 설날이 다가오면 벼를 찧는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만들어 주는 날짜를 정해 준다. 날짜가 정해지면 저녁 무렵 어머니는 가마솥에 시루를 올려놓고 고두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먹고 살아갈 양식이 귀했던 탓에 가래떡을 만들 쌀을 넉넉하게 준비하기도 어려웠다. 고두밥이 만들어 지면 아버지는 시루를 손수레에 올려놓고 솜이불을 가져와 덮어 고두밥이 식지 않도록 보온을 한 후 이웃 마을 방앗간으로 가져갔다. 눈이 내리는 저녁 발목까지 눈이 쌓여 방앗간 까지 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눈보라 속을 아버지가 끄는 손수레를 밀며 달려가면서도 힘이 들지 않았던 이유는 맛있는 가래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방앗간 앞에는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지게와 손수레에 고두밥을 가져와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어둠이 내린 하얀 눈길 위에 줄지어 선 사람들의 모습은 피난민들의 행렬처럼 길고 요란했다. 지금처럼 모두 기계로 떡가래를 뽑는 것이 아니고 고두밥을 기계에 넣고 사람이 긴 몽둥이로 꾹꾹 눌러 주면서 가래떡을 뽑았기 때문에 여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 속에 우리 고두밥이 기계로 옮겨지고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두 갈래 구멍을 통하여 내려오는 하얀 가래떡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일정한 크기로 떡을 자르는 손이 분주해진다.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며 바라보는 나에게 떡을 자르던 아주머니는 떡 한 가닥을 잘라 내민다. 얼른 받아 들고 한 입 베어 물자 그 말랑한 감촉이 어찌나 오묘했던지 그 맛을 지금도 있을 수 없다. 가래떡을 집으로 가져오면 떡이 딱딱해지도록 굳히고 작은 손작두를 가져와 비스듬하게 떡을 모양내어 썬다. 떡을 썰면서 생으로 먹기도 하고 화롯불에 구어 먹기도 하지만 달구어진 인두 위에 힘을 주어 가래떡을 눌렀다가 떼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음 날 어머니는 떡국을 맛있게 꿇려 주셨다. 사골국물에 끓이지 않고 고기를 넣지 않았어도 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떡국은 배고팠던 시절 최고의 설음식이 되었다. 한 그릇의 떡국 속에는 삶을 힘겹게 살아가던 시절의 배고픔과 설음과 안쓰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더 먹고 싶어도 한정된 양을 넘겨 혼자서만 더 먹자고 할 수 없을 만큼 가족들의 입이 많았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가 그만큼 부모님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힘든 겨울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기 때문에 설 명절에 먹던 떡국 한 그릇의 포만감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내가 얇게 썰어 둔 떡을 사골국물에 넣는다. 나무토막처럼 기세 좋게 딱딱했던 떡이 축 늘어져 버린다. 부드럽게 익은 떡국을 도자기 그릇에 담아내고 개나리꽃처럼 노란 달걀 고명을 얹으니 멋진 식당에서 판매하는 떡국보다 더 품위가 있다. 음식 솜씨가 늘 별로라고 생각했던 아내가 차려 놓은 떡국을 보니 새삼 제법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맛이야 어떻든지 일단 눈으로 보는 시각적 맛은 합격이다.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눈으로 보기에 맛있어 보이고, 좋은 냄새가 나며, 먹을 때 들리는 상큼한 소리와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느낌과 향긋한 맛이 느껴져야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한 것이다. 수저를 들어 떡국 속에 넣어 본다. 손끝에 닿는 느낌이 일반 국을 푸는 것과는 달리 걸쭉하게 느껴진다. 느낌도 좋다. 한 수저 퍼서 입으로 가져가자 쌀밥을 지었을 때 나는 구수함과 진한 사골의 향긋함이 코를 통하여 뇌를 자극한다. 뇌는 즉각 먹을 만하다고 반응한다. 빨리 먹고 싶어진다. 분명 맛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자 얼굴 가득 기대감에 부푼 미소가 번져왔다. 떡국을 입 안에 넣어 보았다. 구수한 국물이 혀끝을 감싸더니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목구멍에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국물과 섞여 있던 떡들은 입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천천히 떡을 씹기 시작했다. 몇 개의 떡들이 씹을수록 다시 뭉쳐지는 기분이다. 열심히 썰어서 분리해 놓은 것들이 다시 합쳐지는 이유는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합쳐지려는 것인지 모른다. 씹으면 씹을수록 합쳐진 떡들이 작아지고 결국 쫀득한 느낌으로 입안을 맴돌다가 식도를 타고 사라진다. 시원한 맛과 개운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오늘 떡국은 합격. 그렇게 아내는 나와 결혼한 후 25년 만에 떡국으로 음식에 대한 합격점을 받았다. 어머니가 끓여 주셨던 떡국의 개운한 맛에는 못 미쳤지만.
오랜만에 떡국 한 그릇을 게 눈 감듯이 다 비우자 아내는 흐뭇해하며 “더 줄까”라고 묻는다. 아내의 입가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장미 꽃송이가 피어나듯 불그스름하게 피어나고 있다. 밥상머리에서 늘 젓가락으로 끄적대며 시원스럽게 밥그릇 한번 비우지 않던 내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우자 아내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아내의 그런 행복한 표정을 오랜만에 본다. 25년 결혼생활을 하면서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정작 행복이라는 단어가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돌아보았다면 무수히 그냥 지나쳤을 더 많은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마주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니 아내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질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안정과 배려 아니겠는가.
나는 빈 그릇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주 공손하게 응석을 부리는 아이의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아내는 큰 사발에 떡국을 퍼 담는다. 이번에는 사랑과 정을 더 듬뿍 넣어 담는 것처럼 보인다. 대접을 받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느끼지 못했던 떡국 한 그릇이 삶을 뒤 돌아보게 하고 가족의 행복을 확인하는 촉매가 되었다. 형광등불빛 아래 떡국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따스한 기운이 새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