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봄부터
말린꽃작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집 가까이 있는 강뚝의 이름모를 들꽃,풀꽃,
자주 다니는 길거리의 풀꽃들,
도쿄 근교로 이사가신 시누님댁에서 식물들을
채취하며 만들고 있다..
여러꽃들을 채취하면서 사진을 찍곤하는데,
특히 민들레는 애정이 가는 봄꽃이라 내 스마폰속에는
여러장소의 민들레들이 담겨있다.
저런곳에도 뿌리를 내리고 저렇게 이쁘게 피어있구나
싶어 바라볼때 그 민들레가 나에게 주는 감동이란!!
어제는 너무나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전날
비가 왔었는데 공기중의 더러운 때를 모두 씼었는지
하늘도 너무 맑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씻어갔으면 좋으련만 그렇치는
못해서 마스크를 하고 외출했다.
후라이 팬을 하나 사려고 슈퍼에 들렀는데 줄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행렬을 보고 다음날로 미루었다.
코로나가 모든 일상을 하나하나 바꾸고 있다.
서로 만나지 말고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하지만,
매일 먹는음식등, 시장은 봐야 하니 슈퍼마켓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것도 문제가 된다.이제
슈퍼마켓에 입장제한을 한다고 한다.
슈퍼마켓에서 시장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니 조금 비싸더라도 사람들이 덜 몰리는
개인가게로 가게된다.
거대자본의 틈새에서 겨우겨우 영업을 이어가던
영세소상인들에게 뭔가 길이 열리려나?
그런 생각을 얼핏해본다.
아무튼 나는 후라이팬
구입을 다음으로 미루고 슈퍼마켓 가까이 있는 강뚝을
찾앗다.봄의 정기를 품고
피어난 들꽃.풀꽃.민들레를
이시기에 채취해두고싶은 마음에 강뚝을 찾았다.우리집에서 자전거로
10분 이내에 도착하는
강뚝은 대자연은 아니지만,
대자연과 우주를 심호흡으로 내안에 넣어보고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해보는 나의 사랑하는 산책길이다.
봄의 강뚝 산책은
행복하다.이름모를
들꽃,풀꽃은 제 각각
보라,분홍,흰옷으로
봄단장을 하고 있고,푸른
이파리로 생명력을 한껏 치켜 올려세우고 있다.푸른
이파리의 색상속에 낯익은 다년생풀이 날 추억속으로
손짓하고 있었다. 쑥이다.
강뚝으로 산책갈때마다 쑥을 캐와서 쑥국도
끓여먹고,쑥털털이도
해먹고, 냉동도
시켜놓았다. 민들레
잎도 뜯어와서 샐러드 해먹는다.
멀리 일본땅이지만 고향을 맘껏 먹고있는
중이다.이날도 민들레를
마른꽃 재료로 하려고 둘러보니 어제의 폭우때문에
잎은 뻘을 뒤집어 쓰고있고,
노랑 꽃잎은 하늘을 향해 힘껏 얼굴을 내밀고
있다.뻘범벅의 잎과
노랑꽃잎속에 옛일이 피어난다.
어머니가 천막을 치고
밥장사,술장사를
하시는게 조금씩 잘되어 나갔고,
우리집은 하천부지의 집 몇채를 사게 되었다.
서민들이 자기집을 마련하는것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라할만하다. 서민들의
땀과 눈물이 얼마나 서려있을것인가 말인가!
그러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않은 우리꼬맹이들은 그런것을
알수가 없고 단지 하천부지 집으로 이사했다는 것만을
알뿐이었다.최초의
우리집은 장마철 비만오면 물이 넘쳐 부엌을 넘어
방까지 넘어오려 하곤했다.
어릴적엔 그런것도 일종의 흥미와 스릴을 가지고
겪어왔다.그러나 집앞의
우물은 너무나 비위생적이어서 비위가 틀리곤 했다.
깊지 않은 우물을 잘 들여다 보면 지렁이,거머리들이
꿈틀대곤 했고,장마철
비가오면 우물과 가까운 뒷간 누런색인지 아니면 하천
황토색물인지 뭔지모를 누른물은 넘쳐 우물은 두레박이
필요없고 바가지로 퍼면 되는 높이까지 물이 올라왔다.
요즘 일본테레비에서 아프리카 '생명을 살리는
물' 홍보방송이 나오는데,' 이물을
먹고 동생은 죽었다. 그러나
살기위해 동생은 이물을 먹을수 밖에 없었다'
라는 말이 나온다.
그말을 들을때마다 씁쓸한 옛기억과 함께 용케도
살아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아마
고등학교때까지 그 하천부지 집에서 살았던것 같다.
한국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하천부지의 집들은 뜯겨나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의
무리한 경제개발속에 민초들이 겪어내어야 했던 희생과
고생들을 나는 얼핏 교과서나 소설책등에서 읽어봤어도
우리집같이 아슬아슬하게 살아나온 민초들이 그얼마나
많은가? 상상해본다.
하천부지의 집이 뜯겨
나가고 우리는 또다시 셋방살이로 살아가게 된다.
이번엔 연탄가스다.
그집에서 나는 몇번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다
살아나왓다.(젋은
독자들은 이게 무슨말이지 잘모를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한국사회엔 연탄을 사용하는
달동네가 있으니 조사하면 알수있다)
2018년
어머니는 평생을 살아오신 부산을 떠나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때
우리 형제들은 마지막 추억여행을 하면서 자라오고
살아온 자리를 둘러보았다.
우리형제들은 각자 나름대로 가진 추억을 얘기하고
새기면서 떠들썩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께서 이자리 저자리 둘러보시고 얘기
해주시면서 '저 자리들이
모두 국유지였는데 누구누구가 불하받아서 부자되었고,,,,우린
그런것을 모르니 그냥 죽어라 일만 하고 그랬지..'
라며 어머니는 말씀하신다.그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 마음은 무슨 생각이 차지했을까?
아까움,아쉬움,안타까움..무엇보다도
돈이 있었다면 큰딸이 일본으로 시집가지 않았을것이다...그런
생각도 했을까?
부동산 불로소득이
한국경제을 쥐락펴락한다는 뉴스를 일본에서 들으니
더욱 우울하다. 경제의
진짜힘은 그게 아니지!!
라는걸 나도 알기에.
뻘에 젖은 민들레잎은
흙탕범벅이다. 그러나
노랑꽃잎은 너무나 화사하게 하늘을 향해 웃고있다.
눈부시다.저
노랑꽃잎은 곧 홑씨되어 어디론가 날아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