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구석기 시대에 원숭이가 산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서 마시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술은 선사시대 이래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피와 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술은 '백약지장'이라고도 부르고 '광약'이라고도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술을 무시로 접하지만 술을 마시는 데도 주격이 있다. 주례에 관해서 다 알려고 하면 사법고시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지만 술을 사랑하는 애주가로서 술을 마시는 기본적인 주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 예의바른 사람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주법은 술상에 앉으면 대작하여 술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을 하고 잔에 술을 부어 돌리는 행배의 주례가 있다. 이때 권주잔은 반드시 비우고 되돌려주는 반배를 한다. 반배는 가급적 빨리 이행하고 '주불쌍배'라 하여 자기 앞에 술잔을 둘 이상 두지 않는 것이 주석에서의 예절이다.
우리는 왜 '망국주', '망신주'라고도 불리는 술을 끊지 못하고 가까이 하게 되는 걸까? 술은 예로부터 흥을 돋우는 음료이다. 술을 마시면 몸이 풀리고 마음이 활달해지고 시가 저절로 읊어지고 흥겨운 노랫가락이 절로 흘러나오게 된다. 술은 예술가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묘약이다.
술은 역사적으로 조상숭배나 제사, 각종 의식에 빠질 수 없는 음료이기도 하지만 개인적 삶과 관련해서는 예술 활동과 관계가 깊은 것 같다. 시대적으로 유명한 시인, 문장가는 대부분 두주불사의 술 사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술을 가까이 하는 이유는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고자 함이란 생각이 든다. 술은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열쇠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들에서 일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참을 준비하여 머리에 이고 가고 난 술 주전자를 들고 갔다. 빠른 걸음의 어머니가 고개를 넘어가면 뒤따라가던 나는 고갯마루에서 막걸리 한 모금을 몰래 마시곤 했다. 이런 인연으로 술은 나의 가장 오랜 친구가 되었다. 과음은 항상 예기치 못한 실수를 하게 만든다.
몇 해 전 겨울이었다. 오후 아홉시쯤 택시가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다. 손님 몇 동으로 갈까요? 하는 기사의 물음에 '예...'하고 말하려는 순간 뇌가 작동을 멈췄다. 눈앞에 아파트 풍경이 영상으로 보이고 좌측으로 가면 나의 집인데도 왼쪽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갑자기 가슴이 조여오더니 택시 안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기사에게 돈을 보여주고 주민등록증을 건네주면서 대기료를 줄 테니까 인근 파출소에 연락을 취하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밖은 온통 하얀 눈 세상이다. 공터에 몸을 뉘였다. 눈의 기운이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누가 흔들어 눈을 떠보니 잘 생긴 젊은 경찰의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 집에 가서 주무셔야지오 하는 경찰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잘 생긴 경찰양반 집이 생각나지 않아 라는 나의 말에 빙그레 웃는 그 경찰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아내와 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음날 일어나서 경위를 들어보니 관리사무소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방송을 몇 번 했는데 설마 나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정쯤 경찰이 찾아왔더라는 것이다. 지금도 그 사건은 내 인생에서 새로운 경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가 술을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내보내기 위함인 것 같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는데도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하곤 하는 나는 매일 이성의 충돌을 겪는다.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항상 회의감이 든다. 이성이 충돌할 때마다 감정의 찌꺼기가 조금씩 쌓임을 느낀다. 그 찌꺼기들을 내보내야 하는데 자력으로는 내보내기가 힘겹기 때문에 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술과 함께한 반세기의 시간을 돌아보면 즐거움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지만 술을 마시지 말 것을 하며 후회한 적은 별로 없다. 술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술은 술일뿐이란 사실이다. 술은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길이지만 의도를 갖고 마시면 반드시 사단이 난다는 것도 진실이다. 또한 술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술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세상에서의 경험은 알코올의 휘발과 함께 사라지지만 술로 인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와 육체적 고통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다.