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7세, 여자 84세로 100세 넘게 사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환갑잔치를 한다는 것은 이제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경로당에 가도 60살이면 어린애 취급에 잔심부름이나 해야 한다. 그만큼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장수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60세에 정년을 한 노년 새내기들은 갈 곳이 없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얼마간은 동료나 선후배를 만나고, 여행이나 그동안 못해 보았던 일들로 바쁘게 소일하지만 1~2년이 지나면 그마저도 할 일이 떨어진다. 찾아주는 사람도 드물어지고 놀자는 사람도 없다. 스스로 자신과 놀아줄 사람과 장소를 물색해야 하고 먼저 찾아가 놀아달라고 사정해야 한다. 밥도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때로는 적당하게 막걸리 한 사발 정도는 대접할 줄 알아야 친구가 되고 모임에 넣어준다. 친구를 사귀고 모임에 입회하려면 기본적인 용돈이 있어야 하는데 연금을 넉넉하게 받는 사람이면 문제가 없겠지만, 연금 없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딴 세상 이야기가 된다. 돈이 문제다. 퇴직 후 놀면서 자식들에게 용돈을 얻어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자식들이 스스로 용돈을 준다면 모르지만, 형편이 안 되는 가정은 자식들 눈치 살피기에 여염이 없다. 젊은 시절 힘들게 벌어 자식들 공부시키고 모아 놓은 돈 전부 끌어내어 시집 장가보내 놓고 보니 남은 것은 겨우 텅 빈 주택 한 채가 전부인 사람들이 허다하다. 비바람 막아줄 집한 채 가지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 만나 마음 놓고 점심 한 끼 대접하거나 여가활동을 할 용돈이 수중에 없는 것이다. 수중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면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매일 얻어먹기만 하는 사람을 반겨줄 마음 넓은 친구도 없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더욱더 경계심을 높인다. 그래서 노년에도 직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노인들이 취업할 곳이 많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현실이다. 직업을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하는 노인들의 인구가 많다 보니 젊은 세대가 책임져야 할 부담이 너무나 크다. 연금이나 사회보장 혜택으로 인하여 노인들에게 조금은 부담을 덜어 주기도 하지만 경제적 약자인 노인들이 폐지나 빈 병을 주워 겨우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나는 13년을 다니던 직장을 나와 새로운 취업 자리를 구해야 했다. 처음 직장을 나왔을 무렵에는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한두 달 편하게 쉬면서 직장을 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시간에 쫓겨 서둘러야 할 필요도 없고, 누구 하나 집에서 빈둥댄다고 말하지 않아 너무나 좋았다. 직장이 없던 백수는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일어나 커피 한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와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배고프면 국수를 끓여 정원에서 가져와 코끝으로 스며드는 능소화 꽃 내음을 섞어 말아 먹었고, 졸음이 쏟아지면 의자에 길게 몸을 뉘이고 살랑대는 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흘러가는 구름, 날아드는 벌과 나비는 모두가 친구가 되어 정원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2~3개월이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취업 자리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8월이 되자 점점 마음이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뜨거운 햇살보다 가슴속은 두려움으로 더 뜨겁게 익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두려웠다. 그동안 가졌던 자만심은 제초제가 뿌려진 풀처럼 시들어 버렸다. 직업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게 다가올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늘 세상을 만만하게 여겼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빠져있었다. 지나친 자만감이 보기 좋게 낙마하는 순간이다.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는 경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사회로 나서는 젊은이들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처럼 어렵다는 말같이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딸 은정이도 이제 대학 졸업을 한 학기만 남겨두고 있다. 어젯밤에도 컴퓨터를 밤새워 만지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마음이 천근만근 복잡할 것이다.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그렇게 16년을 공부하고도 취업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현실이다 보니 어학은 필수요 몇 가지의 스팩(Specification)을 만들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진다는 생각에 밤낮이 바뀌어 버린 딸이 안쓰럽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취업을 걱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들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직을 직장으로 택한다는 것 자체가 취업할 곳이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길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교정직 7급 특채 추천도 마다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좀 더 공부하고 대학 교단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취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하는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취업을 앞둔 아들과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걱정이 태산이다. 토플과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깝고 몇 개의 자격증을 거머쥐어도 취업의 문은 너무나 좁고 암울하다. 그러니 취업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만 날 뿐이다. 밤낮없이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해도 모든 학생이 다 그렇게 공부를 하니 눈에 띄게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는다. 공부를 안 한다고 야단치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너무 시리다. 세상이 변해버린 것을 누구 탓을 하겠는가. 결국, 인생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자기 자신의 능력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격투장에 외롭게 서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는 죄책감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직장을 잃은 후 매일 중앙공원 옆 사진작가협회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사무실에서 보면 공원에는 수십 명의 노인이 모여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윷놀이를 하면서 소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윷가락을 던질 때마다 시멘트 위로 윷가락 구르는 소리가 공원을 메아리친다. 여기저기서 윷을 던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한숨과 환호성이 생기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윷가락 구르는 소리에는 힘이 없고 영혼이 없다. 또르르 하고 구르는 몸짓에는 텅 빈 공허한 마음속의 고독이 너무나 서글픈 가락이 되어 담겨 있다. 생동감은 사라졌고,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만이 난무한다. 놀이에서 진다는 것은 용돈을 써야 한다는 의미이고, 내일 다시 게임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조그마한 문제에도 욕설을 먼저 쏟아낸다. 가만히 놀이에 열중인 노인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즐겁다는 표정보다 애국조회의 의식을 치르는 듯한 의연함이 솟구친다. 그러한 의연함이 오히려 처량하다.
잠시 나는 내 노년의 일상을 그려본다. 이십 년 후 내 모습이 이 공원에서 윷가락을 던지고 있지나 않을지.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떨려온다. 지금 노력하여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하면 내 노년이 이 공원에서 소일거리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을 지을 수도 없다. 세상에 태어나 무엇인가 큰 발자취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아닐지라도 노후에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는 말자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었다.
새 직장을 얻어 취업하고 다시 중앙공원에 가보았다. 한결 내 발걸음은 가뿐해졌으나 노인들이 던지는 윷가락은 공원 마당의 압각수처럼 느리게 시곗바늘을 당기고 있다. 고성 속에 터져 나오는 한숨과 욕설이 무딘 내 사념의 터널을 뭉개 버린다. 내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지고 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겠다는 마음이 휑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