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처음 만난건 대학교 3학년 때 자취방 옆 가게에서다. 같이 사는 후배가 아는 여자 선배를 마중 나간다는 말에 약간의 시간을 두고 후배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나도 밖으로 나왔다. 먼 발치로 후배와 후배의 선배가 오는 것을 보고는 나는 가게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을 끌다가 다섯개들이 라면 한 묶음을 사고는 우연히 만난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으로 마주치도록 연출했다. “어! 인우야! 밥 먹었니? 안 먹었으면 같이 라면 먹을래?”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며 나는 옆에 있는 여자 선배의 환심을 끌었다. “어! 근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둘 중의 아무한테서 대답을 듣기를 바랐다. “아는 누나야, 우리 학교 캠퍼스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통성명을 하기 위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고대 사회 체육학과 99학번 김성운입니다. 인우랑은 같은 학번이지만 나이는 좀 차이 나지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는 항상 내 소개를 할 때면 나이 얘기를 꺼낸다. “ 아 네......” 그녀의 답은 이게 전부였다. “뭐야, 세게 나오는데”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속으로 “얼굴도 별로 예쁘지도 않으면서 튕기기는” 하면서 라면을 가지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그 후로 나는 인우에게 그 여자 선배 핸드폰 번호 좀 가르쳐 달라고 해서 알아낸 후 문자로만 2주정도 주고받다가 마침내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문자 내용은 별거 아니었겠지만 진실하고 재미있는 문자가 그녀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그랬나 보다. 첫 만남의 장소는 건대입구 앞 책방이었다. 그러나 첫 만남을 갖고서 그녀는 내 스타일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연신 싱글벙글 입가에 웃음을 가득 띄웠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이 있고 난 뒤 극적으로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나는 눈치없이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여 들고 있던 동전을 그녀에게 건네주고 말았다. 그런데 그 행동이 우스꽝스러웠던지 그녀는 크게 웃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1년 365일 한번도 걸리지 않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만남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듯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하나가 되었다. 어색한 만남이 싹이 트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처음엔 내게 관심이 없었고 인우가 알고 있는 선배(나보다 나이가 어리다)인 성현이와 성준이 중에 한 사람을 소개 시켜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때 왜 내 손을 잡아줬어?” 아내는 대답한다. “모르겠어. 그냥 그땐 나도 많이 외로웠고 누가 옆에 있어줬으면 했는데 오빠가 있었고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무난했던 것 같아” “만남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
“아, 그랬구나!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았구나!” 타이밍이라는 단어가 축구나 야구에만 쓰는 단어가 아닌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가끔 아내는 못쓸 타이밍으로 인해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를 만난 타이밍이 맞지 않아 다른 사람과 결혼 했다면 더 많은 후회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문화 심리학 교수인 김정운은 그의 책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에서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가끔 후회 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 셋을 낳은 것은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