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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외로운 여인이었다!    
글쓴이 : 정민영    14-05-16 14:34    조회 : 11,083

 사람의 인연이란 묘한 데가 있다. 젊은 시절 평화시장의 도매상에서 잠시 일할 때였다.  어느 맑은 가을 오후, 시골풍의 아저씨 한 분이 나에게 디지털 손목시계를 보여주면서 자랑을 하였다. 무슨 시계냐고 물으니까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선물을 하였단다. 딸에게 선물을 받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 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녀는 지나는 바람처럼 나의 가슴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었나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우연한 기회로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서로 목례를 하고 ‘○민○입니다’하는 그녀의 인사를 들으면서 내가 되물었다. 한문으로 무슨 ‘민’ 자인가 하니 ‘백성 민’ 자라고 한다. 나의 이름 중간자도 ‘백성 민’을 쓰고 있기에 이런 인연이 또 있을까 싶었다. 이름 한 자가 같은 이유로 우린 동질감을 느꼈고 쉽게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

 난 그녀를 나와 온전히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와 나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는 것으로 여겼다. 그녀가 나에게 잔소리를 할 때면 다른 눈으로 나를 보고 나의 길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하나인 우리는 아무리 큰 일이 일어나도 다툼이 없었다. 잘못을 하고 미안해하는 나를 보면서 그녀 혼자 씩씩거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도 나를 만날 것이란 말을 자주 했다.

 결혼 25주년이 되는 해였다. 결혼하던 해에 우린 결혼 25주년에는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주변 사정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장생활에서 10여일의 휴가를 마련할 수가 없었다. 할 수없이 그녀는 친구들과 나의 여정을 다녀왔다. 그 여행은 그녀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놓았나 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차를 마시며 그녀의 여행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그녀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오해하지 말라며 말을 꺼냈다. 멋진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거다. 난 좋지 하며 맞장구를 치면서 멋진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 뛰는 사랑이 멋진 사랑이란다. 참! 가슴 뛰는 사랑을 하려면 당신을 보면 가슴 뛰는 남자를 먼저 만나야 하는데 쉽겠어? 하며 웃어넘겼다.

 무엇이 그녀의 가슴에 불을 질렀는지는 몰라도 여행이후 그녀의 삶은 크게 변했다. 항상 아파트 주변과 옛날에 살던 아파트 친구, 그리고 학교 동창생들밖에 모르던 그녀였다.  문화교실에 가서 그림을 배우고, 사진작가 반에 들고 수영을 하고 쉴 틈이 없이 바쁘다. 퇴근해서 저녁 늦게 집에서 만나면 백수가 직장에 다니는 나보다 바쁘다며 농을 건네면 그냥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기숙사에 들어가고 집에는 그녀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바쁜 회사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잠간 한가한 틈에 그녀의 사랑타령이 찾아왔다. 지난 시간들이 뒤를 이었다. 우리가 만나서 사귀다가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했던가 하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녀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기억이 없다. 우린 만나는 순간 이름 한 자로 동질감을 느꼈고 친구가 되었고 그냥 살게 된 거였다. 우린 서로가 사랑을 확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마음 한 구석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생각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소녀다움이 나에게 표출된 후 난 그녀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그녀를 아내, 엄마로서만 보았고 그렇게 대했었다. 나 자신도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삶의 가장 앞자리에 놓고 가족의 안위를 위해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다른 눈으로 보니 그녀도 독특한 개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호칭을 바꿨다. 이름 뒤에 여사란 칭호를 붙여 불렀다. 처음에는 낯설던 호칭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정겹게 느껴졌다. 그녀에게서 엄마와 아내의 딱지를 떼어냈다.

 그녀는 무심한 남편을 오랫동안 말없이 섬겨온 외로운 여인으로 다가왔다.




임도순   14-05-19 15:48
    
잘 읽었습니다. 글의 제목이 "그녀는 외로운 여인이었다!"이듯이 묘한 인연으로 만났으면서 오랜 시간이 흐르기까지 자신의 본성을 잊고 살아온 여인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여행도 다니고, 취미활동도 하고...그러기까지 여성들에게는 자식과 가정이라는 제약이 있습니다. 말없이 인생의 젊은 시절들을 희생시키고, 이제는 남은 여생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젊어서 주장한 여성운동가들을 "페미니스트"라하지만, 대부분은 "가만히 있으면서"지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중차대한 인생의 시기를 이토록 하라고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지요. 자신을 억제하는 가장 큰 제약은 바로 "자신"입니다.

속내깊은 글이군요, 건필하십시요~
     
정민영   14-05-20 21:55
    
감사합니다. 마음은 항상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하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행동은 다르게 하는 나를 스스로 책망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수신이 덜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닦아 조금은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 나려고 노력 중입니다.
정혜선   14-05-20 14:10
    
반갑습니다.^^
"난 그녀를 나와 온전히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와 나는 몸은 떨어져 있지만 항상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는 것으로 여겼다."
저는 이 문장에 자꾸 눈길이 가네요.
대부분의 남자들이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따르며 살아가니까요.
여자 입장에서 썼다면 흔하디 흔한 푸념으로 일관했을 텐데
선생님의 글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나마 위안이 좀 된다고 할까요?^^

지나가는 말로 비춰졌을 '그녀의 사랑타령'은 아주 절실한 소망이었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간곡한 요구였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진솔하고 안쓰럽게 그녀의 입장을 헤아렸더라면
공감이 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도입부가 글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은 듯한데요,
그렇다면 그 아저씨의 따님과 결혼하신 거지요?
우연한 기회로 여기기엔 기막힌 인연이기에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독자에게 불필요한 호기심을 남길 필요도 없고
그것으로 인해 단락과 단락이 매끄롭게 이어질 수도 있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기대하겠습니다.^^
     
정민영   14-05-20 22:03
    
감사합니다. 그렇답니다. 그 아저씨의 딸이 저의 아내가 됐지요. 어쩜 그 아저씨가 딸로부터 선물 받은 손목시계를 저에게 자랑한 것이 저의 인생을 변화시킨 계기가 됐을 수도 있지만 너무 긴 이야기라서 간단히 썼는데요,  글을 매끄럽게 잘 다듬로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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