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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꿈(수정)    
글쓴이 : 정민영    14-06-15 00:55    조회 : 9,880

  대처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난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을 찾았다. 시골은 극심한 가뭄으로 논은 거북의 등처럼 쩍쩍 갈라지고 벼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관정을 파는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그 효과는 별무신통이었다. 마지막 수단으로 아버님은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비싼 양수기를 구입했다.

  논 아래 개울의 웅덩이에서 물을 퍼 올리고자 논에 양수기를 설치하는데 아버지는 논두렁에 양수기를 놓았다. 난 그 양수기가 물을 퍼 올리는 과정에서 텅텅거리다가 웅덩이에 풍덩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논바닥에 양수기를 설치하자고 말씀을 드렸지만 나의 말은 무시되었다.

  양수기에 시동을 걸고 물을 퍼 올리기 시작한 후 5분쯤 됐을까? 양수기가 기우뚱 하더니 웅덩이로 빠지려고 하였다. 양수기만 예의주시하던 난 순간적으로 양수기를 잡았다. 양수기의 벨트에 새끼손가락이 걸리고 결국 양수기는 웅덩이로 빠지고 말았다. 나의 손보다는 비싼 양수기를 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양수기를 건저 놓고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을 수건으로 싸매고 읍내에 있는 의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하였다. 방학 중에는 통원치료를 하다가 2학기가 시작되어 부산으로 돌아갔다. 부산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날이 갈수록 치료비는 늘어나는데 차도가 없다. 의사선생님께 손가락을 자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은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후회 없겠느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들에서 땀을 흘리며 농사일을 하는 아버지의 얼굴과 새끼손가락이 없는 나의 모습이 겹쳐지나갔다.

  들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나 자신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이 없다. 들일을 하다가 참을 먹는 시간에 아버지에게 묻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 왜 아버지 형제들은 사이좋게 지내지 못해요?’하는 나의 물음에 4남2녀의 장남인 아버지는 허공을 응시하며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을 주셨다. ‘우리 형제들도 결혼하기 전에는 동네에서 가장 의가 좋은 형제들이었다. 결혼하고 새살림을 하면서부터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거란다.’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련히 들려온다.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지금 아버지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나의 삶도 아버지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의 살점을 떼 주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형제남매들이었다. 그러한 감정은 죽을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여겼다. 아니, 그리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었지만 항상 삶의 맨 앞자리에는 아내와 자식들을 두게 된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흐를수록 형제들과의 정이 옅어짐을 느낀다.

  아버진 나의 친구 같기도 하고 인생의 이방인이기도 하였다. 시골의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4남 3녀의 셋째인 내가 고등학교를 대처로 진학한다고 했을 때 아무런 반대도 없이 허락을 해 주셨다. 아버지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술로써 달랬다. 봄과 가을 농번기에는 술을 한 잔도 하지 않았지만 농번기가 끝나면 남은 일은 엄마 몫이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사랑과 미움이 얽혀있는 아픔이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조국의 땅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육이오 전쟁 전 후 7년 동안 20대의 대부분을 군인으로 살았다. 종전 후, 제대를 하고 농부로 살다가 6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환경에 맞닥뜨려졌어도 아버진 봄이 오지 않는 겨울나라에 태어나 나에게 봄을 찾아 주었고, 이 땅을 공산주의자로부터 지켜냈고, 가난을 막아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다듬어 놓은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면서 무엇을 했나? 하는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아버지의 힘으로 주인의 나라에서 태어날 수 있는 행복과 나만의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선물로 받았다. 난 나의 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등골이 얼어붙는 것 같다. 홍수로 떠내려 보낸 강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덧없이 보낸 시간들을 다시 맞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얼마간의 시간들이 남았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희망의 시간보다는 절망의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사랑보다는 한이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흙탕물에서 연꽃이 피어나듯 고난의 세계를 꿈의 세계로 바꿔냈다. 감내하기 힘든 역경을 담대하게 견딜 수 있도록 한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DNA 어느 구석에 자신의 꿈을 새겨 넣어 두었을까?

 그리운 그 이름

 아버지!


김사빈   14-06-15 06:21
    
아버지의 정을 잘 표현 하셨네요. 우리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암담한 절망을 몸으로 마주서서 싸우셨지요. 그 가난을 절망을 안 물려 주시려고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임도순   14-06-15 15:05
    
아버지의 꿈 수정본을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댓글하신 "김사빈"선생님께 먼저 인사올립니다.(꾸벅) 반갑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지요? 지난 겨울 동해안에서 오징어 물회를 만드셨다는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

수정본이 1차본보다 나아 보이지만, 여전히 내용상 불일치가 보입니다. 아버지의 노고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희생(손가락 절단)과 빚(농협대출)을 지고 양수기를 구입하여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형제간들 사이가 멀어지는 것도 감내하면서 말입니다.  현재 글쓰신 분도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학업을 포기하는 자식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꾸었던 꿈"이 과연 "민주주의"고, "자유"였을까요?

일제시대(1930년대 초반?)에 태어났는데 "잃어버린 조국", 6.25이후 20대에 7년의 군생활이후 농삿일을 근 30년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켰고, 가족의 가난을 막았습니다.  반면 골육은 멀어졌습니다. 어찌되었건 글쓴이의 감동은 국가적인 것이고 내 피붙이 가족만 있고, 내 형제들은 정반대입니다. 손안에 "자유"라는 목적적 숭고한 가치 존재만 있다면, 열손가락 깨물어 다 아플 손가락도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

죄송합니다. 이글은 철책선 방어진지 소대장이 정훈시간에 어린 병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들려줬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10대를 일제시대에서 보냈고,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군입대, 7년여의 군생활을 하신 아버지. 그아버지의 애국적인 희생인지, 자식을 위한 헌신인지를 구분하여 집중했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꿈"을 혹시 글쓴이가 대신 꾸는 것은 아닌지요. 제 느낌을 적은 것입니다. 혹여, 댓글 맘에 안드시면 저의 편견으로 탓해주십시요. 

브라질 월드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합니다. 미국식 사고방식이 침투하지 못한 제3세계가 그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정민영   14-06-16 00:10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글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전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적엔 표현은 하지 않했지만 아버님을 죽도록 미워했었습니다. 그러나 미워할 수만은 없기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었습니다. 돌아가셨어도 잊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제가 아버님의 나이가 되어 문득 아버님 생각이 났습니다. 생전에는 그리 미웠던 아버님을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아버님의 삶도 참으로 고단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봄, 자유, 가난은 제가 마음속에서 아버님에 대한 미움을 털어내기 위한 단어들이라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임도순   14-06-16 12:59
    
점심은 드셨는지요? 정민영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마음의 거울과도 같은 '수필'이 그래서 쓰기 어려운가 봅니다. 가슴앓이가 클수록 글쓴 사람들에게는 큰 재산입니다. 위 댓글에서 "문득"이 수많은 과정을 함축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그 "문득"이라는 글자안에는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고뇌와 수많은 억울한 일들이 다 녹아 있겠지요. 문득이라는 시간은 ㅇ.001초도 안되지만, 적어도 10문장이상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10문장을 꺼내보세요~~~앞선 글과 이번 글은 2개의 소재가 섞여있다고 봐요, 또한 선생님의 수필에 대한 열정의 문이 절반만 열렸다고 해도 될 겁니다. 양쪽 문을 활짝 여시고, 공감되고 그래서 감동되는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민영   14-06-16 23:41
    
감사합니다. 물론 점심은 최고로 먹었습니다. 건강이 최고거든요. '문득'이란 단어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0.1초 동안에도 수많은 시간이 지나가니까요. 지금 제가 쓰는 글은 저 자신이 스스로에게
진솔해지고자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자신이 스스로에게 진솔해질 수 있을 때 타인에게도 그 감정이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면 아직 스스로 진솔해졌다는 자신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속내깊은 지도를 바랍니다. 항상 행복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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