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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손(수정)    
글쓴이 : 정민영    14-03-06 16:38    조회 : 10,090
 
 시간은 무심히 흐른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그 모습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씁쓸한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때도 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유년기와 청년기에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할 것 같다.
 유년기에는 모두가 가슴 한가득 꿈을 빚으며 산다. 위인전기를 읽으며 닮고 싶은 위인을 찾기도 하고, 선생님 말씀에 힘입어 나름대로의 멋진 청춘을 꿈꾸기도 한다. 경쟁사회로 진입하면서 성공과 좌절을 경험하고는 두 갈래 길에서 최초의 방황을 하게 되는가 싶다.
 환경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삶을 선택하는 길과, 환경을 인정하면서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길이다. 어떤 길이 바람직한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길을 걸어간 사람의 감정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 전에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남아 있는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야 할 것 같다.
 20대 초반,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 스무 살이 넘은 나이에 중졸의 학력으로는 서울에서 공장노동자나 가게 종업원의 직장밖에는 구할 수 없었다. 평화시장의 도매시장에서 가게 종업원으로 몇 달을 보냈다. 시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는데 남루한 행색의 사람을 보면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허비한 시간들이 나에게 어찌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몇 번이나 삶을 마감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줄 수가 없어서 살아보기로 했다.
 주머니에는 버스 토큰이 하나도 없어 먼 길을 걸어서 가야 할 정도로 가난이 힘들게 했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자 머리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생각들을 시간의 순서로 배열했다. 정리된 인생계획표를 들여다보면서 계획대로만 실행된다면 살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생활을 정리했다. 주머니에 향 후 20년 동안의 인생계획표 한 장 달랑 들고 시골의 고향집으로 갔다.
 계획표의 첫 단추는 독학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나이 40의 얼굴 모습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링컨 대통령의 어록을 가슴에 새기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글자에 불과했던 꿈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첫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자 그 다음 관문은 쉽게 열렸다. 학비를 면제받는 국립전문대, 야간대학, 대학원으로 이어지는 길고긴 배움의 여정은 20년 동안 계속됐다. 물론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발생하여 수시로 갈등의 순간을 겪기도 했지만 어떤 순간에도 배움의 끈은 잡고 있었다. 40이 되었을 때에 20년 전에 세웠던 목표는 거의 이루어졌다.
 40이 되던 해에는 60을 꿈꾸었다. 새로운 20년은 부모의 영향범위를 벗어나 순수한 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열정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갈 무렵,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무렵인 50대 중반에 법조인이 되려는 꿈을 꾸었다.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소요되는 돈을 마련하려고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위험부담이 큰 직장을 택했다. 예상하지 못한 유럽 발 세계경제위기로  새로운 직장은 일 년 만에 도산을 하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다.
 실패해도 별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러한 생각은 참으로 터무니없는 장밋빛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가장의 실패는 당장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아직 대학생인 막내를 보면서 막내의 인생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사회에 막 첫걸음을 시작한 아들에게는 하루아침에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로 전락하고 말았구나 하는 회한이 일었다. 나의 속내를 그대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겉으로는 걱정 말라며 큰소리만 뻥뻥 쳤다. 
 놓여 있는 현실은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문득 묘한 생각이 나를 파고들었다. 내가 돈을 벌 수 없다고 해서 살아갈 가치도 없는 사람인가. 돈을 벌지 못해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나만의 가치를 찾아보기로 했다.
 매일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미소, 길을 찾는 이들에게 자세한 길 안내, 길에 떨어진 휴지를 무심코 줍기, 딸아이의 방청소, 스트레스에 시달린 아내가 남겨 놓은 그릇 닦기 등등 일이 무수히 많았다. 내가 100원이라도 벌어온다면 그 만큼은 가정경제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일자 그만한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원한, 분노 등이 서서히 사라지고 평상심이 찾아왔다.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깨달았다. 새롭게 맞는 아침은 신이 내린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매일의 기상시간은 감사의 순간이다. 매 순간 맞이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소중히 써야 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김정미   14-03-06 22:59
    
대단하십니다.인생의 무게에 눌려 쓰러지지 않으시고
담대히 걸어 오셨으니 말입니다.
박수를 보내며 남은 날들도 승리 하시길 바랍니다.
행운이 함게하시길~~~
정민영   14-03-07 12:57
    
감사합니다. 어쩌면 인생 후반부의 실패가 저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들었나 싶습니다.
    글은 치유의 힘이 있다는 말을 접하고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거든요.
    글을 쓰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볼 기회를 얻었고 '지금의 순간이 행복이다.'란 느낌을
    얻었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임정화   14-03-10 13:40
    
아, 정민영 선생님. 세 번째 작품 수정이신데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한눈에 보여 존경심과 함께 환경에서 왔던 곤궁들이 야속하기 그지없네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대단하신 인생여정을 2쪽 정도에 채워넣기엔 지나치게 아쉽고 짧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생의 고개 고개마다 치러야 했던 우여곡절들을 하나씩 들려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윗 분, 김정미 선생님 말씀처럼 앞으로도 늘 인생길을 만들어가시며 생의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돼주시길 바랍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마지막 부분에 평상심을 찾으시는 과정의 이야기가 있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하시니까 가족분들도 함께 달라지시던가요?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야 배의 행복일 듯 싶은데 어떤지 궁금합니다.
분량이 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정황들을 채우신 필력도 대단하시고요. 참 잘 읽었습니다.^^
정민영   14-03-11 10:38
    
감사합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족들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지만 항상 방임과 간섭 사이에서 고민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교육은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주는
    것이란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행복은 자신들의 몫이라 생각하면 내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너무 이기적인가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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