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의 오후
고 둘 선
늦가을. 거리의 가로수들이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몸띠를 줄여가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를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려는지 온종일 뿌옇던 하늘은 잿빛의 먹구름을 낮게 드리우고 있다. 잠시 환기도 시킬 겸, 거실 창문을 열었다. 날씨 탓이었을까. 모눈종이같이 천편일률적으로 촘촘한 사각의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게 싫어 방충망까지 활짝 열어젖혔다.
오후 세 시. 오늘은 정자 씨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 나오는 것일까. 보이지를 않았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와 동갑이라 늘 마음이 가는 정자 씨. 그 정자 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작달막한 키에 손뜨개로 뜬 챙이 넓지 않은 갈색 벙거지를 푹 눌러쓴 유난히 막걸리를 좋아하는 여든하나의 할머니이다.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폐지나 재활용품을 주워 고물상에 넘긴 돈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근근히 이어가는 정자 씨. 힘든 형편이면서도 늘 씩씩하게, 소탈하게 웃는 모습은 동란과 궁핍과 혁명, 유신, 새마을 운동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과 더불어 질곡의 삶을 이겨내야 했던 어려운 시대, 곡진한 삶을 살아 온 우리네 여느 어머니들 모습을 보는 듯하다.
싱크대를 정리하다 유통기간이 지난 식용유가 눈에 띄어 "필요하신 분 가져다 쓰세요. 유통기한이 지난 식용유입니다."라고 메모지를 붙여 쓰레기장으로 들고 나갔다. 때마침 저만치서 정자 씨가 허름한 캐리어(캠핑용 웨건)를 끌고 배시시 웃으며 다가왔다.
"정자 씨 이것 유통기간이 지난 식용유인데요. 빨랫비누 만들 때 쓰실래요?" 하니 "요즘 사람들은 물건 귀한 줄을 몰라." 한마디 툭 내뱉곤 냉큼 받아 캐리어에 담았다. 그렇게 정자 씨가 지나가고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이사 철이라 간혹 부동산에서 몇몇 사람들이 집을 보러 다니는 모습이 거실 창 너머로 보였다. 새 집을 장만하려고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과 셋 집을 전전해야 하는 사람들과는 표정부터 달랐다. 돈이라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없음의 차이와 각자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의 차이이리라. 12년 전까지만 해도 2년에 한 번씩 주인이 다른 이름들과의 서명. 쫓겨나기 싫어 보증금을 올려주고 월세를 올려주곤 했다. 그러다 견디지 못하면 더 저렴한 곳으로, 언덕배기로, 변두리로 옮겨 다녔다.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그려나갔던 내 모습이 그들의 얼굴과 겹치었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중창인 거실 외창만 닫고 조금 더 창밖의 풍경을 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둠이 서서히 깔리자 아침에 출근했던 차들이 하나둘 불야성을 이루며 건너편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태와 크기, 색깔, 용도 제각기 모양이 다른 차들은 마치 직사각형의 숫자판을 채우려는 듯 정확하게 주차하고 앞뒤 라이트 불은 이내 꺼졌다. 그 속에서 별처럼 작은 점 하나를 반짝이며 돌아가는 건 차 안에 달린 블랙박스 뿐. 아직 들어오지 않은 빈칸의, 네 바퀴의 차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을지. 거실 창을 닫으며 인생의 물음표 하나 얹어 놓는다.
오전의 끝자락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절간처럼 고즈넉함이 맴돌던 집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온기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별다를 게 없는 매일매일의 풍경이지만 거실 창 너머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설렘과 반가움, 애련함, 궁금함의 여운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재앙 바이러스(코로나19)의 습격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두 해째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 2021년의 11월 하순. 넉넉함이 아름다웠던 만추의 가을날의 오후가 여백이 아름다운 겨울을 품어주듯 조용히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