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를 보내며(수정)
강대식
새벽 3시쯤 되었을까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순이가 이상하다며 나가 보라고 한다. 잠을 깨우는 아내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곤한 잠을 깨워 약간 짜증이 났다. 마지못해 일어나 아내의 얼굴을 보았는데 무엇인가에 잔득 놀란 표정이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자 비가 내려서인지 새벽 공기가 차갑게 몸속의 열기를 비집고 스며든다. 시원해야 할 공기가 아내의 떨리는 음성처럼 불길하다.
순이 집으로 들어갔는데도 왠일인지 순이는 아무 반응이 없다. 내가 온 기척이라도 느꼈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었을 텐데. 왜 반응이 없을까. 의아해 하며 가까이 다가가 순이의 몸을 어루만져 보았다. 따뜻해야할 온기가 없고 비에 젖은 차가운 느낌이 손끝에 전해진다. 깜짝 놀란 나는 망치로 머리를 강타당한 것처럼 심한 충격을 받았고,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다리가 풀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멍하니 순이를 끌어안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누가 보았다면 실성한 사람이라고 오해했을지 모른다. 아침에 출근할 때도 순이는 평소와 같이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를 배웅했었다. 단지 요즈음 순이 입가에 생긴 상처가 자꾸 곪으며 식성이 줄어든 것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벌거벗은 느낌으로 ‘순이의 죽음’이라는 단어와 마주친 것이다. 그 황당함이란....
살아오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느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동창생이 죽었을 때 막연한 죽음의 의미를 보았고, 스무 살이 되어 옆방에 살던 누나의 사체를 보고 죽음이 공포스럽다는 체험을 했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영면(永眠)에 드셨고 효도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이 못내 서러워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아버지의 죽음은 가슴이 메어터지는 아득한 슬픔이었다. 어떤 죽음이든 영원한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에 순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처음 순이를 만난 것이 7년 전이니 꽤 시간이 흘렀다. 후배 김교수가 집들이 선물이라며 내민 라면박스 속에 하얀 털을 가진 어린 진돗개 한마리가 긴장된 표정으로 잔득 겁을 먹고 웅크리고 있었다. 첫인상은 무척 귀엽고 똘똘해 보였다. 김 교수가 돌아간 후 퇴근 무렵까지 순이의 존재는 까맣게 잊혀졌다. 하루 종일 박스 안에 있었으면 답답해서라도 낑낑대는 소리를 냈을 텐데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도 먹이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불러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려 순이가 왜 이럴까 고민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 첫 만남은 그렇게 서먹서먹한 관계로 시작되었고, 고집불통 순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 것도 일주일이 넘어서이다. 순이는 옛 주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듯 했으며, 어린 강아지였지만 고집과 집념은 참으로 놀라웠다. 순이가 성장하고, 나와 관계가 회복되자 매일 아침 출근길을 에스코트하는 것을 즐겨하였다. 집에서 동네 어귀 큰길까지 앞장서서 간 후 나를 보내고 되돌아갔는데 아마도 나를 출근시키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순이는 여러면에서 예담촌(藝潭村)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스타였는데 죽었다는 소식이 이웃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모두가 가슴 아파할 것이다. 아직도 제 명을 다하려면 7~8년은 더 살아주어야 할 순이가 갑작스럽게 죽은 이유는 심장사상충 때문이 아닌가 의심이 들 뿐이다.
순이를 눕혀두고 창고로 향하는 얼굴에 차가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진다. 얼굴에 흩어지는 물방울의 느낌이 한겨울에 맞는 눈송이보다 더 차갑게 피부 속으로 스며든다. 어두운 창고 안을 여기저기 더듬어 본다. 창고가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 삽은 쉽게 손에 닿지 않았다. 삽을 빨리 찾지 못하는 이유도 순이를 쉽게 떠나보내기 싫은 마음 때문인지 모른다. 한참을 더듬고 나서야 삽자루가 손에 잡혔다. 삽자루의 차가운 금속의 촉감이 싸늘한 순이의 몸처럼 시리다.
삽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용호는 아직도 별로 반응이 없이 앉아있다. 아마도 매일 얼굴을 부비며 놀던 순이가 죽었다는 것을 용호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용호는 내가 다가가면 얼굴을 들이밀고 아양을 떨며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오늘은 유난히 얌전하다. 용호는 순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지켜보았을 것인데 순이의 죽음을 지키게 한 것이 못내 미안했다. 그래서일까 아무 소리조차 내지 않고 있는 용호의 표정이 더 측은하게 보였다. 용호는 순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슬픔을 느낄지 모른다.
순이를 안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무거운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무거워 진다고 하는데 모든 생명체가 죽으면 무게가 더 나가는가 보다. 희미하게 달그림자가 보인다. 어두운 산속이지만 눈이 적응되자 사물의 형체를 분간할 수는 있었다. 발바닥에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땅속으로 스며들 듯 가냘프다. 비를 맞아서 일까 낙엽들도 제대로 자신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다. 큰 나무 밑의 낙엽을 걷어내고 순이가 충분히 들어가 쉴만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땅을 열심히 파냈지만 쉽게 구덩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파 내려가자 여기저기서 삐져나온 나무뿌리가 거미줄을 친 것처럼 흙들을 끌어안고 내주려하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구덩이를 파고 있을 때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아내가 작은 손전등을 들고 울먹이며 다가온다. 아내도 쉽게 순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연신 훌쩍거리고 서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측은하게 느껴진다.
나는 내 무릎보다 더 깊이 순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넓게 땅을 파냈다. 아내는 계속하여 “더 크고 더 넓게 파라. 그래야 순이가 네다리 쭉 뻗고 편하게 쉴 수 있다”며 울면서 채근한다. 아내의 성화를 들으며 땅을 깊게 파야하는 나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충분히 넓은 공간을 확보한 후 수건으로 순이를 잘 감싸 눕힌 후 흙을 덮고, 땅을 잘 밟아 빗물이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후 낙엽을 끌어다 덮어 주었다.
순이를 묻고 나자 가슴 한켠이 휭하게 뚫린 기분이다. 이런 공허감은 처음이다. 소중한 반려자를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자책감과 오랫동안 가족처럼 살았으면 했던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기 때문이다. 군에 간 아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 딸에게 어떻게 순이의 죽음을 전해주어야 할지도 막막하다. 아이들도 무척이나 귀여워 해 주었었는데.... 인연이 되면 다시 환생하여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을 반달이 시리도록 하얀 서광을 쏟아 내며 발길을 비추고 순아 미안해 !, 순아 미안해 !를 외치는 아내의 자책 섞인 흐느낌이 귓전으로 파고든다. 내 눈에서도 자꾸만 뜨거운 눈물이 소리 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