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건 자취방 옆 가게였다.
룸메이트인 인우가 여자 선배를 마중 나간다는 말을 듣고는, 시간 간격을 두고 나도 밖으로 나왔다. 먼발치로 인우와 선배가 오는 것을 보고서 가게로 들어갔다. 다섯 개들이 라면 한 묶음을 사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잠깐 통성명을 한 후 지나갔다. 첫인상이 참 좋았다.
그날 저녁에 인우(룸메이트)에게 그 선배 핸드폰 번호를 알아낸 후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시작한 문자 메시지는 2주 동안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공식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첫 만남의 장소는 건대입구 앞 책방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일 년 내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서 만남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한 해를 더 보내고, 성경에서 말하듯이 부모를 떠나 둘이 하나가 되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처음엔 내게 관심이 없었고 인우가 알고 있는 선배 중에 한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다고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때 왜 내 손을 잡아줬어?”
“모르겠어. 그땐 나도 외로웠고 누가 옆에 있어 줬으면 했는데, 오빠가 있었고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무난했던 것 같아, 만남에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
씨줄과 날줄이 만나 하나의 옷감을 만들듯이 모든 만남에는 타이밍이 존재한다.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대사가 인상 깊게 남은 영화가 있다. 일사후퇴 때부터 80년대까지의 격변의 시대를 보여준 영화이다. 주인공인 덕수(황정민)는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독일 광부가 되고, 생사를 넘나드는 월남 건설 현장에서 다리를 놓고 건물도 짓는 일을 하게 된다. 인생의 타이밍 앞에서 덕수는 그 기회를 붙잡았다. 그리고 덕수의 삶으로 끌어들였다. 가장 결정정인 타이밍은 머나먼 땅에서 그의 반쪽을 만난 것이다.
성경에서도 타이밍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그중 한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리장 삭개오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정부에 협력하며 자기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당하게 많은 세금을 징수하여 착복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미움과 멸시를 받았다. 그런 삭개오가 자신의 동네로 예수라는 사람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타이밍을 붙잡는다.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갈망이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무리 틈에서는 예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뽕나무였다. 뽕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울창한 나뭇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게 삭개오는 예수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고 예수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삭개오는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지금껏 추구해 왔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그가 한 행동이 참으로 믿기지 않는다.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으며, 자기가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약속했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타이밍과 타이밍이 어긋났어야 했던 경우도 있다. 악연과 불운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이번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라는 시간 여행자의 삶을 다룬 영화를 들여다보겠다.
현재의 나는 30년 전의 자신을 찾아간다. 10번의 기회를 통해 평생 후회하고 있던 과거의 한 사건을 바꾸고자 사력을 다한 끝에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된다.
한 번의 잘못된 타이밍을 비켜나가게 하기 위한 주인공의 헌신적 모습이 너무 인상 깊게 남았던 영화였다. 그 타이밍의 관계된 인물은 바로 주인공이 너무도 사랑한 여인이었다.
가끔 아내는 내 방귀 냄새를 맡고는 그때의 타이밍을 되돌리고 싶어 하곤 한다.
문화 심리학 교수인 김정운 씨는, 그의 책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한다>에서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가끔 후회한다고 말하면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아내와 결혼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 셋을 나은 것은 좀…….
삶 중에는 늘 행복한 순간만 찾아오지는 않는다. 또한, 불행만 있을 수는 없다.
타이밍을 잡은 결과가 어떠하든지 ‘현재의 최선’이라는 구호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인생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